첫째, 누구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는가?
주님은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주님은 내가 아끼는 어떤 사람들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이 질문을 받은 베드로의 대답은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였습니다. 베드로는 대답의 무게를‘주님께서 아시나이다’에 두었습니다. 주님께 감출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베드로를 실격처리하지 않으셨습니다. ‘내 어린양을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그 무엇보다, 그 누구보다 더 주님을 사랑하게 될 때 진정한 치유와 회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오직 주님만을 사랑하는가?
두 번째 질문하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것입니다. 이제는 비교 대상이 없어졌습니다. 차라리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물으셨을 때는 쉬웠습니다. 그런데 이제 자신만 보게 하신 것입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하는 것입니다. 이 질문을 받은 베드로의 대답은 똑같았습니다.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였습니다. 변한 것은 없습니다. 여전히 주님과 베드로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습니다. 사랑의 의미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여전히 주님께서 아신다는 사실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번에도 제자 베드로를 실격시키시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아시기 때문입니다.
셋째, 부족해도 주님만을 사랑하는가?
예수님은 베드로가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하는 베드로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의 세 번째 치유방법은 눈높이 치유였습니다. 주님은 이제 베드로의 진실함과 주님에 대한 그 사랑을 그대로 수용하시기로 하셨습니다. 주님은 나의 눈높이로 오십니다. 주님은 나의 사랑을 그대로 받으십니다. 그리고 나의 믿음을 그대로 받으십니다. 주님의 목적은 베드로를 다시 회복시켜주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주님의 마음은 오직 자기 양떼에게 있었습니다. ‘내양을 먹이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치유와 회복은 사명자로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부족해도 주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어린양을 위하여 남은 날을 헌신하는 주님의 제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