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설교

장년
예람지기 2012.04.29 00:00:00
667
세상을 살다보면 숨이 꽉 막히고 가슴이 답답한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정확한 공식에 따라서 문제를 푸는데도 해답이 나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의지하여 그 말씀만을 붙들고 살아가는 성도에게 이따금씩 말씀의 진리와 전혀 다른 현실이 부딪혀질 때 참으로 난감한 경우를 당하곤 합니다. 본문 성경을 기록한 고라자손들은 영혼이 목말라서 하나님을 갈망하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으므로 눈물이 주야로 음식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성경은 이처럼 낙망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하였습니다.

1. 먼저 자기를 살피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올라가셨을 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에 의하여 돌로 쳐 죽여야 된다고 우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무리들은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물러 가 버렸습니다(요 8:1-9).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지적한 율법의 조문이 잘못되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레 20:10). 그렇지만 율법을 집행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는 뜻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보실 때는 음행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뿐 아니라 그를 정죄하는 무리들도 그 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지적하신 것입니다(마 5:28).


2. 정당한 것보다 의로운 것을 추구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주실 때 이를 행하면 복을 받게 되고 거역하면 저주를 받게 된다고 하였습니다(신 30:15-19). 에스겔 18:4에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범죄한 영혼이 형통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억울하게 고난을 당하곤 합니다(시 73:1-14). 이런 불합리한 현상을 보며 눈물이 주야로 음식이 되는 아픔을 겪게 됩니다. 여기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하였습니다(고전 10:23). 곧 정당한 것보다 더 위대한 것이 있다는 뜻입니다. 율법의 정신은 정죄와 형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이루고 덕을 세우게 하는 것입니다.


3.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12:19에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은 자기를 팔아버린 형제들에게 원한을 가지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위로해 주었습니다(창 50:19-21). 다윗도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에게 보복하지 않고 그의 생명을 돌봐주었습니다(삼상 24:6). 자기가 분풀이를 하고 보복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이를 하나님께 맡겨 버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몇 배나 더 많은 것으로 돌려 주셨습니다. 자기의 자존심이나 분노를 다 내려놓고 하나님께 맡기는 행위야말로 선으로 악을 이기는 믿음입니다(롬 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