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설교

장년
예람지기 2011.12.2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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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나라 12대 아하스 왕(BC741-726)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람과 이스라엘의 연합군이 쳐들어올 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앗수르 왕의 힘을 의지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한 징조를 보여 주시겠다고 하면서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해석상으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한 이 말씀을 신약의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한 예언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하여 처녀 마리아가 잉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고민하는 요셉에게 천사 가브리엘은 그 문제의 해답으로 본문에 기록된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였습니다(마 1:23). ‘임마누엘’이란 말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으로 예수 탄생의 신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1. 임신의 신비입니다.

처녀가 잉태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과학적으로나 상식적으로 설명이 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운 사건입니다. 그렇지만 이 사실은 기독교 신앙의 근본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동정녀(童貞女) 마리아에게서 나셨다는 것을 신앙으로 고백합니다.
 
1) 요셉과 마리아의 관계

요셉과 마리아는 육신으로 예수님의 아버지와 어머니입니다(마 13:55). 이 두 사람은 같은 동네에서 살았고 경건한 유대인의 전통을 좇아 서로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습니다. 마태복음 1:18에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라고 하였습니다. 고대 유대인의 풍속에는 결혼의 전단계로 약혼을 하였는데(창 29:21) 이는 결혼과 같은 법적 효력을 가지고 있어서 쌍방에 대한 책임을 져야 되었습니다. 만약 한 쪽에서 파혼을 하자고 하면 이혼증서를 주어야 했고 그렇게 될 경우 다른 사람과 다시 약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또 남자나 여자가 약혼자를 두고 다른 사람과 동침했을 경우 돌로 쳐 죽이게 되어있습니다(신 23:24).
 
2) 가브리엘의 출현

복음서의 기자 마태는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된 기사를 쓰면서 중요한 고비마다 하나님의 사자가 출현하는 장면을 소개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천사를 뜻합니다. 이 천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하여 필요할 때마다 나타나서 하나님께 분부 받은 사역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4에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고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26-27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고 하였습니다. 그 천사가 거의 같은 시기에 같은 방법으로 마리아의 남편 되는 요셉에게도 현몽하였습니다(마 1:20).
 
3) 믿음으로 수용하였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천사로부터 처녀가 잉태하였다는 당혹스러운 소식을 듣고도 이를 수용하였습니다. 요셉은 마리아와 약혼만 한 상태에서 아직 동거한 적이 없는데 마리아가 잉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고민을 거듭하였습니다(마 1:19). 그때 하나님의 사자가 꿈에 나타나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일러주면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요셉은 즉시 마리아를 데려왔으나 아기를 낳을 때까지 동침하지 아니하였습니다(마1:20-25). 마리아도 처음에는 천사의 말에 당혹해하면서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라고 하는 천사의 말에 그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하고 수용하였습니다(눅 1:31-38).
 
 
2. 탄생의 신비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내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했을 때 사라는 이미 생리가 끊어진 상태였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여호와께서는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고 하시면서 그 일을 성사시켰습니다(창 17:14).
 
1) 임마누엘의 특징입니다.

남자를 가까이 한 적이 없는 처녀가 아들을 낳게 되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을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으로 풀게 하였습니다. ‘임마누엘’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마 1:23). 이 말씀은 예수님이 신인양성(神人兩性)으로 완전한 하나님이요 또한 완전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요한복음 1:14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인간의 죄를 속량하기 위하여 오신 예수님 자신이 인간의 몸을 입어야만 했습니다(히 2:14-15). 그렇지만 그에게 죄가 없어야 하기 때문에 무죄 성결한 하나님의 속성을 가져야만 되는 것입니다(히 4:15).

2) 신실한 약속의 성취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분입니다(신 7:9). 아담 이후 인간에게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보내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증거입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그의 생애를 기록한 누가는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을 목격하고 그 내역을 자세히 살펴서 저술하였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윗의 후손으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다는 것이 성경의 약속입니다(미 5:2). 마태복음에 있는 예수님의 족보에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마 1:5-6). 예수님께서 다윗의 후손이 되게 하기 위하여 무너진 엘리멜렉의 가문에 모압 여인 룻을 보내서 기적적으로 대를 이어가게 하는 신비가 나타났습니다. 또 로마의 황제가 내린 호적령에 따라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으로 가서 이 약속이 성취되었습니다(눅 2:1-5).
 
3) 탄생과 관련된 사건들입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지신 분입니다(마 28:18). 우주적인 대권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 탄생하는 사건이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여러 가지 신비로운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여기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등장하게 되고 하늘과 땅과 자연과 만물에 징조가 나타났습니다. 누가복음에는 유대인 목자들이 등장을 하게 되고 그들 앞에는 하늘의 천사와 천군이 나타나서 예수 탄생의 소식과 함께 크리스마스 새벽송을 하게 되었습니다(눅 2:8-14). 한편 마태복음에는 이방 나라의 지체 높은 박사들이 움직였는데 이들은 하늘에 나타난 별을 보고 왕의 출현을 알았다고 하였습니다(마 2:1-12).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인류의 구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의 성탄절은 지역이나 계층의 구별 없이 지구상의 가장 큰 축제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3. 사역의 신비입니다.

성탄절 아침 베들레헴 목동들에게 크리스마스 메시지를 전하는 천사들은 아기 예수의 탄생이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하였습니다(눅 2:10). 이 소식이 그리스도의 복음 사역을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1) 빛의 사역입니다.

사도 요한은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라고 하여 예수님을 빛으로 표현하였습니다(요 1:9). 이 빛은
생명의 빛이요 소망의 빛입니다. 요한복음 1:4에는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오기 이전의 세상을 어두움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가 없는 인간의 마음을 어둠에 지배당하는 불행한 상태로 표현하였습니다(요 3:19). 이사야 9:2에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고 하였습니다. 빛이 있는 곳에는 어두움이 추방됩니다. 흑암의 권세에 짓눌려 있던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하므로 빛의 삶을 살게 됩니다. 요한복음 8:12에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2) 십자가 희생의 사역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막 10:45).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 자체가 말로 다할 수 없는 희생입니다.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서 육체의 노동을 하셨고 인간의 모든 질고와 슬픔을 몸으로 다 겪으셨습니다(사 53:4-5). 그리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구약시대 인간의 죄를 속량하고자 제단위에서 희생되는 제물이 있었습니다(요 1:29). 이처럼 예수님의 희생이 오늘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해방시키고 사죄와 구원을 얻게 하였습니다. 로마서 3:24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3) 승리와 소망을 안겨주는 일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구원’을 뜻합니다. 요셉에게 아기 예수의 탄생을 고지하던 하나님의 사자는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하였습니다(마 1:21). 인간에게 구원의 도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행 4:12).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요 14:6). 다만 그 구원의 과정이 십자가의 희생입니다. 십자가 죽음이 있었기에 부활과 영생의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빌 2:6-11). 이것이 기독교 복음의 신비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임마누엘의 축복도 십자가의 삶을 통하여 구원과 영생의 희열을 맛보게 하는 것입니다(마 16:24-25). 바울은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딤후 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