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설교

장년
예람지기 2011.11.1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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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천하 만민 가운데서 자기들만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습니다(암 3:2). 그것은 조상들과 맺은 언약에 따라 후손들이 받은 축복입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께 은혜와 복을 받은 사람에게는 거기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랐습니다. 그것은 선택받은 거룩한 민족으로서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레 11:45). 하나님의 백성이 지향하는 삶의 목표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고전 10:31). 그것은 율법에 명시된 제사 제도에 따라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며 헌신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제사는 레위기에 나오는 각종 제사와 제물 외에도 여기 ‘십일조와 봉헌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감사하며 보답하는 신앙의 행위를 의미합니다.

 

1.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것입니다.

8절에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고 하였습니다.

 

1)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여기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하겠느냐”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된 십일조를 드리지 아니했다는 뜻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것’으로 구별해 놓은 것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올라온 후 태에서 처음 난 아들과 가축의 첫 새끼를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고 하였습니다(출 13:12). 또 이스라엘 열두 지파 가운데 레위 지파를 구별하여 하나님의 기업으로 삼았습니다(민 18:20). 그리고 십일조 제도를 율법에 명시하였습니다. 신명기 14:22에 “너는 마땅히 매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수고하여 얻은 소산물 중에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여 이를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의무요 법령입니다.

 

2) 봉헌물은 보답하는 예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받은 자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보답하는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신 28:1-14).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은혜에 감격하는 마음과 그것을 표현하는 행위입니다. 곧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담아서 봉헌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잠언 3:9-10에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이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드리는 예물을 받으시되 그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 성전에서 가난한 과부가 연보함에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이것이야말로 부자가 많이 넣는 것보다 더 귀하다고 하였습니다(눅 21:1-4). 풍족한 사람이 많은 돈 넣는 것보다 가난한 사람이 생활비 전부를 바치는 것이 더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은 죄가 됩니다.

성도가 십일조 생활을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하는 것입니다. 9절에는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 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말라기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오랜 환난과 시련을 겪으면서 삶의 의욕도 상실했고 하나님께 대한 신앙도 나태해 있었습니다(말 3:14-15).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형식적으로 지켰을 뿐 적극적인 신앙이나 순종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야할 십일조는 무시되었고 봉헌물은 빈약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에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하고 하나님께 반문하는 정도였습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된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은 죄가 됩니다.

 

2. 신앙의 기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지식이나 이론이 아니라 실천하는 행동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무는 열매를 보아서 안다’고 하였습니다(마 7:16).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하여 십일조와 봉헌물이 자연스럽게 실천될 때 그것은 곧 신앙의 수준이 성숙된 것을 말해 줍니다.

 

1) 신앙과 경륜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십일조의 원조는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하여 소돔 성을 함락시킨 그돌라오멜의 군대를 쳐부수고 돌아오다가 살렘 왕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렸습니다(창 14:20). 성경은 살렘 왕 멜기세덱이 예수님을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하였습니다(히 7:1-3). 야곱도 벧엘 광야에서 사닥다리의 환상을 보고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기로 서원하였습니다(창 28:22). 십일조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행위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과 성경 말씀의 약속을 신뢰하는 사람은 십일조를 짐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은혜로운 삶으로 실천하곤 합니다. 다윗처럼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고 하며 즐거움으로 바치게 되는 것입니다(대상 29:14).

2) 뛰어 넘어야 할 벽입니다.

본문 말씀 10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하였습니다. 교회 생활을 제대로 하는 사람 중에 십일조의 벽에 걸리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돈이 없거나 가난한 사람은 어려워서 못한다고 하지만 부요하고 넉넉한 사람도 하기 힘든 것이 십일조입니다. 십일조의 단위가 적을 때는 잘하던 사람도 액수가 많아지면 아까워서 제대로 못하기 십상입니다. 오죽하면 시험 해 보라고 하였겠습니까. 시험은 초기에 치러야하고 일찍이 넘어서 버려야 됩니다. 한 번도 십일조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한 사람은 평생 동안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고 말게 됩니다.

 

3) 물질생활이 자유롭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중의 새를 먹이시고 들에 핀 꽃을 입히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준비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마 6:26-33).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에는 매일 같이 하늘의 양식 만나를 먹게 하였습니다(출 16:35). 그동안 많이 거둔 자도 남는 것이 없었지만 적게 거둔 자도 모자람이 없었습니다(출 16:18).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딤전 6:8). 모세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만나를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신 8:3). 지나친 욕심은 물질의 노예로 만들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이를 선용하면 물질생활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3. 축복의 보장이 됩니다.

시편 128:1에 하나님을 잘 섬기며 성경 말씀이 정한 그 길을 걷는 사람에게는 축복이 보장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잠언 3:16-17에 “그의 오른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의 왼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의 지름길은 평강이니라.”고 하였습니다.

 

1) 먹는 자를 금해 주십니다.

본문 말씀 11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메뚜기’를 개역 성경에는 ‘황충’이라고 했는데 이 말은 ‘먹는 자’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메뚜기나 황충은 곡식의 줄기를 갉아먹어서 결실을 하지 못하게 하는 곤충입니다. 농부가 이른 봄 논과 밭에 씨앗을 뿌리고 여름 내내 정성껏 가꾸어 가을에 탐스러운 열매를 거두게 되지만 때때로 먹어 치우는 황충 때문에 허사가 되기도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도 인간 황충이나 질병 황충도 있고 또 사고와 재난 같은 예기치 못한 황충에 먹힘을 당하곤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먹는 자를 막아 주시겠다고 하였습니다.

 

2) 축복의 문을 열어 주십니다.

10절에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늘의 문은 축복의 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복의 근원자입니다. 하박국 2:8에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두는 곳이 있다고 하였습니다(마 6:20). 일반적으로 하늘의 복이라고 할 때 신령한 축복을 의미합니다(엡 1:3). 그뿐 아니라 땅에서도 자자손손 누리게 될 세상적인 축복도 포함됩니다(신 28:1-6). 시편 128:2에는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고 하였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는 인간의 수고는 헛되다고 하였습니다(시 127:2).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지키는 사람들을 위하여 하늘의 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3) 축복의 표본이 되게 하십니다.

12절에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이 복을 받게 되면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자손을 천하 만민가운데 축복의 통로로 삼으신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도를 좇아 의와 공도의 표본이 되게 하려는 뜻이었습니다(창 18:19).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에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복을 받는 것은 성경의 약속대로 되는 것입니다. 말라기 3:18에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고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