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들의 자취는 역사의 거울이 됩니다. 앞서간 사람들의 올바른 걸음걸이는 뒤에 따라가는 사람들에게 승리의 길잡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간혹 목표를 잃고 방황하거나 주저앉는 모습은 다른 사람에게 실패의 흔적으로 비쳐지는 것입니다. 옛날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40년간 광야 여행을 하면서 겪었던 애환과 함께 그들의 모습이 후세 사람들에게 거울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받은 축복과 특권을 행사했지만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다가 징벌을 받았던 불행한 흔적도 남아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조상들의 역사를 더듬으면서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당부하였습니다. 넘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넘어지지 않는 믿음의 장부가 되어야만 합니다(고전 16:13).
1. 넘어진 사람들
이사야 14:12에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라고 하였습니다. 성경 역사에는 많은 사람들이 일어섰다가 넘어져버린 기록이 있습니다.
1) 선 줄로 생각하는 자입니다.
12절에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방심하는 자를 뜻합니다. 높은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은 많은 경륜과 관록이 있고, 여러 사람이 부러워하는 위치에 있는 자입니다. 넘어지고 실족하는 사람은 어리거나 가벼운 사람이 아닙니다. 체구가 크거나 중량감이 있는 사람일수록 실족할 확률이 많고 그만큼 위험부담도 큰 것입니다. 신앙세계에서도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았거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일수록 넘어질 위험이 많습니다. 모세와 함께 애굽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그들은 유월절의 피 뿌리는 절기를 통하여 출애굽한 사람들로서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고 신령한 음식과 음료를 마신 사람들입니다(2-4절). 그렇지만 모두다 광야에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2) 시험에 빠지는 사람입니다.
본문 말씀 5절에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다같이 출애굽의 감격과 홍해를 건너온 체험이 있었지만 광야 생활에서 오는 시험의 벽을 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본문 말씀7-10에는 그들이 겪었던 시험의 유형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그들을 넘어지게 하고 멸망하게 한 요인은 여러 가지입니다.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숭배한 것입니다(출 32:4). 발람의 덫에 걸려 모압 여인들과 음행하다가 2만 3천명이 죽었습니다(민 25:1).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뱀에게 물려죽었습니다(민 21:6). 패역한 사람들의 충동에 말려 주님을 원망하다가 멸망당했습니다(민 14:29-37). 하나님의 백성에게 이와 같은 시험은 살아있는 동안 끊임없이 밀려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3) 멸망을 당한 사람입니다.
히브리서6:4-6에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 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는 에서와 같이 축복의 특권을 받고도 소홀히 여기거나 방심하다가 불행하게 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히 12:16-17) 언약궤를 앞세운 여호수아의 군대가 요단강을 건너고 여리고 성을 단숨에 함락시키고 기세등등하게 진격했으나 아이성 전투에서 방심하다가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아간의 범죄 때문이었습니다. 아간 한 사림의 실족은 이스라엘을 불행하게 하였고, 가족들까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수 7:22-26).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도 실족하여 넘어지고 불행하게 되었습니다(삼상 31:6).
2. 넘어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
여기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하신 것은 넘어질 수밖에 없는 개연성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차라리 앉아 있거나 누워있는 사람은 넘어질 염려가 없지만 서 있는 사람에게는 넘어질 위험성이 훨씬 더 많기 때문입니다.
1) 불안한 세상입니다.
인간이 사는 세상은 예측 할 수 없는 불완전한 상황이 연속되고 있습니다. 천재지변과 같은 자연재난이나 기후의 이변으로 일어나는 환경문제도 크게 작용합니다. 그런 것 말고도 정치적인 상황이나 사회적인 여건도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요인이 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초대교회의 경우 수백 년 동안 무신론적인 세상 권력이 교회를 넘어뜨리려고 온갖 박해를 가했습니다. 그런가하면 중세기 이후 기독교에 자유가 선언된 시절에는 여러 가지 이단들이 일어나서 교회를 흔들었습니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인간의 지식과 물질문명의 발달로 인하여 세속주의와 쾌락주의의 사상이 교회를 휩쓸고 있습니다. 이사야가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라고 한 것은 넘어지기 쉬운 세상의 형편을 표현한 말씀입니다(사 40:30).
2) 불완전한 인간입니다.
앞서 언급한 세상적 상황이 넘어짐의 외적 요소라고 한다면 인간의 불완전성은 내적 요인이 됩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주님앞에서 바른 신앙고백을 하였고 열정적으로 주님을 사랑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고(마 26:69-75), 부활하신 예수님을 버려두고 갈릴리 바다로 달아나기도 하였습니다(요 21:3). 베드로가 처음부터 주님을 거부했거나 계획적으로 주님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였습니다. 그것은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기 때문입니다(마 26:41). 사도 바울도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고 하였습니다(롬 7:19). 마음으로 큰소리치고 결심도 하지만 그것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자기에게는 없다는 것입니다.
3) 가파른 벼랑 끝에 서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천당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어디에나 다 마귀가 활동하는 공간입니다. 마귀는 호시탐탐 하나님의 백성을 넘어뜨릴 궁리만 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여기에서 예외는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조건을 다 갖춘 사람이라도 마귀의 공격을 받으면 순식간에 곤두박질하고 넘어지는 경우를 수없이 보아왔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의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하였습니다(벧전 5:8). 다윗은 자기의 생명을 찾는 자가 그를 넘어뜨리려고 올무를 놓고 음모를 꾸미며 그가 실족하는 것을 보면서 즐길 것을 생각하니 속이 상한다고 하였습니다(시 38:12-16). 그러므로 스스로 선 줄로 생각하는 사람은 잠시도 방심하거나 교만하지 말고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3. 넘어지지 않는 사람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다고 하였습니다(히 12:1).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인물이 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온갖 박해와 시험을 당하면서도 넘어지지 않고 거뜬히 이겨 낸 사람들입니다. 이들이야 말로 승리의 간증자인 것입니다.
1) 믿음에 굳게 선 사람입니다.
히브리서 11:1-2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은 아득한 미래를 현실로 여기며,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를 증거하는 것입니다.아벨과 에녹과 노아와 아브라함과 모세와 같은 사람들이 그런 증거자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의 눈에는 허망하게 보이는 것이라도 그들의 눈에는 확실한 근거가 됩니다. 이 믿음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거기에다가 인생을 걸었지만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이 믿음 때문에 수없이 많은 죽음의 고비를 당하곤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심한 고문을 받았으나 구차히 피하지 않았습니다. 결박당하고 옥에 갇히고 채찍에 맞고 톱으로 켜고 칼로 죽이는 죽음을 당했지만 결코 넘어지지는 않았습니다(히 11:35-38).
2) 훈련 된 사람입니다.
디모데전서 4:7-8에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경건에 이르는 연단은 영적인 훈련을 뜻합니다(고전 9:24-25). 예수님께서 제자의 도를 가르치실 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였습니다(마 16:24). 심하게는 자기의 지체 중 하나가 저를 넘어지게 한다면 손이나 발을 찍어 버리더라도 실족하지 않게 하라고 하였습니다(마 5:29-30). 영적 훈련에 숙달된 사람은 어떤 시험에도 넘어지지 않는 비결을 터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겸손한 자세입니다. 잠언 16:18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걸어 넘어지게 할 만한 요소를 내려놓는 것입니다(히12:1).
3)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입니다.
중생한 성도는 그의 삶의 전부를 하나님께 의존하는 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고전 15:10). 우여곡절이 많은 세상에서 흔들리거나 넘어지지 않고 굳게 설수 있는 것도 오직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41:10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베드로에게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라고 하였습니다(눅 22:31-32).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강한 손으로 자기 백성을 붙들어 주십니다(사 4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