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설교

장년
예람지기 2011.08.1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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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bridge)의 역사는 인류의 문명과 함께 시작되고 발전되어 왔습니다. 주거지에서 이곳저곳으로 이동을 하면서 길이 생기고 길을 따라서 개울이나 넓은 하천을 건너기 위하여 다리를 놓게 됩니다. 초기에는 짧은 거리에 돌이나 나무를 이용한 징검다리 또는 섶다리와 같은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점차 토목과 건축기술의 발달로 콘크리트 교각에 철재 구조물로 다리를 놓아 넓은 강과 깊은 골짜기를 가로지르며 거리와 공간을 단축시켜 놓았습니다. 오늘날에는 각종 신기술을 이용하여 바다 위로 또는 바다 밑으로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대형 교량들이 건설되면서 섬과 육지, 또는 대륙과 대륙을 연결시키는 도로의 혁명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옛날 야곱은 하늘과 땅을 연결짓는 신비로운 다리를 보았습니다. 인간이 만든 다리와 하나님께서 경영하시는 다리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공간적 다리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만드는 교량은 강이나 골짜기를 가로질러 이쪽과 저쪽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다리를 놓고 그 위로 양쪽 사람들이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다리를 통하여 많은 물동량의 이동되고 경제와 문명의 향상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1) 지정학적 공간을 이어줍니다.

똑같은 지구 위에 있으면서도 지리적인 간격으로 교통이 두절되는 것 말고도 정치적으로 갈라져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지리적 조건이 강이나 바다 또는 험준한 산맥이 가로막혀 마주보는 거리에 있으면서도 완전히 단절된 상태를 생각하게 됩니다. 다른 한편은 고대부터 부족이나 국가와 같은 공동체가 형성되면서 서로 이해를 달리하는 집단끼리 경계선을 갈라놓고 소통의 장벽을 만들어 왔습니다. 현대 국가에서는 국경을 마주하는 이웃 나라끼리 경비를 세우고 자유로운 소통을 저해합니다. 그것은 자국민의 생존과 영토를 지키기 위한 안보적 차원에서 불가피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지정학적 공간도 다리로 연결하여 소통하게 하는 것이 오늘날 지구촌 시대의 과제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2) 공동 이익과 번영을 가져옵니다.

영국과 프랑스를 연결하는 도버해협의 해저터널이 1994년 개통되면서 이 다리는 두 나라뿐 아니라 유럽 공동체의 상징물이 되었습니다. 바다 밑 터널과 바다 위의 육교로 이어지는 연장 50.4km의 이 길이 연결되므로 연간 1천만 가까운 사람들과 많은 물동량이 운송되어 경제적 번영과 문화의 향상을 이루어놓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적대관계에 있을 때는 양국을 갈라놓은 그 바다가 상대국의 침략을 막아주고 자국의 안전을 지키는 안보의 상징이었지만, 화해와 협력의 물꼬가 트이고 나서는 이렇게 평화와 번영의 상징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입니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거가대교를 비롯해서 육지와 섬, 섬과 섬 사이를 연결하는 해상 육교가 많이 생겼습니다. 이와 같은 새로운 교통로가 열리면서 거리와 시간을 단축시킨 것말고도 눈부시게 발달한 기술과 물질문명의 상징으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3) 문제를 안고 있는 다리입니다.

지상에 인간이 만들어 놓은 공작물들은 어디에나 불안전한 요소를 지니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천재지변과 같은 예기치 못하는 변수가 있습니다. 또한 인간의 지식이나 기술도 한계가 있게 마련입니다. 요즘 자주 발생하는 지진이나 해일 또는 태풍이나 홍수와 같은 자연 재난들이 가공할만한 인간의 문명을 초토화시켜 버리곤 합니다. 사람의 생각도 돌변하여 평화와 공존이 전쟁과 갈등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국가나 인종, 지역과 계층 간에 갈등을 빚게 되면 언제든지 긴장관계로 돌아서게 되고 화해와 평화의 다리는 순식간에 무너져 버리게 됩니다. 오랜 세월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다리의 역할도 인류에게 소통과 교류의 도구로 발전했는가 하면 콰이강의 다리나 폭파된 한강 철교와 같이 전쟁과 비극의 상징물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2. 사상적 다리가 있습니다.

지정학적으로 갈라져 있는 공간을 교통할 수 있도록 이어주는 다리는 눈에 보이는 현상이요, 물리적 성격의 공작물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사상적 단절을 연결하는 다리가 있습니다. 이것 역시 인간 역사와 뿌리를 같이하고 있어서 쉽사리 뚫리지 않는 난제이기도 합니다.

 

1) 돌아오지 않는 다리입니다.

날아다니는 새까지도 돌아오지 못한다는 비극의 다리가 있습니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입니다. 한반도의 분단을 상징하는 판문점에 휴전선을 가로지르는 짧은 다리입니다. 1953년 7월 휴전협정 조인 후 포로교환을 하면서 이 다리를 건너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입니다. 전설에 나오는 오작교는 견우와 직녀가 일 년에 한번이라도 만난다고 하지만 일천만 이산가족과 우리 민족의 한을 담은 이 다리는 60년이 넘도록 비정과 절망의 유물로 남아 있습니다. 1972년 남북 적십자사 합의로 이산가족의 상봉 길이 열린 때가 있었습니다. 서울과 평양에서 부모와 형제, 가족이 혈육의 정을 나누게 하는 극적인 장면이 연출되어 세계를 울리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가장 기본적이고 인도적인 요소도 사상이라는 벽에 막혀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더 이상 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2) 자유의 다리입니다.

임진각 북쪽에는 자유의 다리가 있습니다. 경의선 하행 철교였던 것을 개조하여 자동차도 다니는 다리를 만들었습니다. 본래는 마을 이름을 따서 독개다리라고 불렀는데 휴전과 함께 한국군과 유엔군 포로 1만 2,773명이 이 다리를 건너 자유의 품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자유의 다리가 된 것입니다. 이 다리가 한반도를 갈라놓은 155마일 철책 사이로 남과 북을 이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서로 총부리를 맞대고 전시상황을 연출하면서도 이따금씩 해빙의 바람과 함께 평화의 대로가 되기도 합니다. 대통령을 비롯하여 남북한의 당국자들이 건너다니기도 했고, 고 정주영 회장은 소 500마리를 몰고 넘어간 적이 있었으며, 지금도 식량과 인도적인 물자가 그 다리를 통하여 북으로 넘어갑니다. 자유의 다리야말로 조국의 통일과 자유를 열망하는 남북한 모든 민족의 염원이 담긴 다리인 것입니다.

 

3) 오래도록 미완성으로 남을 다리입니다.

인간 세계에서 사상이나 이념을 하나로 통일시키는 완전한 다리는 없습니다. 지정학적인 역학구도에 따라 갈라져 있는 공간을 구조물의 다리가 소통 시켜주기도 하고, 사상과 이념의 강을 넘나들게 하는 화해와 평화의 다리가 구축되기도 하지만 완전하게 정착되지는 못합니다. 여러 해 전부터 남북한 당사자를 비롯한 한반도 주변의 관련국들이 한자리에 모여 앉아 6자 회담을 수없이 열었지만 핵문제나 민족통일의 물꼬를 트지는 못했습니다. 정치나 경제적 힘만으로는 갈라져 있는 사상을 하나로 만들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하늘 아래 살면서도 정치 집단이나 계층 간에 벌어지는 사고의 장벽은 끝없는 대결양상으로 발전하며 국력을 소진하고 있습니다. 범죄한 인간의 마음을 하나로 연결시켜 줄 완전한 다리는 없습니다.

 

3. 영적 다리가 있습니다.

야곱이 벧엘 들판에서 잠을 자다가 꿈에 다리를 보았습니다. 그 다리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수직적인 다리입니다. 12절에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1) 계시의 다리입니다.

인간에 의하여 만들어진 다리는 여러 가지 불완전한 요소를 지니고 있습니다. 불가항력적인 자연 재난에 무너지거나 인위적인 상황에 의해서 그 기능을 상실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 야곱에게 보여준 영적 다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완전한 다리입니다. 비록 계시와 환상으로 보여졌지만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기를 나타내는 수단으로 작용한 것입니다. 사다리를 본 야곱이 깜짝 놀라 두려워할 때 하나님께서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13절). 그리고 그와 그의 후손을 통하여 전개될 하나님의 계획을 선포하였습니다. 이것은 야곱이 원해서 된 것도 아니고 자기 힘으로 만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나타내시는 주권 행위입니다. 곧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을 아우르게 할 계시의 다리입니다.

 

2) 축복의 다리입니다.

야곱은 그 사닥다리 위로 하나님의 사자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이 다리는 하늘과 땅이라는 공간을 연결하는 물리적인 구조물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소통시키는 계시의 통로입니다. 이 계시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들의 예배적 삶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사닥다리로 하나님의 사자가 오르내리는 것처럼 땅에서부터 성도들의 기도와 예배와 헌신이 하나님께로 올라가고 하늘에서는 계시의 사인과 기도의 응답이 내려오는 것을 뜻합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큰 불행은 하나님과 관계가 두절된 것이며 최상의 축복은 하나님과 긴밀하게 교통하는 것입니다. 사닥다리 환상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고 하신 축복의 증표입니다(15절).

 

3) 이 다리의 실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다리 위로 하나님의 사자가 오르락내리락 하였다는 것은 예수님의 연결통로를 타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교통이 이루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고 하였습니다(요 1:51). 예수님은 죄로 인하여 원수가 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화목케 하고 연결시켜 주신 다리입니다. 에베소서 2:14-16에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영원한 지옥에 들어가야 마땅한 사람이라도 예수님의 십자가 다리를 이용하면 하나님과 교통이 이루어집니다. 십자가의 다리는 하나님과 사람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끼리도 하나로 묶어 주는 연합의 다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