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설교

지구상에는 많은 나라와 종족과 언어가 있고 제각기 고유한 문화를 가지고 있어서 그 살아가는 방법도 다양합니다. 그중에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받은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독특한 생활양식을 가지고 있습니다(히 11:38). 그들은 땅에 살아도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들입니다(빌 3:20). 그들은 하나같이 예수님의 분부를 따라서 그의 삶을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본문 말씀에는 예수님께서 열두 명의 제자를 세상에 내보내면서 당부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과 함께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받았습니다. 또한 그들의 앞에 상당한 시련과 환난이 있을 것을 예고해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 문제에 부딪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의 당부하신 말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1. 비난을 두려워 말아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쳐 주신 일이 있었습니다. 이 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였습니다(마 12:24). 여기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고 하신 말씀은 그 뜻입니다.

 

1) 마귀의 상투 수법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마귀가 활동하는 공간입니다. 에베소서 2:2에는 마귀를 공중의 권세 잡은 자라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 중에 예수님과 상관없는 자연인들의 경우 그 지배를 받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마 12:43-45). 마귀는 자기를 천사로 가장하여 사람들에게 접근합니다(고후 11:14). 성경에는 마귀를 거짓으로 속이고 미혹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계 20:3). 계시록 12:9에 마귀를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10절에는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다.”고 하였습니다. 참소 하는 것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조작하여 이간질하는 행위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하와에게 하나님을 참소하였고(창 3:4-5), 하나님 앞에서는 욥을 모함하기도 하였습니다(욥 1:9).

 

2) 사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실 때 이를 사탄의 왕 바알세불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재판할 때 빌라도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다고 하였으나 그들은 거짓 증인을 내세워서 증거로 조작하였습니다(마 26:59-61). 아합의 아내 이세벨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을 때도 이런 방법을 썼습니다(왕상 21:13). 스데반을 죽일 때도 거짓 증인들이 나와서 그가 모세의 율법을 고치겠다는 말을 했다고 거짓말을 하여 돌로 쳐 죽이게 하였습니다(행 6:14). 악한 자들이 근거 없는 비방을 하고 거짓으로 죄를 씌워 생명을 빼앗더라도 사실은 왜곡되지 않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가 누명을 씌워 감옥에 들어갔으나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침묵하였습니다(창 39:19-23). 사실이 아닌 것에는 요동하지 않는 것이 주님을 의지하는 신앙입니다.

 

3) 진리는 밝혀지기 때문입니다.

26절에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진리는 불변이며 영원합니다. 세상에서 이따금씩 진실이 거짓에 가려지거나 사람의 기억에서 잊혀지는 때가 있어도 결국은 드러나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기 때문입니다. 진리와 비진리가 대결하고 참과 거짓이 싸울 때 사람들은 자기의 편리에 따라 처신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진리의 편을 들어주십니다. 아합 왕 당시 사마리아 광장에 모인 400명의 선지자들이 왕의 귀에 맞는 거짓 예언을 하고 있을 때 미가야는 자기가 보고 들은 사실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그 결과 감옥에서 고생의 떡과 물을 먹었지만 결국 아합 왕은 전쟁터에서 죽고 미가야가 전한 예언은 진실로 드러났습니다(왕상 22:19-36).

 

2. 박해를 두려워 말아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으로 내보내실 때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고 하였습니다(마 10:16). 그래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1) 주님의 목적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역대의 선지자나 사도들 중에 하나님의 분부를 받들어 자기의 소임을 다한 사람은 편안한 죽음을 맞지 못했습니다. 히브리서 11:35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하였습니다(마 5:11-12). 그것이 제자의 길이기 때문입니다(마 16:24). 마태복음 10:18에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주의 이름 때문에 고난당하는 것은 자랑스러운 증거가 된다는 뜻입니다.

2)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말씀 28절에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박해자들은 인신을 구속하거나 육체에 고문을 가하고 생명을 빼앗기도 하지만 그 이상은 어찌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신앙은 육체에 있지 않고 영혼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세상의 무신론적 권력이 그것까지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사탄이 하나님 앞에서 욥을 참소하여 온갖 박해를 가했지만 그의 생명은 손댈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았습니다(욥 2:6). 순교자의 길을 가는 사람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영원한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육신의 생명을 포기하는 사람입니다(히 11:35).

 

3) 주님의 가호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0:19에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자기의 이름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는 현장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실시간대로 살피시면서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방법으로 개입하시고 손을 쓰십니다. 풀무불에 들어가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위하여 그의 사자를 보내서 화염을 막아주셨습니다(단 3:25). 이사야 41:10 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하였습니다.

 

3. 의식주 문제를 두려워 말아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고 하였습니다(30-31절).

 

1) 하나님의 경륜이 있습니다.

본문 말씀 29절에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앗사리온은 동전의 명칭인데 한 앗사리온은 1/10 드라크마에 해당하는 것으로 매우 가치가 적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미미한 것이라도 하나님께서 간섭하시는데 예수님의 삶을 사는 제자들이야말로 주님께서 어련히 챙기시겠느냐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원대한 역사의 경영 속에는 자기 백성의 모든 문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앞에 어떤 환난과 시험이 있을 것을 미리 아시고 거기에 대비할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하시는 분입니다. 고난을 받고 죽음을 당하는 것까지도 하나님의 허락 속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의 보장이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입고, 먹고, 사는 의식주(衣食住)문제가 중요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문제를 두고 많이 염려하곤 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라고 하였습니다(마 6:25). 그리고 공중의 새와 들에 핀 백합화를 비유로 말씀하였습니다. 새를 먹이시고 꽃을 입히시는 하나님께서 이것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너희들을 먹이시고 입히시지 않겠느냐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들에게 전도의 명령을 하시면서 여행을 위하여 돈을 지니지 말고 의복도 별도로 가져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고 하였습니다(마 10:9-10). 그들에게 명령하신 주님께서 이 모든 것을 보장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3) 행한 대로 보상이 따릅니다.

본문 말씀 32-33에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너희의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된다고 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말과 행동, 또는 그들의 헌신과 봉사까지 낱낱이 헤아리시고 그것을 증거로 남겨 두십니다. 말라기 3:16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 기록을 근거로 공정하게 보상하시는 분입니다. 마태복음 16:27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고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