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설교

장년
예람지기 2011.01.1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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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사람에게 삶의 목적과 그 방법을 일러 줍니다. 삶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고전 10:31). 그 방법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좇아서 사는 것입니다. 시편 128:1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고 하였습니다. 지혜자 솔로몬은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고 하였습니다(잠 16:9). 인생이 자기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는 자입니다(17절).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추구한다고 하면서도 자기의 임의대로 살아갑니다. 주님의 뜻을 바로 알고 그 뜻을 따라서 사는 사람이 승리적인 삶을 사는 자입니다.

 

1.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것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사는 사람은 언제나 어디서나 무슨 일에나 시간과 공간과 사건에 구별이 없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6-18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하였습니다.

 

1) 항상 기뻐하는 생활입니다.

“항상 기뻐하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의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축복의 명령과 함께 기쁨의 은혜도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은 이 축복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항상 슬픔과 짜증으로 살아갑니다. 기쁨의 원천인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베들레헴 목자들에게 크리스마스 새벽송을 하던 천사들은 예수님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복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사람은 은혜를 항상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히 13:8). 항상 헌신자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기쁨이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악인의 장막에서 천 날을 사는 것보다 하나님 집 문지기로서 하루를 사는 것이 더 낫다고 하였습니다(시 84:10).

 

2)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특권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이 아버지와 마음놓고 교제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롬 8:15).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하나님과 교통하는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대상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이 말씀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도의 사람 다윗은 하나님께서 “나의 생각과 내가 가는 길을 익히 알고 계시며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고 하였습니다(시 139:1-4).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은 항상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며 거기에 따라서 행동하게 됩니다. 기도가 그의 삶이 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능력을 힘입어 승리의 삶을 실천하게 되는 것입니다(빌 4:10-13).

 

3)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범사(凡事)에 감사하라는 것은 무슨 일에나 다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였습니다(고후 9:15). 좋은 일에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환난과 질고 가운데서도 감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좋은 일뿐만 아니라 힘든 일 가운데서도 감사할 것을 원하십니다. 바울의 경우 자기의 몸을 찌르는 육체의 가시를 두고도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고후 12:10). 실라와 함께 빌립보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도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감사와 찬송을 하였습니다(행 16:25-26). 자기의 마음을 비우는 사람은 무슨 일에나 감사할 수 있습니다(마 5:3). 선지자 하박국은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어도 그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합3:17-18)

 

2. 거룩한 삶을 실천하는 것

데살로니가전서 4:4에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하고 성도들을 향하여 거룩한 삶을 요구하였습니다(레 11:45).

 

1) 예배적 삶을 사는 것입니다.

로마서 12:1에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하였습니다. 예배적 삶을 사는 사람은 세상적 유행이나 쾌락을 좇지 않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롬 12:2).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고 하였습니다(요 4:23). 교회에서 드리는 주일예배나 공적인 예배를 비롯해서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어떤 모임에서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를 정성껏 드려야 됩니다. 온 가족이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항상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을 가장 우선적인 과제로 삼아야 됩니다.


 

2) 성령과 함께하는 삶입니다.

본문 말씀 17-18절에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육체적인 소욕을 추구하면서 세상적인 쾌락에 빠져 세월을 허비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성령에 이끌림을 받는 사람은 언제나 은혜로운 마음을 가지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엡 5:19-20). 고린도전서 2:10에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거룩한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면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이 근심하게 되고(엡 4:30), 급기야 소멸하게 됩니다(살전 5:19).

 

3) 절제하는 삶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자기 속에 정욕이 있는 것을 인정하고 항상 자기와의 싸움을 싸웁니다. 이를 소홀히 하거나 조금이라도 방심하게 되면 사탄에게 흔들립니다. 고린도전서 10:11에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속에 육체의 소욕이 있어서 항상 거룩한 삶을 방해 한다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8:5에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고 하였습니다. 13절에는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속에 있는 정욕을 억제하고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서 날마다 자기 몸에 채찍을 가하여야 됩니다(고전 9:27).

 

3. 하나님의 주권에 승복하는 것

포도원에서 일하는 품꾼들 중에는 3시, 6시, 9시와 11시에 와서 일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모두에게 똑같이 한 데나리온씩 품삯을 주었습니다. 먼저 와서 오랜 시간 일한 사람들이 불평을 하였습니다. 그때 주인은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고 하면서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고 하였습니다(마 20:14).

 

1) 내 생각과 맞지 않을 때

이사야 55:9에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늘과 땅의 기준이 다른 것처럼 우리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도 기준이 같을 수가 없습니다. 포도원의 일꾼 가운데 아침 일찍 온 사람과 늦게 온 사람이 같은 품삯을 받게 되자 불평을 한 것도 생각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랜 시간 많은 일을 한 사람과 짧은 시간 적게 일을 한 사람이 같이 취급 받는 것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고 하신 말씀(마 13:12)도 쉽게 납득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거나 또 알더라도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기준과 다르기 때문입니다(욘 4:9-11).

 

2) 하나님의 주권에 승복해야 됩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토기장이가 흙 한 덩이로 큰 그릇이든지 작은 그릇이든지 임의대로 만드는 것을 보았습니다(렘 18:4). 로마서 9:19-21절에는 하나님을 토기장이로 우리를 진흙으로 비유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로마서 11:36에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는 말입니다. 이런 원리를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승복합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극렬히 타는 풀무불 속으로 들어가면서도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승복 하겠다고 하였습니다(단3:18).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의 쓴잔을 앞에 두고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바라나이다.”고 하였습니다(마 26:39).

 

3)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로마서 8:28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선택하신 자기 백성을 위하여 상상할 수 없는 은혜와 축복을 예비해 두십니다. 다만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는 불가피하게 시련과 연단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입니다. 뒤늦게 이 사실을 깨닫게 된 사람은 그 시련의 기간 동안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한 것은 자기의 무지몽매함 때문이었다고 고백합니다(시 73:21-23). 무지한 인간이 심오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면 저절로 머리를 숙이며 감탄하게 됩니다. 로마서 11:33에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고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