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사람 가운데서 구별된 사람입니다. 이를 거룩한 무리(聖徒)라고도 하고, 하나님의 자녀라고도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라고 표현하기를 좋아했는데, 이 말이 그의 서신에 164회나 쓰여졌습니다. 본문 말씀 1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고 하였습니다. 2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자유함을 누리는 특권이 있습니다. 전쟁과 재난과 질병과 같은 죽음의 세력이 거칠게 도전해 오는 세상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이를 거뜬히 이기며 살아갑니다. 이 시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의 특징을 살펴보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신앙의 근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신비로운 연합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포도나무 비유를 통하여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하였습니다(요 15:5).
1) 체험적 신앙의 특징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이론이나 지식이 아닌 신비요 체험입니다. 사도 바울은 어릴 때부터 배운 율법적 지식과 당시 유행하던 철학을 근거로 기독교를 이해하려했으나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신비적 체험을 통하여 새로운 시각이 열렸습니다. 그때부터 그토록 증오하던 예수님과 십자가의 도리에 붙들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조상 때부터 섬겨 오던 하나님과 전통적인 율법의 척도에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마땅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을 저주의 죽음이라고 단정하였습니다(신 21:23).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는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였습니다(고전 1:18).
2) 계시 의존의 신앙입니다.
기독교 복음의 신비는 성경 계시에 의존하지 않고는 풀 수 없는 수수께끼입니다. 예수님의 동정녀(童貞女)탄생을 예언한 이사야는 이를 ‘임마누엘’이라는 말로 표현하였습니다(사 7:14). 곧 하나님의 아들이 여인의 몸을 통하여 육체를 입으시고 탄생하신 그 사실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의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 당시 유행하던 철학의 사상으로는 하나님의 신성이 인간인 육체와 함께 연합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바울 당시 유행하던 영지주의(gnosis) 이단들은 인간의 탁월한 지식이 구원을 얻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와 같은 인간의 주관적 자아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객관적 계시에 의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 구원에 이르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고전 1:22-24).
3)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17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거듭남의 도리를 말씀하셨습니다(요 3:3). 본래는 육신의 사람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사람으로 새롭게 되는 신비를 의미합니다. 이와 같은 신비의 체험을 통하여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갈 2:20). 불교에서 무아지경에 들어간 사람이 ‘내가 부처이고 부처가 나’라고 하는 것처럼 ‘내가 그리스도고 그리스도가 나’라는 혼합적 논리가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만 살아 있고 나는 그에게 속했다는 신앙입니다.
2. 사상의 근거입니다.
바울이 스데반을 죽이는 일에 동참한 것도(행 7:58) 대제사장의 공문을 들고 다메섹으로 달려 간 것도 율법을 준수하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사로잡힌 후 그의 생각이나 사상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것은 성경에 근거한 신학사상의 체계가 되었습니다.
1) 전적 부패한 인간입니다.
전통적인 유대인들은 율법을 준수하되 그들 자신은 율법에 의하여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자기들만의 전유물로 여겼고 저희들은 완전한 사람으로 생각하여 다른 사람을 정죄하곤 하였습니다(마 23:4). 대부분의 인간 종교들은 모두 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자기는 완전한 자로 알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며 보복하는 것을 정당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다 죄인이라는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롬 3:10). 아담의 후손된 인류는 모두 다 죄 아래 있기 때문에 죽음의 종노릇 하는 것입니다(롬 5:12). 이처럼 인간의 본질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사람은 스스로 거기서 헤어나올 수 없는 것을 알고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저내랴.”하고 외부의 도움을 구하게 됩니다(롬 7:24).
2) 구원에 대한 확신입니다.
본문 말씀 2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무능한 인간이 스스로 죄와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값없이 구원의 은혜가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로마서 3:23-24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바울은 철저하게 인간의 공로나 노력을 배제하고 하나님의 은혜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자신이 하나님께 죄인이었고 거역하는 자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도로 세우셨으니 이를 은혜라는 말로 표현하였습니다(고전 15:10).
3)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바울의 교회론은 유대주의적 한계를 벗어나 범세계적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적 교회는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전통적인 예배와 의식에 치중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이후 신약적인 교회는 언어나 종족이나 국경을 초월하여 모든 인류를 대상으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눈에 보이는 조직이나 형식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생명운동의 산실이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23에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교회는 세상을 향하여 끝없이 생명력을 과시하며 그 영역을 넓혀 나갑니다(사 54:1-3). 죄와 죽음 아래 얽매였던 영혼들이 교회와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고 신령한 자양분을 공급받으며 생명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삶의 원리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삶의 목표와 방향이 분명합니다. 로마서 14:7-8에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고 하였습니다.
1) 사명의 확신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과 상관없이 살아온 시절을 ‘그리스도 밖에 있은 때’라고 하였습니다(엡 2:12).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은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입니다. 그들은 배를 하나님으로 여기며 부끄러움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땅의 일만 생각하는 자입니다(빌 3:19).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께 붙잡힌 그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매진합니다(빌 3:12-14). 예수님께서 바울을 붙잡으시고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하였습니다(행 9:15). 이후부터 그는 그리스도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걸었습니다. 평생 동안 전파하고 가르치고 서신을 기록하는 등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발휘하였습니다. 그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빌 4:13).
2) 헌신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헌신은 기쁨과 즐거움을 동반합니다. 바울은 간 데마다 박해를 당하고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는 등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수없이 겪었지만 불평하거나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였습니다. 골로새서 1:24에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평소 자기가 ‘죄인 중에 괴수’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제게 직분을 주시고 사명을 맡기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있었습니다(딤전 1:12-15). 그와 같이 하나님께 봉사하는 것을 즐겼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서 헌신하는 것도 더 없는 행복으로 여겼습니다(빌 2:17-18).
3) 환상과 꿈이 있습니다.
바울은 환상의 사람입니다(고후 12:7).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첫 만남도 환상으로 이루어졌습니다(행 9:3).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 교회에서 첫 선교사로 파송될 때도 금식하던 중 성령의 계시를 받고 출발하였습니다(행 13:2). 소아시아에서 활동하던 중 드로아에서 보여 준 그리스도의 환상이 역사적인 유럽선교의 문을 열었습니다(행 16:9). 고린도에서,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의 박해와 고난을 겪을 때도 주의 사자가 그의 곁에 서 있었고(행 18:9, 23:11), 로마로 행선하다가 그레데 해역에서 풍랑을 만났을 때도 주님의 환상에 붙잡혔습니다(행 27:23).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비중을 둡니다. 신령한 눈이 열려 하늘의 소망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롬 8:24). 그 환상이 있기 때문에 극심한 환난 가운데서도 더 강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고후 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