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 교회는 초대교회 역사에 모범이 되는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에베소는 지중해 연안의 도시로 그 당시 정치, 경제, 종교, 문화, 예술 등 동·서양의 문물이 교차되는 요충지였습니다. 바울의 전도 전성기인 3차 여행 기간 중 성령의 강한 능력을 힘입어 화려하게 그 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행 19:1-7). 바울이 3년간 에베소에 머물며 사역하는 동안 많은 시험과 핍박도 있었지만 이를 잘 극복하고 성도들의 뜨거운 사랑과 열정으로 부흥했던 교회입니다. 밧모섬에 유배생활을 하던 사도 요한은 주님의 계시를 통하여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중 첫 번째로 보낸 에베소 교회의 편지는 이 시대에 우리들에게 적용되는 내용입니다.
1. 주님의 칭찬이 있습니다.
본문 말씀 2-3절에는 에베소 교회의 자랑스러운 전통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곧 이단들의 거짓 선전에도 흔들리지 않았고 또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겪어야 되는 시련도 잘 이겨내었습니다.
1) 성령의 체험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초대 교회는 오순절에 강림한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설립되었습니다(행 2:1-4). 에베소 교회도 바울의 전도와 함께 성령께서 그들 속에 역사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9:6에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고 하였습니다. 교회는 성령의 활동무대입니다. 성령께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들로 하여금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게 하며 이를 신앙으로 고백하게 하는 것입니다(마 16:17). 이처럼 예수를 믿는 성도들이 성령에 감동되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의 손을 통하여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귀신들린 사람이나 여러 가지 병든 사람이 모두 나음을 입었습니다(행 19:11-20).
2) 시험을 이긴 것입니다.
지상교회는 그침 없이 환란과 시험이 밀려옵니다. 예수님께서도 자기 교회의 설립을 선언하시면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마 16:18). 사탄은 밀 까부르듯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들을 흔들어 넘어뜨리려고 애를 씁니다(눅 22:31). 인간의 연약성과 지상교회의 불완전성 때문에 여간한 믿음이 있어도 흔들리고 넘어가는 것을 마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도 불신앙의 세력으로부터 극심한 핍박을 받았고 또 자칭 사도라 하는 거짓 선생들과 여러 가지 이단으로부터 사상적인 공격을 받았습니다(2-3절). 교회가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그대로 건재할 수 있는 것은 환란을 겪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온갖 환란 가운데서도 인내하며 극복해 나왔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것을 기억하고 칭찬하십니다.
3) 진리를 파수했습니다.
6절에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 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니골라당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으나 대체로 율법이나 도덕적 거부감을 유발하여 타락의 길로 이끄는 무리로 보고 있습니다. 14절에 발람의 길을 좇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고 음행하게 하는 무리들이 거기에 속한다고 합니다. 에베소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아데미(Diana)신전이 있었습니다(행 19:23-27). 그곳 사람들은 화려한 아데미 신전을 중심으로 우상숭배와 음란한 행위를 일삼았습니다. 이런 이교적 풍토 속에서도 거짓 신앙에 미혹되지 않고 쾌락주의와 세속주의에 흔들리지 않는 바른 신앙을 지켰기에 주님께서는 이를 귀하게 여기고 칭찬하셨습니다.
2. 주님의 책망이 있습니다.
본문 말씀 4절에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고 관록이 생기면 처음의 순수했던 모습이 퇴색되곤 합니다. 주님께서는 에베소 교회가 지녔던 처음 것을 잃었다고 책망하였습니다.
1) 처음의 믿음입니다.
처음의 사랑은 성경적인 믿음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예수님을 처음 영접하고 감격스러운 신앙고백을 했을 때의 믿음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또한 처음 믿음은 성경말씀에 근거한 바른 믿음입니다.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믿음으로 진리를 파수하는 것과 경건을 실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고 하였습니다(딤후 1:5).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 중에는 믿음의 열심을 자랑하면서도 본래의 상태에서 많이 오염되고 변질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진실한 믿음으로 가장하고 있습니다. 처음 신앙고백을 했을 때의 순수성을 회복해야만 합니다.
자기의 선입견이나 주관을 가지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갓난아이의 마음처럼 깨끗한 바탕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자세를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잊어버리듯이 사람들도 세월이 지나고 환경이 좋아지면 옛날의 어려웠던 시절을 잊어버리곤 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도 조상들이 겪었던 광야시절의 애환을 늘 생각하라고 당부하였습니다(신 32:7). 솔로몬은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고 하였습니다(전 7:14). 욥과 같이 벌거벗은 모습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자세를 가지라는 뜻입니다(욥 1:21).
2) 처음의 사랑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처음 사랑’이라는 말은 예레미야 2:2에 나오는 “네 신혼 때의 사랑”이라는 말을 인용한 것입니다. 신혼 때의 사랑은 첫사랑을 뜻합니다. 거기에는 어떤 꾸밈이나 기교가 없는 순수한 사랑입니다. 성경적으로 말하는 아가페(Αγαπη)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연원(淵源)된 것이며 예수님께서 모범을 보여주신 사랑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 사랑에 감동되어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주님의 몸된 교회와 지체되는 성도들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점차 그 사랑이 형식적인 것으로 전락해 버립니다. 마치 나이 들면서 신혼 때의 사랑이 추억으로만 남게 되듯이 교회 안에도 입에 붙은 사랑으로 겉치레만 합니다. 형식적으로 사랑의 흉내를 내고 있을 뿐, 참사랑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3) 처음의 헌신입니다.
처음 사랑은 말로서 표현하는 것뿐만 아니라 몸으로 희생하는 애정의 실천을 의미합니다. 사도 요한은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고 하였습니다(요1서 3:18). 성경적 사랑은 수고와 헌신을 동반합니다(살전 1:3). 본래 예수님의 사랑은 끝없이 주는 사랑이요,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려주신 희생적 사랑이었습니다. 그 사랑에 감격하는 사람은 스스로 낮은 자리에 내려가서 남을 섬기는 일을 즐겨하게 됩니다. 악인의 장막에서 군림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집에서 문지기로 봉사하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입니다(시 84:10). 처음 은혜를 받았을 때 그 겸손했던 마음을 끝까지 간직하는 사람이 섬김의 삶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3. 주님의 권면이 있습니다.
5절에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대로 처음 행위를 회복하지 아니하면 무서운 징벌을 내리겠다는 것입니다.
1)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초심(初心)으로 돌아가라는 뜻입니다. 첫사랑의 위치로 돌아가서 그때의 상황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됩니다. 생각하라는 것은 마음을 비우라는 뜻입니다.
2) 회개하라고 하였습니다.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회개(悔改)라는 말의 원어적 의미는 ‘뉘우치고 돌아온다’는 뜻입니다(렘 8:4). 잘못된 길을 행하던 사람이 뉘우치고 처음의 바른길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에스겔 33:19에 “만일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 정의와 공의대로 행하면 그가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또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고 하였습니다(마 3:8, 10).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범죄하는 것보다도 회개하지 않는 것을 더 엄격히 다스리십니다. 5절에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하였습니다.
3) 약속을 하였습니다.
7절에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기는 자’는 승리자를 뜻합니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선한 싸움을 잘 싸워서 하나님으로부터 승리자로 인정되었을 때 생명나무의 열매를 상급으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계시록 22:2에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가 열두 가지 열매를 달마다 맺고 그 잎사귀는 만국을 치료하는 약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잠시잠간 살다가 끝나는 육신의 생명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과 소망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의 열매입니다. 예수님 스스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요 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