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설교

장년
예람지기 2009.09.13 00:00:00
888
  • 일자
    2009-09-13
  • 설교
    손상률 목사
  • 성경
    누가복음 9:28~36
그리스도인은 땅에 살아도 하늘나라 백성의 신분을 가진 사람입니다(빌 3:20). 하늘의 시민권자는 하늘나라의 꿈을 간직하고 그것을 향해서 끊임없이 도전합니다(빌 3:14). 본문 말씀에는 예수님의 변화산 사건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베드로, 요한과 야고보 세 사람을 데리고 산위에 올라가신 예수님께서 갑자기 변형되었습니다. 얼굴이 해와 같이 빛나고, 옷은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 그 좌우편에는 모세와 엘리야가 서 있었습니다. 이 황홀한 광경을 본 베드로는 그곳에 초막 셋을 짓고 거기 살자고 하였습니다. 그곳은 땅에 사는 그리스도인이 추구하는 저 높은 곳의 실상입니다. 지구상의 모든 그리스도인이 가슴에 담고 있는 이상향(理想鄕)이요, 또한 궁극적인 소망입니다.

1. 낮은 곳(세상나라)의 실상

예수님은 높은 곳의 주인입니다. 그분이 스스로 낮은 곳에 오셨습니다(빌 2:6-8). 마귀가 활동하는 곳으로, 죄와 죽음의 횡포에 시달리는 인간들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1) 질병과 죽음에 시달리는 곳입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라파엘은 변화산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바티칸시티의 베드로 대성당 안에 소장되어 있는 이 그림에는 산위의 밝은 모습과 대조시켜 산 아래는 어두운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어두움은 죄와 마귀와 죽음이 지배하는 세상을 의미합니다. 그곳에 귀신들린 아들을 데리고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 귀신이 그를 잡아 갑자기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몹시 상하게 하고야 떠나가나이다"고 하였습니다(눅 9:39).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어디에나 이와 같은 불행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마귀는 인간의 약점을 틈타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공략해 오기 때문입니다.

2) 갈등과 반목을 일삼는 곳입니다.

예수께서 산 아래서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말씀 가운데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눅 9:22).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자기 백성들이 거부하며 박대하고 죽였습니다(요 1:11). 질병이나 재난이나 죽음 같은 것은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외적(外的)인 요인이라면 사람끼리 서로 싸우며 대립하는 것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에 의한 내적(內的)요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싸우는 정욕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약 4:1).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살아온 세상에는 다툼과 전쟁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마저도 서로 큰 자가 되려고 다툼을 하였습니다(눅 9:46).

3)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봅니다.

성경은 인간을 전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한 죄인이라고 하였습니다(롬 3:10-12). 사람들은 교육을 통하여 인격의 완성을 이룬다고 하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베드로의 경우 예수님의 교훈과 행적을 배우면서 수제자의 위치에 올랐던 사람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향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하고 신앙고백을 하여 크게 칭찬을 받기도 했습니다(마 16:16-17). 그러나 잠시 후 예수님의 십자가와 고난에 관한 문제를 두고 예수님께 항변하다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고 하시는 책망을 받았습니다(마 16:22-23).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세상에 사는 동안은 언제든지 사탄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는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2. 높은 곳(하나님 나라)의 실체

신령한 눈이 열려 하나님의 세계를 보게 되는 것은 신비로운 은혜입니다. 성경에는 세상에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 나라의 실체를 보여 준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1) 셋째 하늘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의 환상과 계시를 통하여 셋째 하늘의 실체를 보았습니다(고후 12:1-2). 그때 저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잘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육신의 감각으로 체험할 수 있는 현상세계의 상황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그가 소아시아에서 전도할 때 유대인이 돌로 쳐서 죽은 줄 알고 성 밖에 버렸을 때 체험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행 14:19). 셋째 하늘이란 공간적인 하늘과 다른 개념으로서 이는 영적인 세계를 뜻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공기가 있는 대기권을 첫째 하늘이라 하고, 별들이 있는 성군층(星群層)을 둘째 하늘로 불렀으며, 셋째 하늘은 천사들의 활동공간으로 영층(靈層)이라 불렀습니다. 육신을 가진 사람이 환상을 통하여 육신 밖에 있는 영적 세계에 대한 체험을 하였다는 것은 신비입니다.

2) 하늘나라, 곧 천당입니다.

밧모섬에 유배 생활을 하던 사도 요한은 환상을 통하여 체질세계의 종말과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계시록 21:1-2에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 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하였습니다. 지금의 하늘과 땅과 바다는 범죄한 인간들로 말미암아 오염되고 파괴되었기에 죄와 상관없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복낙원(復樂園)이 된 것입니다. 히브리서 11:16에는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하늘의 성(城)이라고 했는데 거기에는 질병이나 재난이나 죽음이 없으며 눈물을 흘리거나 슬퍼할 일이 전혀 없다고 하였습니다(계 21:4).

3) 중생한 성도의 신령한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눅 17:21). 마음속에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임마누엘의 삶을 통하여 순간순간 천당의 실체를 체험할 수 있는 것이 성도의 특권입니다. 로마서 14:17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세상을 사는 동안 먹고 마시는 것과 같은 육신의 문제로 시달리곤 하지만 그래도 그 속에 성령과 함께하는 의와 평강이 있어서 천국의 맛을 즐기게 되는 것입니다. 여리고의 삭개오는 세리장이요, 부자였지만 잃어버린 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모시고 회복된 자의 자리에서 차원 높은 삶을 맛보게 되었습니다(눅 19:1-10).

3. 저 높은 곳을 향하여

고대 희랍 사람들은 영혼과 육신을 분리하는 이원론적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영혼과 육신을 분리하지 않습니다. 다만 영혼과 육신의 갈등 속에서 신령한 삶으로 향상되어 가는 것이 거듭난 사람의 특징입니다.

1) 위의 것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1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고 하였습니다. 땅위에 살면서 하늘의 것을 사모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된 특징입니다. 산위에서 예수님의 변화하신 모습과 함께 황홀한 천당의 환상을 본 베드로가 그곳에 초막을 짓고 그냥 눌러 살자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데리고 내려오셨습니다. 산 아래의 어둡고 답답한 현장이 그들의 활동공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변화산의 체험이 있기 때문에 그 어둠의 현실을 밝게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기도와 찬송과 감사와 예배생활의 즐거움을 간직하며 살아갑니다. 자기 생각의 범주를 뛰어넘어 하나님의 세계를 상상하면서 영적인 감격을 최대한으로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2) 자기와의 싸움을 싸우는 것입니다.

위에 것을 사모하는 사람은 아랫것을 포기하여야 됩니다. 아랫것(육신의 소욕)과 위의 것(성령의 소욕)은 절대로 공존할 수 없습니다. 로마서 8:5에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의 속사람이 하나님께로 향하는 열망을 가질 때 육신의 사람이 이를 막고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그 치열한 싸움이 얼마나 힘들었던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하고 탄식을 하였습니다(롬 7:23-24). 히브리서 기자는 이 고상한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자고 하였습니다(히 12:1).

3) 세상에서도 천국의 삶을 즐기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1에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을 소유한 사람일 경우 거기 맞는 생활양식으로 길들여집니다. 잠시 세상에서 한시적으로 겪게 되는 불편함 때문에 변화산의 감격마저 잃어버린다면 곤란합니다. 현재의 환경이 초막이건 궁궐이건 문제가 아닙니다. 선지자 하박국은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고 하였습니다(합 3:1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