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설교

장년
예람지기 2008.08.31 00:00:00
677
  • 일자
    2008-08-31
  • 설교
    손상률 목사
  • 성경
    사도행전 3:1~10
‘은과 금은 내게 없다’고 한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향하여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생후 40년이 넘도록 지구 땅덩어리를 깔고 앉아 걸어본 일이 없는 앉은뱅이가 즉시 베드로의 손을 잡고 일어섰습니다. 그는 단숨에 뛰어 서서 걸으며 성전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은 은과 금이 있으면 무엇이나 못할 일이 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도 사도들에게 은과 금을 요구했습니다. 사도들에게는 앉은뱅이가 요구하는 은과 금은 없었지만 확실하게 가진 것이 있었습니다.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인 모두가 가지고 있는 특권이요, 축복입니다.


1. 은혜로 받은 이름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수용하는 것은 자기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은혜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라고 하였습니다(사 9:6).

1) 나사렛 예수

‘나사렛’은 예수님의 육친인 요셉과 마리아의 고향이며 예수님께서 자라나신 동네입니다. 누가복음 1:26-27에 보면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고 하였습니다. 지금도 그 동네에 세워진 나사렛 성전을 지칭할 때 천사가 마리아에게 예수의 탄생을 알려 준 곳이라 하여 수태고지(受胎告知)교회라고 부릅니다. 예수께서 탄생하신 후 헤롯왕의 박해를 피해서 요셉이 가족을 데리고 애굽에 갔다가 다시 나사렛으로 돌아왔습니다. 마태복음 2:23에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고 했습니다.

2)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예수님의 신적인 성품을 나타내는 이름입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메시야’라는 뜻인데 이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의미입니다(요 1:41). 구약에서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제사장(레 6:20)과 선지자(왕상 19:16)와 왕(삼상 16:13)에 해당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제사장과 선지자와왕의 직분을 가지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마 16:16) 신앙고백을 한 것도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를 마리아의 몸에서 육신을 입고 나신 인간적인 이름이라고 한다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우는 신적인 성향을 나타내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롬 1:3-4).

3) 주님

성령 받은 베드로가 유대인을 향하여 설교하면서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행 2:36).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고 하셨습니다(요 13:13). 주(κυριο?)라는 말은 임금 또는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신앙고백을 하면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할 때 이는 예수님을 유일한 주권자로 섬긴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곧 예수님의 이름만이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위대하고 유일한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2. 신비로운 이름입니다.

앉은뱅이를 향해서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6절)고 하는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름이 가지고 있는 신비를 아는 사람입니다. 그 이름의 신비는 상상할 수 없는 능력을 발휘합니다.

1) 사죄의 능력입니다.

성경은 인간이 안고 있는 불행의 원인을 죄 때문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5:12에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상 모든 사람들은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몸부림을 쳐 왔습니다. 한편 종교적인 측면에서는 문제의 원인이 죄라는 것에 인식을 같이 하지만 죄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해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오직 성경만이 명쾌하게 이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3:23-24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2) 구원의 능력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유대교 지도자들의 모임인 산헤드린 공회 앞에 서서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하였습니다(행 4:12).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자기 땅에 오셨을 때 사람들이 이를 외면하고 거부하였으나 영접하고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되는 특권이 주어졌다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12-13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인간의 선행이나 노력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받는 도리를 피력하였습니다(롬 3:28).

3) 치유의 능력입니다.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가 고침을 받은 사건을 두고 여러 사람이 호기심을 가지며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10절). 사람들은 베드로의 능력으로 그런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당사자인 베드로는 자기 개인의 권능이나 경건으로 이 사람이 걷게 된 것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서게 되었다는 것을 설명하였습니다(12절). 16절에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갔을 때 거기 모인 많은 병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침을 받았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신기한 능력이 그곳에도 행사되었던 것입니다(행 19:11-15).


3. 영광스럽고 복된 이름입니다.

 초대교회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자랑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는 ‘나사렛 예수’라고 할 때 나사렛 산골에서 난 이름 없는 목수 정도로 생각했겠지만(요 1:46), 사도들은 그 이름을 자랑스럽게 표현하고 자신 있게 증거하였습니다(행 5:41-42).

1) 부활하신 주님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구원하는 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21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예수를 구주로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요 1:11). 예수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멸시와 천대를 하였습니다(사 53:3). 그는 근본 하나님과 본체였지만 자기를 종의 형제로까지 낮추셨고, 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며 무덤에까지 내려가셨습니다. 그러나 무덤에서 살아나신 다음 하나님께서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며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모든 자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하였습니다(빌 2:6-11).

2) 권능과 영광의 주님이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실 때 제자들에게 모든 족속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고 제자를 삼으라는 최후의 명령을 하시면서 그 자신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셨다고 하였습니다. 창조주요, 부활하신 생명의 주님이신 예수께서 지금도 그 위대한 권세와 영광으로 지상교회를 지키시며 그 교회를 통하여 자기의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이 베드로의 손을 잡고 일어난 것도 이 예수의 이름 권세가 나타난 증거입니다. 베드로는 이 사실에 대하여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의 앞에 섰느니라.”고 증거 하였습니다(행 4:10).

3) 세세토록 자랑해야 될 이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그 의미와 가치를 아는 사람은 이것을 소유한 것이 최상의 축복인줄 생각합니다. 고린도후서 4:7에는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비록 질그릇처럼 비천한 존재이지만 보배처럼 존귀한 그리스도를 모셨기 때문에 이 큰 감격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자랑하게 됩니다. 예수를 알기 전에는 세상의 재물이나 권세나 명예와 같은 것을 자랑거리로 삼았던 사람도 예수의 이름과 그 가치를 알고 나서는 이전에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미련 없이 포기해 버립니다(빌 3:8). 그리고 예수를 자랑합니다.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때로는 말 못할 고난과 시련을 겪으면서도 예수의 이름을 전하는 일에 전념하게 됩니다. 예수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 측은하고 그 영혼이 불쌍해서 생명이신 예수를 전해야 됩니다. 그뿐 아니라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미칠까 두려워서 열심히 전하게 됩니다(고전 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