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은 대부분 원인 모를 질병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암이나 고혈압, 당뇨, 심장질환 같은 것도 옛날보다 급증하였지만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인 불안도 더욱 가중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처한 환경이나 문화적인 조건들은 옛날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좋아졌지만 이와는 반대로 사람들은 심리적인 공허함과 정신적인 불안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현재의 삶에서 보람을 찾지 못한다고 할 때 그 마음속에 평안이나 행복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과 현재의 삶을 즐겁고 윤택하게 하는 비결을 일러줍니다.
인간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해결점은 그리스도로 말미암게 되고 그리스도만이 천하인간에게 유일한 소망이 된다는 사실을 바르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19에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불안하고 불확실한 세상을 살지만 소망이 있기 때문에 행복한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1. 꿈이 있는 사람입니다.
1963년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였던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목사는 워싱턴 DC에서 수많은 군중을 향하여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하고 유명한 연설을 하였습니다. 그는 1968년 4월, 40세의 젊은 나이로 괴한의 흉탄에 쓰러졌지만 혼신의 힘을 다하여 차별당하는 흑인들의 인권을 위해 비폭력적 투쟁을 하면서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곤 하였습니다. 그의 생애는 비록 짧았지만 매우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 꿈이 자기 한사람에게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것이라면 더욱 많은 사람과 행복을 같이할 수 있습니다.
옛날 야곱의 아들 요셉은 어릴 때부터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자기의 꿈을 가족들 앞에서 자랑하곤 하였습니다(창 37:6-11). 그것 때문에 형제들의 미움을 받고 오랜기간 동안 엄청난 시련을 겪었지만 결국 그 꿈이 이루어져 모든 사람과 더불어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 주인공이 되었습니다(창 50:20).
꿈을 가진 사람은 그 꿈을 가꾸면서 행복을 누립니다. 이제 막 결혼을 하고 새 가정을 꾸민 젊은 부부가 그들이 설계하는 장래의 희망을 안고 차곡차곡 살림을 늘려 나가면서 행복을 느낍니다.
아이를 낳고 학교에 보내고 그들을 키우면서 장차 자식들을 통해서 이루어나갈 미래의 그림을 그리면서 행복해 하는 것입니다.
우선은 좀 가난하고 어렵더라도 생활비를 쪼개가며 저축을 하는 부부가 나이 많았을 때 따먹게 될 열매를 바라보며 행복한 마음을 가집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지는 행복은 확실한 미래의 꿈이 있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언제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임마누엘의 삶 자체가 꿈이요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옛날 모세와 함께 애굽에서 올라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고달픈 광야 여행기간에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하나님께서 저들과 함께하신 것을 행복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장차 반드시 이루어질 가나안 시대를 꿈꾸면서 자기들은 행복자라고 믿었습니다(신 33:29).
사도 바울도 평생동안 세계선교라는 꿈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 당시의 사회적인 불안과 열악한 교통과 문화와 어려운 환경이지만 그래도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꿈을 안고 지중해를 중심한 세계의 모든 대륙을 휩쓸었습니다. 어떤 역경에서도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확신에 찬 미래를 증거 하였습니다(롬 8:35-39).
2. 현세적 소망의 한계를 아는 자입니다.
예수님의 교훈가운데 ‘부자와 나사로 비유’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16:19-31에 보면 어느 곳에 홍포 입은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매일같이 연락을 하며 호화롭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집 문간에는 나사로라는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개들과 함께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부자도 죽었고 나사로도 죽었습니다. 부자는 음부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동안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낙원의 행복을 누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부자와 가난한 자가 섞여 살고, 행복한 자와 불행한 자가 공존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런 상태로 계속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잠시 잠간 후면 모든 것이 사라지고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세상에 있는 것에다 희망을 걸고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인은 이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이 불오나전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은 믿을 것이 못 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0:6-8에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도요한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뿐이기 때문입니다(요1서 2:15-16).
그것들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요한1서 2:17에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대로 세상적인 희망은 일시적이고 잠시잠깐 지나가는 것에 불가합니다.
일반적으로 행복의 조건이 된다고 보는 권력이나 재물이나 지식이나 명예나 인기나 건강이나 아름다운 미모 같은 것도 다 한순간에 무너지거나 없어지고 맙니다. 시편 73:18-19에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 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세상에 있는 것에다 희망을 걸고 거기에 모든 것을 맡기려는 사람들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녹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 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녹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마 6:19-20).
행복은 행복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것이나 육신적으로 즐길 수 있는 것에서 행복의 가치를 찾겠다고 하는 사람은 절대로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3. 영원한 소망을 가지는 사람입니다.
본문 말씀 5:1에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을 아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늘나라 천당을 믿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일찍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고 하였습니다(요 14:1-2).
흔히들 사람이 세상에 사는 생애(生涯)를 일생(一生)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엄격히 따지고 보면 이생(二生)으로 볼 수도 있고 삼생(三生)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즉 어머니 태중에 있는 동안을 일생으로 보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기간을 이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죽은 다음의 세계인 천당을 믿는 사람은 분명히 삼생으로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일생과 이생은 극히 짧거나 제한된 시간이지만 세 번째의 삶이되는 천당의 경우는 영원한 생명으로 사는 기간이어서 가장 완전하고 희망적인 생애가 되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이 가지는 영생의 축복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요 17:3). 여기 “안다”고 하는 말은 지식적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체험적으로 아는 것을 뜻합니다. 옛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이 세상을 나그네와 행인으로 살아갔지만 그는 하늘나라 영생을 체험했던 사람입니다. 히브리서 11:16에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하늘나라 영원한 집을 사모하며 살았던 아브라함은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세상에서는 나그네 생활의 애환을 많이 겪었지만 한 번도 자기가 불행하다고 생각한일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뿐 아니라 후세를 살고 가는 모든 신앙의 인물들도 다 아브라함처럼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잠시 잠간 세상을 사는 동안 불편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영원하고 완전한 천당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이모든 것을 인내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계시록 21:2에는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정한 것 같더라”고 하였습니다. 결혼식 날을 앞둔 신부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신랑과 함께 예식장에 들어가는 생각을 하며 황홀해 하는 것처럼 하늘나라 영원한 소망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인은 여기에 비길 수 없이 더 큰 행복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