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가 그린 「최후의 만찬」에는 예수님을 가운데로 하고, 좌우에 여섯 명씩 열두 명의 제자가 식탁에 앉아서 대화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다 같은 예수님의 제자들로서 주님과 마지막으로 하는 만찬이며, 잠시 후에 닥치게 될 고난을 예견할 때 매우 뜻 깊고 심각한 순간이지만, 거기 있는 열두 명의 태도나 표정은 모두 제각각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의 보이지 않는 속마음의 상태는 더욱 판이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얼굴 앞에서 사는 사람들도 어떤 결정적인 상황에 이르게 되면 모두가 숨겨진 본성을 들어내고 자기중심의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기드온은 성경에 나오는 인물가운데 하나님의 특별하신 소명에 따라 이스라엘 역사에 훌륭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가 삼백 명의 적은 군사로 메뚜기 떼처럼 중다한 미디안 대군을 무찌른 것은 세계 전쟁사에 유례가 없는 위대한 사건입니다. 우리는 기드온의 미디안 전쟁이 남긴 무용담을 높이 평가하고 자랑하지만 그 뒤에 따라온 몇 가지 사건은 예사로 넘겨버리곤 합니다.
본문 말씀 중에는 이 전쟁을 마무리 할 즈음 기드온의 군사들이 패주하는 미디안의 방백과 왕들을 추격할 때 거기 관련된 에브라임 사람들과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미 기드온과 삼백 명의 주력부대가 미디안을 다 무너뜨린 다음 에브라임 사람들은 미디안 방백 오렙과 스엡이 도망가는 길목을 지키다가 그들을 죽이고는 승전의 영광을 독점하려 한 자들입니다.
한편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은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추격하는 기드온이 도움을 청하자 조롱과 야유를 보내며 이를 거부했던 자들입니다. 한편 처음부터 끝까지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묵묵히 따라 주었던 삼백 명의 주력군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로 신령한 전투에 임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며 교회의 현상이기도 합니다.
I. 하나님의 일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에브라임 사람들과 숙곳 사람들과 브누엘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 사역에 도움이 못 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모두 그리스도인의 본분인 믿음과 헌신을 외면한 채 자기들 편리한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1) 이해(利害)타산에 밝은 기회주의자입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은 기드온과 그의 군사들이 미디안을 대적하기 위하여 나갔을 때 거기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처음 기드온이 의용군을 모집하여 하롯샘에서 진을 쳤을 때 거기 함께 하였는지 모습니다. 그 사람들 가운데 두려워서 떠는 자는 돌아가라고 했을 때 이만 이천 명이 돌아갔습니다. 그 뒤 추가로 일만 명을 돌려보냈습니다. 처음에 멋모르고 덩달아 따라 나섰다가 막상 싸움에 임하려 하자 겁을 먹고 돌아간 사람들 중에 에브라임 사람도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드온과 삼백 명의 군사들이 미디안 대군을 무찌르고 승세를 굳혔을 때 그들은 막판에 뛰어들어 생색을 내었습니다. 사사기 7:24-25에 보면 기드온이 에브라임 사람들에게 요단 나루터를 지키고 있다가 도망가는 미디안 방백 오렙과 스엡을 잡으라고 했더니 그 기회를 포착하여 적장의 목을 베고 전리품을 취한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일을 거부하거나 훼방하는 자입니다.
본문 말씀 5절에 보면 기드온이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쫓아가면서 자기를 따르는 자 삼백 명이 피곤하고 지쳐있는 것을 알고 숙곳 사람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청원하였습니다. 그러나 숙곳 방백들은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어찌 네 손에 있관대 우리가 네 군대에게 떡을 주겠느냐”하고 모욕적인 말을 하며 거절하였습니다.
이에 기드온은 브누엘 사람들에게 같은 말로 청했으나 그들 역시 숙곳 사람과 같은 말로 거절했습니다. 이들은 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일을 우습게 여기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기드온과 그 군대를 멸시하고 조롱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이요 배도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숙곳 사람들이나 브누엘 사람들처럼 불신앙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의 눈에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보이지 않고 사람들의 모습만 나타나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을 눈치 채지 못합니다. 모든 것을 자기의 관점에서 판단하기 때문에 기드온과 삼백 명을 매우 초라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어찌 네 손에 있관대 우리가 네 군대에게 떡을 주겠느냐”하고 멸시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모독하는 오만한 행동의 소치입니다.
(3) 문제를 일으키는 자들(troublemaker)입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요단 나루턱에서 패주하던 미디안의 방백 오렙과 스엡을 잡아 죽이고는 기드온에게 시비를 걸었습니다. 본문 말씀 1절에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찜이뇨 하고 크게 다투는지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이 전쟁에 나가서 목숨을 걸고 싸울 때 저희들은 방관하고 있었던 자들입니다. 그나마 기드온이 다 이겨 놓은 싸움에 그들을 불러들여 적장을 생포하고 전공을 세우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므로 저희들이 승전의 영광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엉뚱한 시비를 걸어 기드온으로 하여금 전쟁에서 이기고도 자기 백성 앞에서 죄인 취급을 받게 하였습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처럼 좋은 일에는 마귀가 시험을 하곤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믿음으로 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명예와 존재를 과시하고자 다른 사람을 폄하하고 억지로라도 자기 이름을 높이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는 것입니다.
Ⅱ. 피곤하나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본문 말씀 4절에 “기드온과 그 좇은 자 삼백 명이 요단에 이르러 건너고 비록 피곤하나 따르며”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은 저희 몸으로 미디안 대군과 직접 부딪치면서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삿 7:18)는 구호 아래 전투를 치렀고 또 승리한 사람들입니다.
(1) 적은 숫자에 불과합니다.
원래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는 그 수가 많지 않습니다(눅 12:32). 처음 나온 사람 삼만 이천 명 중에서 두 차례나 추려 내고 남은 자가 겨우 삼백 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이 대적해야 될 미디안 군대는 중다하기가 메뚜기 떼와 같고 해변의 모래처럼 많은 것에 비하면 도무지 비교가 안 되는 숫자입니다(삿 7:12).
그러나 비록 소수일지라도 그들은 선발된 요원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선택받은 자라는 자부심과 책임감이 있는 자들입니다. 디모데후서 2:4에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그들은 기드온의 명령에 따라서 손에 횃불을 담은 항아리와 나팔을 불고 나갔습니다. 각각 백 명씩 세 부대로 나누고 야음을 틈타 행동을 개시하였습니다. 군호에 맞추어 항아리를 깨뜨리고 횃불을 치켜들면서 나팔을 불었습니다. 철저하게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행동하였습니다. 이처럼 확실한 믿음과 순종하는 행위는 반드시 하나님의 능력을 실증하게 하는 것입니다.
(2) 육신이 지쳐있었습니다.
기드온과 그의 군대 삼백 명이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격전을 치르는 동안 몹시 피곤하고 지쳐있었습니다. 저들은 밤이 새도록 나팔을 들고, 항아리를 부수고, 횃불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과 기드온의 이름으로 함성을 지른 자들입니다. 거기에다 하나님께서 저들을 도와주시는 것에 힘입어 도망가는 잔당 일만 오천 명을 진멸하기 위하여 진격을 거듭하는 중이었습니다.
기드온과 저들은 전투의 최전방에 서서 요단까지 이르고 또 강을 건넜습니다. 주전장(主戰場)이었던 이스르엘 평원에서 요단까지 왔고, 또 강을 건너 숙곳까지 진군하였으니 그 거리가 대략 100km나 되었습니다. 저들의 육신은 말할 수 없이 피곤해졌습니다. 목이 마르고 시장했습니다. 기드온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숙곳 사람들과 브누엘 사람들에게 자기 병사를 위해 마실 것과 먹을 것을 달라고 부탁했다가 수모를 겪었습니다(8-9절).
(3) 초지일관(初志一貫)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눅 9:62).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는 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의 감정을 억제하고 목적을 향한 그 걸음을 중단하지 말아야 될 것을 요구하신 말씀입니다.
여기 기드온의 군사들도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의 감정을 노출시키지 않으면서 주님의 목적에 따라 행동하였습니다. 오랜 시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적진을 공략하거나 도주하는 잔당을 추격하느라 육신이 지쳐 있는 것도 잊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주위 사람들의 멸시와 냉대에 사기가 떨어지고 가던 길을 멈추게 하였습니다. 특히 에브라임 사람들의 경우 적장을 죽인 공로를 내세워 지휘관인 기드온에게 시비를 걸며 무릎을 꿇게 하는 횡포를 보면서 삼백 명의 군사들은 굴욕을 느꼈을 것입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제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것도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하고 외친 그들의 신앙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지휘관에게 누를 끼치지 않고자 묵묵히, 그리고 끝까지 따라주며 신의를 지킨 사람들입니다.
Ⅲ.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사사기 6:12에 보면 기드온이 오브라의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밀을 타작하고 있을 때 여호와의 사자가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하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큰 용사요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중에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였습니다.
그가 처음 하나님께 부름을 받고 나서 자기 마을에 있는 바알의 당에 들어가 아세라 상을 찍고 우상을 불태워 버렸습니다. 이후 그는 여룹바알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삿 6:25-32). 기드온이 의용군을 이끌고 미디안 전쟁에 나갈 때도 하나님의 분부를 좇아 많은 사람을 돌려보내고 소수의 정예병으로 전투를 했으며, 그는 또 무기 대신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횃불과 항아리와 나팔을 손에 들고 나갔습니다.
그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행동 했고 그대로 승리를 거뒀습니다. 기드온이 전쟁을 마무리할 무렵 에브라임 사람들과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과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에게 행한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였습니다.
(1) 행한 대로 갚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심판하실 때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시는 원리를 선포하였습니다(마 16:27).
기드온도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생포한 후 그들을 심문하면서 “너희가 다볼에서 죽인 자들이 어떠하더뇨”하고 물었습니다. 그들이 대답하기를 “그들이 너와 같아서 모두 왕자 같더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기드온이 “그들은 내 형제, 내 어머니의 아들이니라 내가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니 너희가 만일 그들을 살렸더면 나도 너희를 죽이지 아니하였으리라”하고 즉시 그들의 목을 쳤습니다(삿 8:18-21). 이것은 그들이 자기 입으로 실토한 내용을 근거로 그 행위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남에게는 가혹하리만큼 엄격한 책임을 요구하면서 자기가 하는 일은 관대하게 평가하거나 잘못을 저지르고도 이를 변명하며 합리화 하려고 주장합니다. 은밀한 것까지 살피시는 하나님께서는 그의 행한 일을 따라서 공의롭게 심판하십니다. 고린도후서 5:10에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2) 불신앙에 대한 응징입니다.
기드온은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고 미디안의 군대를 파한 후에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을 응징하였습니다. 본문 말씀 5-9절에 보면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추격하던 기드온이 피곤하고 지친 자기 군사들을 위해서 숙곳 사람들에게 “나의 종자가 피곤하여 하니 청컨대 그들에게 떡덩이를 주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때 숙곳 사람들은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어찌 네 손에 있관대 우리가 네 군대에게 떡을 주겠느냐”하고 조롱하며 거부했습니다. 기드온은 울분을 삭이며 “여호와께서 세바와 살문나를 내 손에 붙이신 후에 내가 들가시와 찔레로 너희 살을 찢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그 뒤 브누엘 사람들에게도 같은 말로 거부당했습니다. 이때도 기드온은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에 이 망대를 헐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은 다 같이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없었고 하나님의 일에 수종드는 기드온과 그 군대를 우습게 여겼습니다. 그들이 기드온과 그의 군사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면서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어야 마땅한데 오히려 멸시하고 홀대하여 사기를 꺾어 놓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승리의 현장에서 가시에 찔려 살이 찢어지고 망대가 헐려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3)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본문 말씀 1절에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찜이뇨 하고 크게 다투는지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경우를 두고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오히려 겸손하게 그들을 달랬습니다. 2절에 “나의 이제 행한 일이 너희의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고 하였습니다. 3절에는 “하나님이 미디안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붙이셨으니 나의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의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고 하였습니다. 기드온이 이 말을 하매 그들의 노가 풀렸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말한 것은 역전의 용사 기드온이 에브라임 사람들을 두려워해서 비굴하게 아첨한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하나님을 의식하며 큰일을 도모하는 지도자가 에브라임 사람들처럼 자기의 희생은 거부하면서 명예만 탐하는 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을 보여줍니다.
오히려 그들의 아킬레스건이라 할 수 있는 자존심을 치켜 세워주고도 하나님의 일이 성사되는 것으로 만족해하는 대범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에브라임 사람들 같은 소인배들과 맞붙어서 자존심 싸움을 하다가 추한 모습을 보이는 것 보다는, 차라리 모든 것을 양보하고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존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존귀하게 여기시고 후세 사람에게 교훈이 되게 하셨습니다(히 1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