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메시야 시대의 환상을 품고 신약교회의 비젼을 제시한 이사야는 장막터와 휘장을 넓게 치라고 하면서 동시에 말뚝을 견고히 박으라고 하였습니다.
말뚝은 집의 기초를 뜻합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그리스도의 복음이 오대양 육대주를 석권하고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장악하게 되는 신비로운 능력을 자신하기 때문에 그것을 더욱 튼튼히 하고 확실하게 행사하기 위해서 견고한 기초를 다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교회 설립 60주년을 맞이하는 후암교회가 주님의 요구를 수용할 만큼 휘장을 넓히면서 그것을 지탱하고 보장할 수 있도록 말뚝을 견고히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견고히 해야 될 말뚝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I. 진리의 말뚝입니다.
디모데전서 3:15에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진리의 터를 기초로 하고 세워진 기관입니다. 진리(αληθεια)는 유일한 것이며, 불변하는 것이며 또한 영원한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진리라고 하였습니다(요 14:6). 히브리서 13:8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라고 하였습니다(요 17:7). 에베소서 2:20에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란 신약과 구약의 성경말씀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만고불변의 진리이기 때문에 시대와 환경이 달라져도 절대 변함이 없습니다. 따라서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 진리를 토대로 하고 세워졌다고 할 때 이는 영원토록 요동하지 않는 기초를 다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보훈을 강론하신 다음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라고 하였습니다(마 7:24-25).
(2) 신앙고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하고 대답하는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시고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마 16:17, 18). 이 때 예수님께서는 지상에 자기의 교회를 세우겠다고 선포하시면서 그 기초가 되는 반석을 언급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반석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반석은 베드로를 뜻한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로 “반석”이라는 말(Kepha)의 뜻이 베드로의 이름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요 신앙이 특출하다고 칭찬도 받았지만 그의 성품이나 인격은 반석처럼 튼튼하지 못합니다. 잠시 후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방해하는 듯 한 말을 하고는 예수님으로부터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하고 엄한 책망을 받았습니다(마 16:22-23).
예수님께서 자기의 교회를 반석 위에 세우신 것은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듯이 시험과 환난이 그침 없는 세상에서 이를 거뜬히 이겨내고 승리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바른 신앙고백이라야 흔들리지 않고 지켜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기독교 역사에 수없이 많은 핍박과 고난이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반석 같은 믿음 때문에 죽음을 견디고 승리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1:38에는 세상이 이들을 감당치 못하였다고 말했습니다.
(3)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는 삶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사람의 몸으로 비유하면서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고 하였습니다(엡 4:15). 세상의 모든 단체는 그 구성원이 주인 노릇을 하지만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며 그의 뜻과 의지를 받드는 기관입니다.
오늘날 일부 잘못된 교회관을 가진 사람들이 말로만 주님의 교회를 표방하면서 내용은 사람들의 욕구와 성향에 맞추려고 애를 씁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운영되는 교회를 선호합니다. 그렇지만 말씀의 진리를 기초로 하는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신앙을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원리에서 사도 바울은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하였습니다(갈 1:10).
Ⅱ. 경건의 말뚝입니다.
「경건」이라는 말은 「거룩」을 뜻하는데 이는 구별된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구약시대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구별하시고 그들을 「거룩한 민족」이라고 불렀습니다. 신명기 14:2에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의 기업의 백성을 삼으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신약의 경우 본래 죄와 마귀의 권세 아래 있던 우리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이 사유하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삼으셨다고 하였습니다.
에베소서 1:4에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선택하였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9에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교회는 거룩한 기관이기 때문에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경건을 힘쓰며 성별된 모습을 지켜 나가야 됩니다.
(1)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과 구별된 분이며 그 존재가 거룩하신 분입니다. 이사야는 성전에 올라가서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보게 되었는데 그 때 하나님을 모시고 있던 천사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고 하며 창화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사 6:3).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향하여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고 하였습니다(레 11:45). 모세가 떨기나무의 불꽃을 보기 위하여 호렙산에 올라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였습니다(출 3:5).
이와 같은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구약시대 하나님과 관련된 모든 것은 거룩하게 구별하였습니다. 광야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하여 마련하는 장소를 성소(聖所)라고 불렀습니다. 그 중에도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을 지성소(至聖所)라 하여 아무나 접근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출 26:33). 여기에는 몸을 성결케 한 의식을 행한 사람만이 들어가는 곳으로 구별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을 훼손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히 9:1-7).
(2) 하나님께 바쳐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바쳐진 물건은 모두 거룩하게 구별된 것입니다. 사실 구별되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 드릴 수가 없습니다. 출애굽기 13:2에 “이스라엘 자손 중에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론하고 초태생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구별 되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면 이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레위기 22:2에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그들로 이스라엘 자손이 내게 드리는 성물에 대하여 스스로 구별하여 내 성호를 욕되게 함이 없게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고 하였습니다.
신약적인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하나님께 헌신된 자들입니다. 로마서 12:1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집단인 교회는 거룩을 생명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16-17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 하였습니다.
(3)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수행하여야 될 사명을 빛과 소금이라고 하였습니다(마 5:13-16).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본질적 성품과 또한 희생적 삶을 통하여 세상을 변화시켜야 되는 사명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곧 소금이나 빛은 그 자체가 순수하고 깨끗한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고 하였습니다(마 5:13). 맛 잃은 소금이란 순결해야 될 성도가 거룩하게 살지 못하고 불결한 생활을 하는 것을 뜻합니다. 한편 소금이 물속에서 용해되어 짠 맛을 내게 될 때 그것이 스며드는 곳에는 썩음을 방지하고 제 맛을 내게 합니다.
빛도 그렇습니다. 초나 기름이 타 들어가면서 심지의 불빛을 발산할 때 어두움을 추방시키고 밝은 세상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죄와 마귀와 죽음의 세력을 어두움으로 표현하였습니다(엡 6:12).
한편 의와 진리와 생명을 빛으로 묘사하였습니다(요 1:4-5). 빌립보서 2:15에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라고 하였습니다. 교회가 거룩하지 못하면 세상을 변화 시킬 수 없습니다. 성도의 빛 된 생활은 그침 없는 경건의 훈련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하였습니다(딤전 4:7).
Ⅲ. 증거의 말뚝입니다.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를 전도자로 파송하시면서 그들이 높고 낮은 사람들 앞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을 당하고 죽음의 위기에 몰리게 되더라도 이것을 증거로 삼는다고 하였습니다(마 10:18).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교훈이 역사 위에 증거가 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삶과 그 자취는 후세 사람들에게 거울이 되는 것입니다(고전 10:11).
(1) 신앙의 사표(師表)가 되어야 합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방황하는 이스라엘에게 후세 사람들에게 바른 길을 일러 주는 길표(Guide post)를 세우라고 하였습니다(렘 31:21). 우리의 영원한 사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히브리서 12:2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하였습니다.
신앙 세계에 표본이 되는 인물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2:1에는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은 모두 앞서 믿음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자기의 본분에 충실했던 승리의 간증자들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최초의 순교자 아벨을 비롯해서 에녹과 노아와 아브라함과 그 뒤에 오는 많은 인물들을 열거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1:38-39에 보면 이들은 세상이 감당치 못한 자들인데 모두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은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자기의 교회를 세우시고 의와 공도의 표본을 삼아 증거가 되게 하십니다(창 18:19). 교회의 오랜 역사와 바른 전통은 길이길이 하나님 나라의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2) 승리자의 표본이 되는 것입니다.
지상의 교회를 「전투하는 교회」라고 합니다. 그 교회는 그침 없이 음부의 권세로부터 침해를 당합니다(마 16:18). 사도 베드로는 우리의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는다고 하였습니다(벧전 5:8). 사도 바울은 사단이 광명한 천사처럼 가장하여 교회를 유린한다고 하였습니다(고후 11:14). 그리스도인은 괴로움과 죄가 많은 세상에서 그침 없는 싸움을 싸우는 자들이지만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자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는 자들입니다(롬 8:37).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교회와 성도들을 소중히 여기시고 손안에 붙들고 계시면서(계 2:1), 어떤 경우에도 승리하게 하십니다. 예레미야 1:18-19에 “보라 내가 오늘날 너로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그 족장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였은즉 그들이 너를 치나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극심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세상나라들은 무너지고 없어져도 주님의 교회와 성도들은 쇠기둥, 놋성벽처럼 건재하여 간증자로 남아 있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기는 자는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기둥 위에 새 예루살렘과 나의 새 이름을 기록하여 증거로 삼겠다고 하셨습니다(계 3:13).
(3) 최상의 소망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 세계의 유구한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에 의하여 좌우됩니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역사 경영의 중심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일찍이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해몽하면서 정금으로 된 머리와 은으로 된 팔과 가슴, 구리로 된 배와 넓적다리, 그리고 철로 된 종아리와, 진흙이 섞인 열 발가락은 바벨론 이후에 이어지는 세상 열강들의 역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뜨인 돌이 나타나서 그 거대한 신상을 부숴버리고 신상을 친 그 돌은 태산처럼 커져서 그 자리를 차지하였습니다(단 2:36-45).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가리켜 “보배로운 산 돌”이라고 하였습니다(벧전 2:4). 세상 나라는 멸망하여도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는 영원한 왕국입니다. 그 그리스도의 나라는 교회 운동을 통하여 세계에 뻗어 나가고 든든하게 세워집니다.
이사야는 세상나라의 번영이나 그 영광을 풀과 꽃으로 비유하고 그런 것은 잠시 후 시들어 버리지만 하나님의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하다고 하였습니다(사 40:6-8). 진리의 말씀에 기초하여 하나님의 거룩을 지향하는 건전한 교회 운동은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확실하고 영원한 소망을 붙들게 하여 줍니다. 히브리서 6:19에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튼튼하고 견고한 소망의 말뚝이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