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주간을 맞이한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베다니 겟바게에서 출발하여 감람산 기슭으로 내려갈 때는 어느새 많은 시민들이 연도에 몰려와서 주님의 입성을 환영하며 축하하였습니다. 거기 모인 사람들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종려나무가지를 꺾어서 손에 들고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한편 처음부터 이런 광경을 지켜보면서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과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향해서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하며 이를 제지시키도록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청을 물리치시며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번 우리교회 여러 성도들과 함께 모스크바 신학교 행사에 참여하고 동유럽의 몇 나라를 거치면서 일부 기독교의 유적과 역사의 현장을 답사하였습니다. 한때 기독교가 세계를 지배했던 시절 찬란한 황금문화를 구가하였고 또 오랜 세월 공산주의 치하에서 숨을 죽이며 살아오기도 하였던 나라들입니다. 가는 데마다 역사의 변천과 함께 명암이 교차되었던 수많은 사연들이 스며져 있어서 보는 사람들에게 말없는 교훈을 주곤 하였습니다. 그야말로 돌들에게서 들을 수 있는 소리들이었습니다.
Ⅰ. 자연의 소리입니다.
『 청산은 나를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가 가라하네 』
이 노랫말은 고려 말 공민왕 때 살았다는 어느 승려의 글로 알려져 있습니다. 작가는 산사 깊숙한 곳에 있으면서도 매일 같이 푸른 산과 드높은 하늘을 통해서 들려오는 소리에 시심(詩心)이 작동하였고 그것으로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려한 것 같습니다.
조선시대 고산(孤山) 윤선도는 그의 작품 산중신곡 가운데 유명한 오우가(五友歌)를 남겼습니다. 곧 끊이지 않고 흘러내리는 물, 언제나 변함 없는 돌, 사시사철 늘푸른 소나무, 욕심도 없이 속이 비어 있는 대나무, 보고도 말이 없는 달을 노래하고 있는데, 이분은 마음으로 그것들의 소리를 들으며 그 소리를 대변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생한 성도는 신령한 귀를 열고 자연의 소리를 들으면서 그 소리에 담겨져 있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곤 합니다.
(1) 찬양하는 소리입니다.
믿음의 사람 다윗은 자연과 만물이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돌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고 하였습니다(시 19:1-4). 예수님께서는 공중에 날아다니는 새나 들에 피어 있는 꽃들은 제각기 하나님의 솜씨를 증거하며 그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마 6:26-29).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와 여러 동물들의 우짖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것들이 다듬어진 언어는 아니지만 제 나름대로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2) 탄식하는 소리입니다.
로마서 8:22에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 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범죄와 타락은 자연과 만물에게까지 불행한 결과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던 에덴 낙원에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나는 등 다른 피조물에게도 저주가 미쳤다고 하였습니다(창 3:17). 무엇보다도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자기들 욕심 때문에 피조물들이 창조주로부터 받은 본분을 수행하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20-21에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3) 경고의 소리입니다.
하박국 2:11에 “담에서 돌이 부르짖고 집에서 들보가 응답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는 인간이 범죄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때 말 못하는 짐승이나 해와 달과 별과 같은 천체들로 훈계를 하고 바람이나 바다나 땅까지 동원되어 인간에게 경고를 하고 나옵니다. 미친 길을 가는 발람에게는 당나귀가 말을 했고(민 22:28), 예수님을 배반한 베드로에게는 닭소리로 경고해 주었습니다(마 26:74).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도망을 가는 요나에게는 지중해의 풍랑과 바다 속의 큰 고기까지 동원되어 그의 길을 막았습니다(욘 1:4-17).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말없는 자연의 소리를 통하여 인간을 훈계하시고 후세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십니다.
오늘도 지구상에 산재한 많은 역사의 유물가운데 오랜 시대를 거쳐오면서 지진과 전쟁과 재난의 흔적을 안고 말없이 버티고 있는 것들을 보게됩니다. 지난날의 모든 영광과 오욕을 한 몸에 지닌 채 인간들을 향해서 무언의 경고를 발하는 자연의 소리들인 것입니다.
Ⅱ. 역사의 소리입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건축물이나 오래된 유적들은 후세 사람들에게 이전에 있었던 사실들을 깨우쳐 줍니다. 수천 년의 풍상을 겪으며 역사적 현장의 기록을 지닌 채 말없는 교훈으로 역사의 소리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1) 문명의 변천과정을 말합니다.
1798년 이후 나폴레옹(Napoleon Bonaparte)의 원정으로 새 기원을 이룩해 놓은 고고학의 발달은 현대인들에게 옛날을 알게 하는 여러 가지 자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특히 인류문명의 발상지인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서구 문화의 뿌리가 되는 희랍의 유적들, 그리고 권력과 영화의 상징인 로마의 유적들은 찬란한 고대 문명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역사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내용들과 관련이 있어서 더욱 성경계시의 신빙성을 나타내는 자료가 됩니다. 다니엘 2:31-45에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꿈에 본 신상은 느부갓네살의 바벨론과 그 뒤를 잇게될 페르시아, 희랍, 로마에 이르는 열강들의 역사라고 하였습니다. 이들 고대 국가가 남겨 놓은 문명은 오늘날에도 불가사의라고 할 만큼 웅장하고 화려합니다. 그 이후에도 르네상스(Renaissance)를 전후한 중세기 문화는 일 천년 이상 세계를 지배했던 기독교의 숨결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2) 흥망의 원인을 말해줍니다.
어느 곳에서나 사람들은 역사의 소리를 들으며 인류의 문명이 흥하고 망했던 그 원인을 분별할 수 있어야 됩니다. 권력자의 위력이 대단한 기세로 세계를 제패하면서 그 영화의 극치를 과시하고자 상징적인 문명을 이룩해 놓기도 하였지만 결국 그것들은 존속하지 못하고 무너져 버렸습니다. 더러는 전쟁의 포화 속에 파괴되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도굴꾼의 손에 훼손되어 버렸는가 하면, 화산이나 지진으로 땅속에 매몰되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시대나 인간의 교만이 도를 넘게 되면 그것을 흔들어 무너지게 해 버립니다. 이탈리아 반도의 남쪽에 있는 지하도시 폼페이(Pompei)는 A.D 79년 베스비오산의 화산폭발로 그 재에 묻혀버린 도시입니다. 1748년 이후 시작된 발굴 작업으로 80% 정도 복원된 이 도시는 그 시대 음행과 환락의 문화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케합니다. 이곳 폼페이 유적지는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인간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철저한가를 말해주는 역사의 소리이기도 합니다.
(3)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말해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흥망성쇠를 통하여 인간의 한계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권자가 되셔서 그가 의도하는 대로 인간역사를 경영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이번에 우리는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설립한 모스크바 복음주의 신학교에서 그곳 사람들과 함께 예배할 수 있었던 것은 비록 작은 시작이었지만 큰 결과를 가져오게 될 뜻 깊은 행사였습니다. 한때 세계를 붉게 물들이며 우리 민족에게도 6. 25전쟁으로 원한을 남겨준 저 공산주의 심장부에서 찬송을 부르며 그 나라를 복음화시킬 인재를 양성하는 일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꿈같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철의 장막」으로 불리는 소련의 수도, 말만 듣던 크렘린 궁전을 들어가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진 우리들이 레닌 묘를 관람하고 붉은 광장을 밟고 다니는 순간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상전(桑田)이 벽해(碧海)가 되는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역사는 오늘날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닫혀져 있는 북한 땅에까지 반드시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야 말 것입니다.
Ⅲ . 복음의 소리입니다.
이사야 40:6-8에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고 하였습니다.
영고성쇠 하는 세상문명은 다 풀의 꽃같이 시들어가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은 세세토록 불변하며 그 능력이 행사되는 것입니다.
이 예언은 훗날 세례 요한이 등장하면서 구체적으로 증거되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φων?)라고 하면서(마 3:3), 그 소리의 실체가 되는 예수님을 말씀(λογο?)이라고 하였습니다(요 1:1). 그는 말씀(복음) 되시는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서 소리의 임무를 끝내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영원토록 모든 역사를 지배합니다. 오늘도 지구상에 산재한 돌들의 소리는 기독교 복음의 위대함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또한 인류의 소망인 복음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1) 복음은 시간과 공간의 벽을 초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하였습니다(요 12:24). 예수님의 이 말씀 중에는 복음이 불멸의 생명체라는 것과 그리고 그것이 그 위력을 행사하기까지 자체의 희생이 따른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천국비유에도 복음을 땅에 뿌려지는 씨앗으로 설명하였습니다(마 13:3-12).
초대교회에서는 전 세계에 산재한 유대인 신자들을 「흩어진 나그네」라고 하였습니다(벧전 1:1). 그 당시 이들을 가리켜「디아스포라」(διασπορ?)라고 불렀는데 그 말은 「흩어진 종자(種子)」를 뜻합니다. 산과 들에 서식하는 야생식물들은 꽃이 진 다음 여물이 찬 씨앗이 바람에 날려 사방으로 퍼져나갑니다. 더러는 짐승에게 먹힌 다음 그 배설물에 섞여서 땅으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어떤 경로로 흩어지든지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씨가 날아가고 거기서 싹이 나며 꽃을 피웁니다. 물론 그런 과정에서는 희생되고 없어지는 씨앗이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싹이 난 씨에서는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거두게 되고 그것은 또 다시 더 많은 번식을 이루어 냅니다. 예수님 이후 복음이 전파된 이래 세계의 역사는 수없이 바뀌었지만 복음의 씨앗은 오대양 육대주 어느 곳에나 다 전파되었고 지금도 그 작업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2) 복음은 능력을 발휘합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고 하였습니다(롬 1:16). 당시 기독교를 박멸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로마의 황제를 향하여 대담하게 선전 포고를 하는 바울은 무력으로 세계를 제패한 권력의 심장부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입성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의 말대로 그가 전한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나서 로마뿐만 아니라 유럽을 석권하였고 마침내 세계사의 꽃을 피우게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이 말씀은 적용됩니다. 1866년 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외부에서 들어오는 문이 굳게 잠겨 있을 때 27세의 청년 선교사 토마스(R. J. Thomas)목사는 미국 상선 제너럴 쉐먼호에 몸을 싣고 대동강으로 들어왔으나 평양감사가 보낸 관군의 칼을 맞고 순교하였습니다. 토마스 선교사가 순교하면서 무릎꿇고 기도하던 모습을 본 사람과 그가 던져준 성경책을 주워 온 사람이 다 한국교회 최초 신자가 되었고, 그가 피를 흘린 평양 땅에 신학교가 세워져서 목회자의 산실이 되었습니다.
(3) 복음 전도의 사명을 일깨웁니다.
한때 한국의 예루살렘이라 불리던 평양을 위시하여 우리나라 기독교의 본거지가 되었던 북한 땅이 오랜 세월 무신론적 공산치하에서 복음의 불모지가 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북한에 있는 동포들은 신앙의 자유와 권리를 유린당하고 있고 자라는 청소년과 어린 유아들까지 굶주림과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곳의 동포들도 옛날처럼 신앙의 자유를 회복하고 우리와 같이 밝은 세상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모든 선교적 열정과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복음을 증거하고 그리스도의 계절이 돌아오도록 힘을 쏟아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원대한 역사 경영을 볼 때 오랫동안 붉은 용의 세력 아래 짓눌려 있던 땅에도 복음의 새로운 시대를 열게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능력은 한반도에도 기적처럼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인류에게 있어서 유일하고 완전한 소망인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될 사명이 우리에게 더욱 절실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