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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신 2001.05.12 09: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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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암교회-자유게시판 (go SGHUAMCH)』 1720번
 제  목:늦은 여행기...                                             
 올린이:well    (한동신  )    01/05/12 09:55    읽음: 22 관련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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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2월 9일...

오사카 간사이 공항이다. 12번 waiting room.

눈이 시릴 정도로 선명한 색의 노란 의자에 앉아서 밤새 흘러 나오는 캐롤을 들으며

창문사이로 그 칠흙같은 어둠과 한덩어리가 되어버린 밤 바다의 윤곽을 더듬어 보고 있다.

화려하고, 깨끗한 크리스마스 같은 공항.

바다위에 지은 거란다. 그 소릴 듣고 나서 부터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한게 좀체 가시질 않는다.

삶과 인생이 생각만큼 그리 단다하거나 튼튼하지 못한 기초위에 서 있다는 걸 알았을때의

그 이유없는 두통과 어지러움처럼.

내가 뿌리 내리고 있는 것은 무언가...흐르고 출렁거리는 어둠의 바다일 뿐인가...

 

환한 곳에서 자는 게 익숙지 않다. 머리가 아프다.

늘 모든 익숙치 않고 어색한 것들이 날 괴롭혔었나.

 

스피커에선 한시가 넘도록 캐롤이 한창이다.

울면 안돼, 울면 안돼, 울면 안돼...

 

12월 10일 비행기 안에서.

오사카에서 뭄바이로 가는 길이다.

비행기가 활주로로 이동하는 동안은 분명 깨어 있었는데 정작 비행기 이륙 시간에

깜빡 잠이 들어 버렸다. 눈을 떠 보니 뭉게 뭉게 구름 위...

난 또 얼마나 많은 중요한 순간들과 사람들 감정들을 피곤해서 깜빡 잠든 사이

놓쳐 버리고 마는 건가.

 

구름이 유유히 흐른다 고들 한다.

저 구름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게 얼마나들 빨리 달려가며 또 생성하며 소멸하는가...

구름처럼 살고 싶다.

 

밤이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모르겠다.

옛날 어느 전투기 조종사가 바다와 땅을 구분하지 못해 고도를 올리다가 바다에 추락했다는

얘기가 생각났다.

어디가 땅이고 어디가 하늘인지...

어디로 치닫고 있는지...

혼란스럽다.

 

인도에선 사랑을, 용기를, 희망을 얻고 싶다.

 

12월 10일 인도의 뭄바이에서


인디아 게스트 하우스 란 곳에 짐을 풀었다.

생각보다는 깨끗하고 좋다. 선풍기도 있고, 먹을 물도, 씻을 물도 있다.

모든 것이 신기하다. 공기도 바람도 냄새도 도로도 사람도 불빛도, 내 마음도...


리듬감이 느껴진다. 자동차의 엔진소리는 꼭 드럼 소리 같고, 경적소리 역시 선명한 음악 같다.

신호등도 없고, 시도 때도 없이 빵빵거리고, 길거리엔 거지들이 줄지어 누워 있고,

사람들에게서는 끈적끈적한 냄새도 나지만,

여긴 사람이 주인이고 사람이 사는 동네다.

 

 

짐을 풀자 마자 빈민가를 산책하러 나왔다. 열시가 넘은 시간. 좀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이 들었지만 용기를 냈다. 

좁은 골목에 담요를 깔고 수백명이 줄지워 누워 잠을 청하고 있다.

아버지 배에 올라 깔깔대며 장난을 치는 소녀...

남편품에 곱게 안겨 잠이 든 부인...

서로의 팔을 괴고, 어깨를 기대고, 도란 도란 웃으며 얘기하는 어린 친구들...

짙은 쌍커풀이 진 크고 깊은 눈을 신기한 듯 깜빡이며, 수줍은 듯 씨익~ 웃으며, 나를 향해

나마스떼... 하는 사람들. 


우린 어떻게 해야 행복해 질 수 있을까...


12월 11일

로란지 하는 팽이 비슷한 것들을 돌리는 아이들을 만났다.

모두 맨발이고, 학교엔 안가나 보다. 표정이 맑고 예쁘다.

한 녀석이 내 손위에 돌아가고 있는 팽이를 올려 놓았다.

날 간지럽히고 돌아가는 로라.

그 간지러움이 손의 신경과 혈관을 타고 심장까지 뇌까지 전해 오는 듯

온 몸이 가렵다.

치열하게 죽을 똥 말똥 돌아가는 팽이가 내게 주는 게 겨우 간지러움이라니.

피식 웃음이 났다.


새벽에 인디아 게이트 앞의 무슨 공원에서 "하하호호 요가" 를 배웠다. 무슨 체조 같았는데

시종일관 소리내서 웃어야 했다. 억지로 웃는 게 이렇게 힘든지 몰랐다. 아마도 그래서 삶이

더 피곤하고 힘든지도...

첨 먹어본 인도 음식은 무슨 볶음밥이었는데 먹을 만 했다.


오는 길에 뿌리가 높은 줄기에서 땅으로 3-4m 씩 길게 늘어선 나무를 봤다. 땅에 박혀서

진짜 뿌리가 된다고 했다.

모든 게 낯설다.

꼭, 뿌리는 땅에서 나무 끝에서 나와야 하는데.

어디서 부터가 진실이고 진리인가.

가지에서 뿌리를 내리는 타잔 나무(?)...

하늘로 치닫는 가지, 그 가지에서 땅으로 치닫는 뿌리.

어쩌면 영원히 땅에 닿을 수 없을 지도 모를 일이다.

아름다운 인도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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