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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영 2001.09.30 12:2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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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허진호 감독/ 유지태, 이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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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는 저에게 있어 가장 인상깊은 영화중에 하나입니다. 최루성 멜로 영화가 판을 치던 시기에, 정말 잔잔하고 고요한 사랑이란건 어떤것일까? 말없이 떠나가는 사랑을 이야기한다면, 어떤식으로 표현 해야할까? 하는 해답을 던져준것만 같은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그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 사랑의 짧은 공감과 여운을 간직할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주인공인 한석규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진사였고, 심은하는 주차단속원으로, 순수함을 간직한 아가씨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이 아무런 대사없이 잔잔하게 눈빛으로 대화하고, 사진으로 응답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결말은 그렇게 무덤덤합니다. 아니, 아는 사람은 알만큼의 아픔을 전해주고 맙니다. 간결함의 극치였습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 이후 3년 8개월이 지난후에서야 허진호 감독의 신작이 나왔습니다. 언제나오려나? 그리고, 또 어떤 성숙함으로 관객을 사로 잡으려나? 기대를 안했다면, 그게 거짓말일듯 싶습니다.

영화는 좋았습니다. 너무나 잔잔한 그 분위기속에서 정신없이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에 빠져들어갔습니다. 그들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헤어짐, 재회의 이 모든 과정은 이시대의 젊은 사람들이 늘상 하는 사랑의 반복됨을 그대로 재현하는듯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좋은느낌의 영화였음에도, 머리속에서 지우지 못하는 영화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건, 다름 아닌, 앞에서 말한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영화입니다.
감독에게는 각각의 그만의 스타일이라던가, 그만의 색깔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전작이 자연스레 떠오른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냥 색깔만, 스타일만 닮았다고 하기엔 부족한 말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직업의 설정부터, 배우들의 이미지까지.. 8월의 크리스마스의 그늘에 가려져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의 아류작처럼 보이기까지 했다면, 말이 너무 과한것일까요?

비슷한 점들을 조금 나열해 볼까? 합니다. 우선, 캐스팅한 배우들부터, 그 맥을 같이 합니다. 한석규,심은하 커플의 이미지와 유지태,이영애 커플의 이미지는 무척이나 닮은 꼴입니다. 깨끗한 이미지랄까? 자연스레 두 영화의 배우들이 비교되는것은 그들이 풍기는 이미지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게다가, 두 영화에 등장하는 남자배우들의 직업도 닮아있습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의 한석규가 추억을 간직하는 사진사의 모습이라면, 봄날은 간다. 에서의 유지태는 추억을 녹음하는 녹음기사입니다. 인간의 오감중, 시각과 청각을 기반으로 하는 직업을 가진다는 것은 평범치 않음을 의미합니다. 직업자체에서 풍기는 애틋함이 있지 않습니까? 무엇인가를 갈구하는...
잔잔한 분위기, 여기에 극도로 자제하는 대사와 행동들, 그리고 세상의 모든것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이는 자연의 풍경과 디테일한 사물의 묘사, 촬영기법 등도 비슷합니다. 여기에 굳이 시골을 배경으로 해서 한옥집이 등장하며, 주룩주룩 비는 내리고, 나이드신 노인네가 등장하며, 주인공에겐 너무나 좋은 친구가 등장하고, 주제곡마저도 유지태가 부릅니다.

갑자기 영화평을 더 쓰기가 싫어졌습니다.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입니다. 3년 8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감독의 고심한 흔적보다는 전작따라잡기에 대한 갈망만 가득합니다. 3년 8개월이라는 시간이 무색할정도로, 닮아있는 꼴이라면, 그리고, 그때만큼의 삶과 죽음의 애틋함을 남기지도 못하고, 이정도로 끝낼정도라면, 뭐하러 다시한번 메가폰을 잡은것인지 아쉬움만 가득합니다. 이제, 판단은 여러분에게 맡깁니다. 전.. 그냥 이랬으니까요.

2001. 9. 28. 정동스타식스 극장에서 심야로, 친구들과 함께..

Rainbow Cha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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