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은혜받으러 나온 성도들을 꾸짖어서는 안 된다

크리스천투데이
     
입력 : 2012.06.09 07:18
[유동근 목사의 룻기 5] 나오미의 조언

▲유동근 목사(온누리선교교회).
룻기 2:4-16절 강해 계속

8. 마지막으로 보아스는 사환들에게 그녀가 계속 가져갈 수 있게 하며, 아예 볏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줌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녀로 쉽게 많이 주울 수 있게 하라고 말했다. 보아스는 그녀가 다른 곳에 가서 줍는다면 자기만큼 배려해 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다른 곳에 가지 말라고 한 것이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 외에 다른 것을 추구하면 얻지 못할 것을 아시고 그 분만을 얻기를 바라신다. 그러나 사람은 그리 쉽게 주님의 말씀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또다른 곳에 가면 안전하지 않다는 것도 아신다. 보아스는 룻이 다른 곳에 가서 줍다가 사내아이들에게 수모를 당할까도 염려한 것이다. 이는 주님의 강권하시는 사랑이다. 주님은 이와 같이 우리가 충성되게 따르면 우리가 더 얻지 못할까봐 노심초사하신다. 주님은 우리가 얻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분을 따를수록 더욱 은혜를 얻게 도와주신다.

교회생활도 그러하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합당한 교회 생활 안에 있으면서도 다른 밭들을 서성인다. 기도원으로 부흥회로, 특이한 집회로 찾아다닌다. 이는 밭을 옮겨다니며 이삭을 주우려하는 행위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예비된 은혜인 충분한 이삭을 얻지 못한다. 보아스는 사환들에게 그녀로 곡식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라고 말한다. 많이 주으려 욕심을 내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꾸짖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에 대한 주님의 사랑어린 관심이다.

우리는 주님을 얻기 위해 때로 지나칠 정도로 추구한다. 나는 10여년 전 해외에서 선교하며, 선교 과정과 현장에서 체험하고 얻은 주님이 너무 귀해 가족과 아내에게 시간을 많이 할애하지 못했다. 집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나가고 또 나갔다. 나는 행여 그 오지에서 만나는 주님을 놓칠까봐 두려워했고 그 신선함을 잃을까봐 두려워했다. 그러므로 나는 당시 사역하면서 이 사람 저 사람으로 하여금 지나치다는 생각을 갖게 했고 가족들에게도 오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주게 되었다. 물론 그 후에 나는 돌이켜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되었으며 여러 나라들을 함께 가기도 했다. 한편 주님은 당시 나의 그런 치우친(?) 열정을 꾸짖지 않으셨다. 갈 때마다 귀한 은혜로 만나주시고 새롭게 보상해주셨다.

9. “식사할 때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룻이 곡식 베는 자 곁에 앉으니 그가 볶은 곡식을 주매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그로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또 그를 위하여 줌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로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하니라”.

이삭을 줍는 사람은 이런 식탁으로 자애로운 말과 함께 초청을 받는다. 이삭을 줍는 사람은 담대히 추수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마치 누가복음 19장의 삭개오와 같은 사람일 것이다. 이들은 남들처럼 담대히 주 예수 앞에 나가지 못하고, 수천 명이 있는 광야, 디베랴 바닷가에서 예수님을 대하지 못하고 뽕 나무에 올라갔던 것이다.

그때 주님이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하신 자애로운 말씀처럼, 그리스도의 예표인 보아스는 이삭줍는 소녀 룻에게 “식사할 때에 너는 이리로 오라”고 하신다. 오늘날도 우리는 교회를 우습게 여기며, 어디든지 가면 환영받으리라 하고, 이 교회 저 교회 관광하듯이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교회에 오라고 하면 부끄러워서 담대히 가지도 못하고 주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개인적인 인격이나 가난 때문에 수치를 느끼며 잔치의 장소에 가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신체의 연약함 때문에 그러한 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자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신다. “식사할 때에 너는 이리로 오라”.

그리스도는 죄인들과 경건치 않은 자들을 위하여 죽으셨다. 여러분이 자녀들의 떡을 먹을 수 없다고 느낀다면 어쩌면 주님은 자녀들의 상 밑에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주실 것이다. 당신에게 어떤 공식적인 초청장이 없는 것 같이 느껴질지라도 주 예수께 오라! 주님은 당신을 받으실 것이고, 그분은 가까이에 온 당신을 보고 “속히 이리로 오라” 하실 것이다. 그분은 당신에게 떡을 먹으라는 초청을 하실 뿐 아니라 초를 찍으라고까지 요청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초란 일종의 떡의 소스(sauce)다. 주님께 나오는 자들은 말씀과 더불어 달콤한 위안을 받게 되는 것이다. 
또한 보아스는 룻에게 볶은 곡식을 주었는데 이는 우리가 거듭난 사람이란 확신인 것이다. 초를 찍는 것은 달콤함을 주는 것인 반면 볶은 곡식은 영적인 교통 속에서 발견되는 구원의 기쁨과 확신인 것이다. 배불리 먹었다는 것은 그 상 앞에서 먹고 마시므로 완전한 만족을 얻었음을 말한다. 이는 하나님이 복음의 잔치에 참여한 사람들의 마음을 채우시어 만족케 하는 것을 상징한다.

10.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그로 곡식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또 그를 위하여 줌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로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하니라”. 이는 오늘날 말씀의 사역자들인 우리가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은혜를 받으러 온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함부로 책망하고 꾸짖는 것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바가 아니다. 주님은 다시 오셔서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준 종들에게 상을 주실 것이다. 그러나 술친구들로 더불어 집사람들을 때리고 마시고 취한 자들은 많이 맞을 것이다.

오늘날 많은 설교자들이 성도들을 때리기 위해 표적설교를 한다고 들었다. 이는 근본적으로 보아스의 일과 다르다. 보아스는 곡식단 사이에서 줍는 소녀를 책망하지 말라고 하였다. 오히려 조금씩 떨어뜨리는 식으로 사역을 하라고 하였다. 주님은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도다”(마 12:20)라고 하신다. 음악이 전혀 나올 수 없는 불쌍한 성도들에게 함부로 꾸짖고 책망하지 말고, 오히려 그들을 위하여 일부러 이삭을 조금씩 뽑아버리라고 하신다. 그럴때 오히려 더욱 온유와 사랑의 말씀, 용서의 이삭을 떨어뜨려 그들로 줍게 하라! 주님이 기뻐하실 것이다.

17 룻이 밭에서 저녁까지 줍고 그 주운 것을 떠니 보리가 한 에바쯤 되는지라 18 그것을 가지고 성읍에 들어가서 시모에게 그 주운 것을 보이고 그 배불리 먹고 남긴 것을 내어 시모에게 드리매 19 시모가 그에게 이르되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어디서 일을 하였느냐 너를 돌아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룻이 누구에게서 일한 것을 시모에게 알게 하여 가로되 오늘 일하게 한 사람의 이름은 보아스니이다 20 나오미가 자부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복이 그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그가 생존한 자와 사망한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나오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은 우리의 근족이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 하나이니라 21 모압 여인 룻이 가로되 그가 내게 또 이르기를 내 추수를 다 마치기까지 너는 내 소년들에게 가까이 있으라 하더이다 22 나오미가 자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너는 그 소녀들과 함께 나가고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 23 이에 룻이 보아스의 소녀들에게 가까이 있어서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 그 시모와 함께 거하니라

1. 룻은 저녁까지 열심히 주운 것을 떨었다. 곧 이삭을 추수한 것이다. 그녀는 자기의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본이 되었다. 그녀는 비록 적은 분량이지만(보리 한 에바는 열두 되 가량 된다. 이삭을 줍는 형편으로는 그래도 큰 수확이었다), 성실히 추수하여 시모에게 가지고 갔다. 나오미는 누군가 룻을 도와주지 않으면 그런 분량의 곡식을 가지고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곧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룻에게 물었다.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어디서 일을 하였느냐 너를 돌아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룻이 누구에게서 일한 것을 시모에게 알게 하여 가로되 오늘 일하게 한 사람의 이름은 보아스니이다”.

2. 나오미는 이미 보아스를 알고 있는 터였다. 그는 그의 이름이 보아스라고 하자 하나님을 찬미하며 그를 축복하는 말을 했다. “나오미가 자부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복이 그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그가 생존한 자와 사망한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룻을 선대한 것이 자기의 죽은 남편인 엘리멜렉과 남은 유족인 자기에 대한 선한 배려임을 알았다. 그녀는 이어서 룻에게 보아스가 자신의 친족이며 기업을 무를 자라고 말해주었다.

3. 그럴 때 룻은 나오미에게 보아스가 한 말을 한 마디 더 했다. “그가 내게 또 이르기를 내 추수를 다 마치기까지 너는 내 소년들에게 가까이 있으라 하더이다”. 보아스는 추수를 마치기까지 룻이 그의 밭에서 이삭줍기 할 것을 배려해준 것이다.

4. “나오미가 자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너는 그 소녀들과 함께 나가고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 나오미는 오래된 신자의 냄새를 갖고 있다. 오래된 신자는 경험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뭔가를 예측할 수 있다. 이것이 어린 신자들과 다른 점이다. 그녀는 여기에 뭔가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성도들은 오랜 그리스도인의 길을 걸었고 경험있는 성도들의 조언을 멸시하지 말아야 한다.



출처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56207&section_code=oc&scode=oc_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