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島嶼) 복음의 어머니
1950년 6. 25불법 남침으로 삽시간에 남한 전역을 거의 휩쓸었던 공산군은 그해 9월 서울이 수복될 때까지 점령지역에서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양민을 학살했다. 10월초 공산군이 퇴각하고 미처 국군이 들어오기 전 목포와 인근 도서 지방에는 그동안 맹위를 떨치던 공산 잔당들이 밤낮없이 사람들을 끌어다 처형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그들은 진작부터 문준경 전도사를 체포하여 취조를 하였으나 호응하지 않으니까 목포의 상급 기관으로 보냈다. 문전도사가 목포에 왔을 때는 이미 공산군들이 퇴각한터라 몇 일 만 더 숨어있었으면 국군과 함께 안전하게 섬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문전도사는 섬에서 수난당하는 성도들을 생각하여 서둘러 섬에 들어왔다가 기다리고 있던 공산잔당에게 잡혀서 처형되었다. 공산당들은 문전도사를 공개 처형하면서 그가 섬사람에게 전도하고 많은 교회를 세웠기 때문에 “새끼를 많이 깐 씨 암탉”이라고 하며 반드시 죽여야 된다고 했다. 죽창을 찌르고 몽둥이로 때리다가 총을 쏴 죽였다고 하는데, 죽으면서 “나를 죽이더라도 제발 다른 사람들은 죽이지 말아 달라”고 말하며, 기도하는 모습으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묘비 밑판에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새겨 놓은 성경 말씀은 현장을 찾는 사람 모두에게 그 말씀의 실제를 보여주는 증거가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