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손상률 원로 목사)
멀린 2009.02.15 10: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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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島嶼) 복음의 어머니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에는 故 문준경(文俊卿)전도사의 순교 유적지가 있다. 면사무소가 있는 마을 근처, 서해안의 낙조를 감상하며 낭만이 깃든 해안 도로를 따라 가면 왼쪽에는 그 고장 명물인 ‘짱둥이 다리’가 놓여 있고 오른쪽으로 소나무가 우거진 아담한 공원이 있다. 이 공원을 ‘솔무등 공원’이라고 하는데 그 공원 끝자락에 문준경 전도사의 묘소와 그분의 순교를 기념하는 조형물들이 설치되어 있다. 중앙의 큰 비석에는 ‘도서 복음의 어머니 고 문준경 전도사 순교지’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고, 그 앞에는 성경책 모양의 돌비가 있는데 거기에는 문준경 전도사의 일대기를 요약하여 기록해 놓았다. 그 옆으로 1964년 증동리 교회 교인들이 세웠다는 낡은 비석이 하나 있는데 “빈한한 자의 위로되고, 병든 자의 의사, 아해 낳는 집의 산파, 문맹퇴치 미신타파의 선봉자, ...... 그대의 이름에 하나님의 은총이 영원히 깃들기를!” 이라고 새긴 글귀가 있다.

1950년 6. 25불법 남침으로 삽시간에 남한 전역을 거의 휩쓸었던 공산군은 그해 9월 서울이 수복될 때까지 점령지역에서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양민을 학살했다. 10월초 공산군이 퇴각하고 미처 국군이 들어오기 전 목포와 인근 도서 지방에는 그동안 맹위를 떨치던 공산 잔당들이 밤낮없이 사람들을 끌어다 처형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그들은 진작부터 문준경 전도사를 체포하여 취조를 하였으나 호응하지 않으니까 목포의 상급 기관으로 보냈다. 문전도사가 목포에 왔을 때는 이미 공산군들이 퇴각한터라 몇 일 만 더 숨어있었으면 국군과 함께 안전하게 섬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문전도사는 섬에서 수난당하는 성도들을 생각하여 서둘러 섬에 들어왔다가 기다리고 있던 공산잔당에게 잡혀서 처형되었다. 공산당들은 문전도사를 공개 처형하면서 그가 섬사람에게 전도하고 많은 교회를 세웠기 때문에 “새끼를 많이 깐 씨 암탉”이라고 하며 반드시 죽여야 된다고 했다. 죽창을 찌르고 몽둥이로 때리다가 총을 쏴 죽였다고 하는데, 죽으면서 “나를 죽이더라도 제발 다른 사람들은 죽이지 말아 달라”고 말하며, 기도하는 모습으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묘비 밑판에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새겨 놓은 성경 말씀은 현장을 찾는 사람 모두에게 그 말씀의 실제를 보여주는 증거가 되고 있다.

  
출처 : http://www.hua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