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처럼, 우리가 마음에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환경이 우리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엘리사와 네 명의 문둥이는 절대 절망 속에서 절대 희망을 가졌습니다. 이들은 우리에게 희망찬 행진에 대하여 큰 원동력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본문에 나타난 희망의 대행진은 어떠한 것일까요?
본문에 보면, 네 명의 문둥이가 아람 적진에 도착하자 그 곳에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5절). 그런데 하나님의 역사는 네 명의 문둥이가 절대 절망을 딛고 일어나 희망찬 행진을 하기 시작한 바로 그 때에 일어났습니다. 네 명의 문둥이가 걸어가는 소리가 아람 군대에게는 마치 40만 대군의 행군 소리로 들렸으며, 그 네 사람이 차고 있던 걸식용 빈그릇들의 부딪치는 소리가 수많은 창검이 부딪치는 쇳소리로 들렸던 것입니다.
마침내 아람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주변국들과 거대한 연합군을 결성해서 공격해 오는 줄로 착각하고, 기겁을 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다 도망쳤던 것입니다. 네 명의 문둥이는 그 곳에 쌓인 산더미 같은 음식을 배불리 먹고 금, 은, 의복을 마음껏 취했습니다. 그러나 문득 정신을 차리고 다시 사마리아 성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왜냐하면 네 명의 문둥이는 성 안의 사람들이 절대 절망 속에서 죽어가는 것을 방관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한편, 하나님을 믿고 담대히 희망을 선포한 엘리사의 말은 어김없이 이루어졌습니다. 엘리사의 절대 희망을 비웃던 장관은 왕의 명령을 받아 성문을 지키면서 풍부한 양식과 보화를 눈으로만 보았을 뿐, 흥분한 군중들의 발에 짓밟혀 죽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절대 절망과도 같은 십자가 죽음이 절대 희망의 부활로 바뀐 것은 바로 우리를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현재 형편이 어떠하든지, 절대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속에 절대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하나님의 기적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할지라도 오직 믿음으로 희망찬 행진을 하여 절대 희망의 기적을 체험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