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굽에서 올라온 이스라엘이 신 광야에 이르렀을 때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습니다. 그들이 종살이를 하던 애굽에서는 고기와 떡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지만 광야에서는 먹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원망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아침마다 하늘에서 양식을 내려 주셨습니다(출 16:4). 이스라엘의 출애굽 운동은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주도하신 운동입니다. 그 힘든 광야여정에 매일 아침 만나를 내려 먹이신 것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입니다. 한편 이스라엘 백성은 그 크신 은혜 속에 살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몰랐습니다. 여기 ‘이것이 무엇이냐?’고 하는 그들의 질문은 하나님 나라의 신비를 모르고 의심하는 사람들의 소행입니다. 세상 지식을 다 가지고도 하나님의 감동 없이는 그 질문의 대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광야 여행을 인도했던 모세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만나를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신 8:3). 떡보다도 더 중요한 말씀의 실체를 일러 주는 내용입니다.
1) 성경 계시의 신적(神的) 요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누가 기록하고 누가 전하든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살전 2:13). 일반적으로 구약을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이라 하고(눅 24:44), 신약을 “사도들의 글”이라고 표현합니다(눅 1:2). 성경을 기록한 사람과 연대와 그 배경이 다르더라도 그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디모데후서 3:16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34:16에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령하셨고 그의 영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신비로운 능력을 발휘합니다(히 4:12).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로 이루어진 신적 요소임을 모르는 사람은 “이것이 무엇이냐?”하고 의문을 제기합니다.
2) 언약의 신실성
말씀은 말하는 자의 인격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계시를 통하여 인간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것은 신실하신 하나님의 인격과 관련이 있어서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신 7:9).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실 때 그 자손들을 애굽의 종살이 하던 곳에서 구출해내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창 15:13-14). 호렙산 불꽃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실 때도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며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내시겠다고 하셨습니다(출 3:12). 하나님께서는 언약하신 대로 그 백성들의 길에 함께 하셨고 그들의 모든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신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약속을 하고도 지키지 못합니다. 로마서 3:4에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고 하였습니다. 신실하지 못한 인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면서 ‘이것이 무엇이냐?’고 묻게 됩니다.
3)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
창조주 하나님께서 권능의 말씀으로 우주와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피조물을 하나하나 챙기시며 다스리십니다(사 40:26).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공중의 새를 먹이시고 들에 핀 백합화를 입히신다고 하였습니다(마 6:26-29). 이와 같은 말씀들은 피조세계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의 역사를 의미합니다. 자연과 만물보다 월등하게 소중한 자기백성을 먹이시고 입히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면서도 이를 의심하거나 원망하곤 하였습니다. 시편 78:19-20에 보면 그들이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믿지 못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광야에서 식탁을 베푸실 수 있으랴 ...... 반석에서 물을 낸 것처럼 떡과 고기도 줄 수 있으랴?”하고 의심하는 말을 내 뱉었다는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가 행하시는 이적을 보면서도 그가 누구인지 몰랐습니다(요 8:19).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만나를 먹으면서도 그것을 모르는 것처럼 유대인들은 자기들 가운데 오신 예수님을 보고도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인 줄 몰랐습니다(행 3:17).
1) 성육(成肉)하신 그리스도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오심에 대하여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하였습니다(요 1:14). 범죄한 인간의 생각만으로 예수님을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인 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었을 때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고 하였습니다(마 16:14). 같은 몸에서 태어난 예수님의 동생들도 예수님과 같이 자랐지만 예수님이 누구인 줄 몰랐습니다(요 7:5). 예수님과 고락을 같이 했던 제자들마저도 예수님께서 이적을 행하실 때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하며 의문을 품었습니다(마 8:27).
2) 생명의 양식.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하늘의 양식 만나를 내려 주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신 8:3). 예수님께서는 벳새다 광야에서 배고픈 무리에게 오병이어의 이적을 베푸신 다음 생명의 떡에 대한 교훈을 하셨습니다. 곧 광야에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먹은 하늘의 양식, 만나는 장차 오실 예수님을 예표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6:51에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대속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가 죽음 아래 있는 인류를 살려내신 것입니다.
3) 값없이 받은 구원
성경은 우리가 받은 구원을 값없이 주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였습니다. 에베소서 2:8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자기의 힘이나 노력으로 이루어낸 것은 귀한 줄 알면서 거저 받은 은혜와 선물은 잘 모르고 넘길 때가 많습니다. 영원히 멸망 받을 우리가 죄와 죽음에서 해방된 것이 우리에게는 거저 받은 구원이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독생자 예수님의 생명을 대가로 치른 것입니다. 로마서 3:23-24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3. 받은 축복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은혜와 복을 받고도 그 사실을 모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연의 은택과 축복 속에 살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모릅니다. 심지어 예수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마저도 구원받은 축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1) 하늘 문을 여신 것
하늘의 양식 만나는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의 상징입니다. 시편 78:23-24에 “그가 위의 궁창을 명령하시며 하늘 문을 여시고 그들에게 만나를 비같이 내려 먹이시며 하늘 양식을 그들에게 주셨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하늘을 “하나님의 보좌”라고 하였는데 이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처소에 대한 상징적 의미를 지닙니다(사 66:1). 또한 하늘을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은 축복의 창고로 표현하였습니다. 마태복음 6:20에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필요하실 때마다 그가 관리 하시는 보고의 문을 여시고 적절하게 복을 내려 주십니다. 말라기 3:10에는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자에게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하였습니다.
2) 축복과 시험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은 거기 상응하는 책임이 부여됩니다. 여기 하늘의 문을 열고 만나를 내려 주실 때도 그들에게 요구하신 명령이 있습니다. 백성들은 조상 때부터 한 번도 들어 본 적도 없고, 먹어 본 적도 없는 만나를 처음 보았을 때, 모두들 “이것이 무엇이냐?”하고 의아해 하였습니다. 이때 모세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양식을 주신 하나님의 분부를 따라서 각 사람은 욕심을 부리지 말고 식구 1인당 한 호멜씩 먹을 만큼만 거두라고 하였습니다. 백성들은 그 말을 무시한 채 저희 성향대로 많이 거두기도 하고 적게 거두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호멜로 되어 보았을 때 많이 거둔 자도 남은 것이 없었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었더라고 하였습니다(17-18절).
3) 지속적인 축복의 비결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자자손손 변함없이 누리게 될 축복의 비결을 약속하였습니다(출 20:6). 여기 만나를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거기에 순종하는 삶을 살기만 하면 때를 따라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보장해 주신다는 증거입니다. 모세는 이 부분을 언급할 때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신 8:3). 만나의 실체를 모르는 백성들은 ‘이것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신앙적인 안목이 있는 사람은 신비로운 하나님의 역사를 곧바로 인식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아는 것이 축복입니다(잠 9:10). 이 은혜의 실체를 아는 사람이 만나의 신비로운 축복을 즐기며 사는 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