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설교

장년
예람지기 2011.06.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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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길을 두고 뫼(산)로 갈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바른 길을 두고도 길이 아닌 엉뚱한 곳으로 가서 방황하는 것이 범죄한 인간의 실상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백성이 길을 이탈하여 허둥대는 모습을 보고 “처녀 이스라엘을 위하여 길표를 세우라.”고 하였습니다(렘 31:21). 이스라엘의 여호람 왕과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모압과 전쟁을 하기위해 나갔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낭패를 당했습니다. 7일 동안이나 사막을 헤매다가 마실 물을 얻지 못하여 군병들과 가축들이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전쟁에 나간 군인이 적과 싸워 보기도 전에 지리멸렬 당할 위기에 놓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런 위급한 상황에 이르게 되면 당황하거나 판단을 잘못하게 됩니다(10절). 그렇지만 슬기로운 사람은 어려움에 처할수록 신앙적 기지를 발휘하여 문제의 해결점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1. 성도에게 오는 시험

유다 왕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 착한 왕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여호람은 악명 높은 아합의 아들이지만 아버지처럼 하나님을 대적하지는 않았습니다(왕하 3:2). 이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과 왕들에게도 예상 못한 시험을 당하고 고난을 받게 됩니다.

 

1) 자연적인 현상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와 주변 지역들은 무더운 열대성 기후에다 대부분이 메마른 황무지요, 사막입니다. 광야로 여행하는 대상들에게 가장 어려운 고통은 물이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도 가는 데마다 그곳 원주민들과 우물을 위한 투쟁을 하였고(창 26:19-22),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가나안 여행을 할 때도 물이 없는 고통에 시달렸습니다(출 15:22-23). 오늘날 지구촌에도 어디나 없이 물 없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물은 생명과 직결되는 것이지만 오늘날 지구의 온난화에 따라 온 세계가 이 문제에 비상을 걸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지역을 위시하여 강수량이 적은 곳은 이미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성경은 말세적 현상으로 가뭄과 홍수 뿐 아니라 지진과 해일 등 자연재난을 예고하였습니다(눅 21:25).

 

2) 인간의 영적 상태입니다.

성경은 범죄한 인간이 사는 세상을 메마른 사막으로 비유하였습니다. 그것은 생수의 근원 되는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렘 2:13). 선지자 아모스는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하였습니다(암 8:11). 메시야 선지로 불리우는 이사야는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하면서 그가 오시면 메마른 사막에 시내가 흐르고 꽃이 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사 35:6). 예수님은 영혼을 소생하게 하는 생수의 샘입니다(요 4:14). 예수가 없이는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목마르고 갈급한 영혼이 해갈될 수는 없습니다. 권력의 정상에 있는 사람이거나 재물이 많은 부자이거나 인기절정에 있는 사람도 영혼의 갈증을 해결하지 못할 때 불행한 말로를 겪고 맙니다.

 

3) 인간의 한계를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의 여호람 왕은 자기를 배반한 모압을 징벌하기 위하여 군사를 동원했습니다. 남쪽의 유다 왕과 에돔 왕까지 동원하여 연합군을 조직하고 단숨에 모압을 점령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8절에 보면 “여호람이 이르되 우리가 어느 길로 올라 가리이까 하니 그가 대답하되 에돔 광야 길로니이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통상적인 길을 두고 다른 길로 둘러감으로써 적군의 허를 찌르겠다는 전략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그들은 길을 잃고 일주일간이나 시간을 허비했으며 마실 물이 없어서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도울 힘이 없는 인간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사 2:22). 잠언 16:9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고 하였습니다.

 

2. 시험을 당했을 때

시험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지만 시험을 당했을 때 거기에 대처하는 태도는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납니다. 신자와 불신자의 방법이 다르고 같은 신자라도 사람의 성격이나 신앙의 정도에 따라서 대처하는 방법과 결과도 다른 것입니다.

 

1) 불평하고 좌절합니다.

이스라엘의 군대가 7일 동안 길을 잃고 헤매면서 마실 물을 얻지 못하고 허우적거릴 때 여호람 왕은 탄식을 하였습니다. 10절에 “이스라엘 왕이 이르되 슬프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넘기려 하시는도다.”고 하였습니다. 여호람 왕은 자기의 판단이 빗나가고 처음 계획했던 작전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하나님께서 저희를 모압 왕의 손에 넘기려 하신다고 속단하였습니다. 여호람은 본래 신앙이 없는 인물입니다. 그가 모압 전쟁을 일으킨 것도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순전히 자기의 자존심과 감정 때문이었습니다(5절). 전략을 세울 때도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그러고도 결과가 잘못되었을 때 책임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불신앙의 사람은 욥의 아내처럼 막말을 하거나 극단적인 행동을 하곤 합니다(욥 2:9).

 

2) 하나님을 찾습니다.

11절에 “여호사밧이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 하는지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어떤 사건에 접할 때, 먼저 저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매듭을 풀려고 합니다. 똑같은 사안을 두고 여호람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자기의 의지대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여호사밧은 위기에 처하게 한 문제의 원인이 하나님께 있음을 직감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선지자를 찾아가서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가를 물어 보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첩경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이전에 여호람의 아버지 아합과 전쟁에 나갈 때도 그런 태도를 보였습니다(왕상 22:5).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눈동자처럼 살피고 보호하시는 분입니다(신 32:10). 믿음이 있는 사람은 자기에게 오는 시험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는 영적 감각을 발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전적으로 순종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합니다. 선지자를 통하여 전해지는 말씀이 제게 맞지 않더라도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아람 나라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불치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엘리사에게 나아갔으나 선지자가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하는 그 말씀이 못마땅하여 돌아서려고 하였습니다. 뒤늦게 사환의 말을 듣고 그대로 순종을 하였더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왕하 5:8-14). 여기 여호사밧의 방문을 받은 선지자는 대뜸 거문고를 연주할 악사를 불러오라고 하였습니다(15절). 그곳이 전쟁터이고 또 당장 마실 물이 없어서 병사들과 군마가 목이 타서 죽을 지경인데 그 상황에 거문고 탈 자를 불러다 연주를 하게 하라는 것은 수긍하기 어려운 분부입니다. 그래도 순종하였습니다.

 

3. 하나님 나라의 신비

엘리사를 찾아간 이스라엘 왕은 전혀 예상 밖의 분부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골짜기에 개천을 파라는 것입니다(17절). 거기 물이 가득 차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1) 바람과 비가 안 보여도

하나님의 나라에는 사람의 지식으로 설명이 안 되는 불가사의(不可思議)적 요소가 있습니다. 예레미야 33:3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약속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신비는 믿음을 가진 사람만이 체험할 수 있는 은혜입니다. 사람들은 상식적인 선에서 이해가 되거나,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거나, 합리적으로 논리가 성립 될 때 수긍하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신앙은 그 모든 것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말씀만 신뢰하고 거기 순종하는 행위입니다. 여호람과 여호사밧의 군대는 바람도 불지 않고 비를 몰고 올 구름도 안 보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순종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실패를 통하여 값비싼 대가를 치른 다음 하나님만 의지하게 된 결과입니다.

 

2) 골짜기에 개천을 파는 작업

선지자 엘리사는 여호람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하셨나이다.”고 하였습니다. 목마른 사람들에게 당장 마실 물 한 방울이 아쉬운 터에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판다는 것은 현실성이 전혀 없는 무모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바람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하되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희 가축과 짐승이 마시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이 말씀을 믿고 골짜기에 개천을 팠습니다. 비 올 바람과 구름이 없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물이 흘러내릴 골짜기를 파고 둑을 막아 댐을 만든 것입니다. 그들은 파내는 작업과 막는 작업을 병행하였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을 파내는 회개와 또 믿음으로 받게 될 축복의 그릇을 키우는 작업입니다.

 

3) 더 큰 일을 보게 되는 것

18-19절에 “이것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작은 일이라 여호와께서 모압 사람도 당신의 손에 넘기시리니 당신들이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모든 샘을 메우고 돌로 모든 좋은 밭을 헐리이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상상도 못한 축복의 보너스입니다. 그들이 파 놓은 골짜기에 물이 가득 차게 된다는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인데 거기에다 모압 군대들까지 다 도망가게 된다고 하니 꿈같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말씀대로 다음날 아침 물이 에돔 쪽에서 흘러와 땅에 가득하였습니다. 그리고 모압 군대는 물에 비친 해의 그림자를 보고 착각을 하였고 그 틈에 이스라엘 군대가 급습하여 완전히 궤멸시켜 버렸습니다(21-27절). 이처럼 하나님 나라의 신비는 체험하는 사람이 더 충만하게 받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6에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더라.”고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