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설교

자동차가 달리는 전용도로에는 노변에 안전장치(guardrail)가 있습니다. 특히 교량이나 낭떠러지가 있는 구간에는 반드시 난간과 같은 보호벽을 설치합니다. 속력을 내어서 달리는 자동차가 자칫 경계선 밖으로 벗어나게 되면 큰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가는 길에도 위험이 있습니다. 오직 한 길, 말씀이 정하는 그 길만 가야 되는데 간혹 발길이 말씀 밖으로 삐끌어지면서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 133절에 “나의 발걸음을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어떤 죄악도 나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부르짖음은 이 시대에 진리의 말씀을 수호하고자 하는 파수꾼의 절규입니다. 성도의 발걸음은 말씀이 정하는 그 길만 가야 됩니다.

 

1. 진리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문에는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고 하였습니다(요 17:17). 시편 119:160에 “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이오니 주의 의로운 모든 규례들은 영원하리이다.”고 하였습니다.

 

1) 오직 하나인 진리입니다.

“진리(?ληθε?α)”라는 말은 ‘참된 것’ 또는 ‘바른 이치’라는 뜻입니다. 여기에는 거짓이나 어떤 사술이 섞이지 않는 순수한 것을 의미합니다. 진리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진리와 비슷한 것은 많이 있어도 참된 것은 유일함이 특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유일한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그 어떤 것도 진리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성경말씀을 캐논(Canon)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신학적인 용어로서 ‘규범’ 또는 ‘척도’(尺度)를 의미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규범이 되고 또한 신앙적인 삶을 가름하는 유일한 척도입니다. 그 말씀은 또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다른 이름으로써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하였습니다(행 4:12).

 

2)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분입니다. 사무엘상 15:29에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입맛대로 다르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절대적 권위에 도전하기도 합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신비적인 사건을 인간적인 척도에서 해석하며 그 본질을 왜곡시킵니다. 예수님의동정녀 탄생이나 속죄의 죽음과 부활의 진리마저 부인하기도합니다. 믿음으로 구원얻는 도리와 천당과 지옥까지도 무시해 버리고 그냥 인간적인 사랑이나 윤리와 도덕에 필요한 교훈으로 전락시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거나 덜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하였습니다(계 22:18-19).

 

3) 영원한 진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영원하신 분입니다. 히브리서 13:8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계시록 1:4에 보면 예수님을 가리켜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영원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의 말씀도 영원한 진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마 24:35).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하다는 것은 그 말씀의 효력이나 능력이 영원한 것을 뜻합니다. 사람들은 인간의 지식과 문명이 발달하여 하나님을 능가할 수 있다고도 합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인간과 역사는 잠깐이지만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입니다.

 

2.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고난도의 유격 훈련을 받는 병사들은 이 산과 저 산에 밧줄을 걸쳐놓고 줄타기 훈련을 합니다. 쳐다보는 사람은 손에 땀을 쥐며 재미를 느끼지만 본인은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그 한 가닥 줄에 생명이 걸려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행보를 말씀에 고정시키고자 안간힘을 다하는 사람도 생명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인 것입니다.

 

1) 말씀이 생명의 근원입니다.

요한복음 1:1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하였습니다. 4절에는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모든 생명을 있게 하였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딤후 3:16). 이사야 34:16에 “너희는 여호와의 책에서 찾아 읽어보라 이것들 가운데서 빠진 것이 하나도 없고 제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령하셨고 그의 영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성령을 생명이라고 표현합니다(고후 3:6). 최초에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신 것도 그와 같은 원리입니다(창 2:7).

2) 생명을 소생시킵니다.

시편 19:7에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에 육체나 영혼이 병들고 약해집니다. 육체가 쇠약하거나 병들게 되면 음식을 먹이든지 약물로 치료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영혼이 병들고 죽어갈 때 물리적인 처방으로 소생시킬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13:9에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음식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시들고 병든 영혼은 말씀과 성령으로 소생됩니다. 에스겔 선지가 골짜기의 마른 뼈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을 때 생기가 주입되면서 죽은 자들이 살아났습니다(겔 37:10). 죽은 나사로와 야이로의 딸과 나인 성 과부의 아들은 모두 ‘일어나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일어났습니다(요 11:43, 눅 7:14, 8:54).

 

3) 영원히 살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요 11:25-26).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생명’이라는 말로 표현을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너희도 가려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을 받고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라고 대답하였습니다(요 6:67-68). 여기서 말하는 영생은 육체의 생명이 아닌 영혼의 생명을 가리킵니다. 성경은 생명이신 예수님과 단절된 영혼은 이미 죽은 상태라고 규정하였습니다(엡 2:1). 이들이 최후심판 때 영원한 불못으로 던져지고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는 것입니다(계 21:8). 그렇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보장되어 있습니다(요 5:24).

 

3. 축복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그 말씀을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상의 가치로 여깁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고 하였습니다(시 19:10).

 

1) 말씀이 복입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는 가상적 질문에 대하여 “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롬 3:1-2).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선택받은 민족으로서 많은 특권을 누렸습니다. 그들은 특권의 상징을 할례와 같은 율법적 의식으로 생각했습니다. 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것이 큰 복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시편 기자는 복 있는 사람의 특징을 하나님의 말씀에 두었습니다. 말씀의 가치를 알고 그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만사가 형통케 된다고 하였습니다. 말씀의 조명을 받으면서 온전한 삶을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시편 119:105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고 하였습니다.

 

2) 말씀이 능력을 발휘합니다.

히브리서 4:12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아멘’하고 수용하게 되면 말씀이 마음속에서 능력을 발휘합니다. 바울은 그가 전하는 말씀을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게 될 때 그 말씀이 마음속에서 역동적인 작용을 한다고 하였습니다(살전 2:13).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마음의 토양에 따라 그 생명력을 발휘합니다. 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에는 좋은 땅에 떨어진 씨가 백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거둔다고 하였습니다(마 13:8). 적은 양의 누룩이 많은 반죽을 부풀게 하듯이 말씀이 사람의 인격을 새롭게 변화시킵니다(마13:33).

 

3) 말씀대로 사는 것이 복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주실 때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고 하였습니다(계 1:3). 말씀의 가치를 알아서 항상 읽고, 듣고 하지만 이를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말씀이 주는 복은 듣고 아는 것만이 아니고 이를 행함으로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다윗은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큼이니이다.”고 하였습니다(시 19:11). 말씀의 복을 체험하는 사람은 말씀이 금하고 경고하는 것은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또 말씀이 하라고 명하는 것은 어떤 일이든지 지키며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십자가를 지는 고통이 되더라도 즐거움으로 감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하여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켰다고 칭찬하시고 축복하였습니다(계 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