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는 기독교 복음의 심벌입니다. 십자가(Cross)는 수직과 수평이 교차함으로 이루어지는 교통의 의미가 있습니다. 전자는 하늘과 땅이 연결되는 것으로서 하나님과 사람과의 수직적 교제를 의미하는 것이며 후자는 좌우로 뻗어나가면서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키는 수평적 교제를 뜻합니다. 에베소서 2:14에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중간에 막힌 담을 헐고 원수된 것을 화목하게 하였다고 했습니다. 본문 말씀 5절에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참여’라는 말 ‘코이노니아(Κοινονια)’는 교제(행 2:42), 사귐(요일 1:3) 등으로 번역되는 말입니다. 범죄한 인간이 안고 있는 모든 단절과 갈등의 장벽을 허물고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교제와 평화를 이루게 하는 신령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인간의 범죄는 하나님과의 교통을 단절시켰습니다(골 1:21).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다시 화목하게 하였습니다(엡 2:16).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의지하여 다시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1) 기도를 통하여 교제합니다.
기도는 성도가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행복한 수단입니다. 이교의 기도는 상대방의 의사와 상관없이 자기의 일방적인 주문입니다(왕상 18:26-29). 성경적 기도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고 감사와 간구를 하는 것이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의 뜻을 알게 해 주시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도의 기도를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에서 주고받는 대화라고 하였습니다(마 7:11). 아들이 아버지에게 나아가서 신앙을 고백하고 아버지의 이름을 높이며 받은 은혜에 감사를 드리게 되면 그것으로 아버지는 만족해하고 기뻐합니다(롬 8:15). 계시록 5:8에는 성도의 기도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에 담겨서 하나님의 보좌에 올라간다고 하였습니다.
2) 찬송으로 교제합니다.
찬송은 구원받은 은혜에 감격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찬양을 기뻐 받으십니다. 옛날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이 유월절의 은혜를 받았고 또 홍해를 건너온 후에 그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소고를 치며 춤을 추고 하나님께 찬양하였습니다(출 15:1-21).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도 감사의 고백이나 보답하는 행위가 없을 때 이는 배은망덕하는 죄가 됩니다(눅 17:17-18). 시편에 나오는 많은 글들은 구약의 성도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감사와 고백을 하는 기도요 찬송입니다. 성령과 함께하는 사람은 항상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 찬송 속에서 하나님의 감동과 역사하심을 체험하게 됩니다(왕하 3:15-17, 행 16:25-26).
3) 말씀으로 교제합니다.
시편 1:2에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그것을 마음속에 묵상하므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성령의 능력이 행사됩니다. 히브리서 4:12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디모데후서 3:16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읽고 듣고 깨닫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계 1:3).
2. 사람과의 교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의 몸 같이 사랑하는 것이 율법의 강령이라고 하였습니다(마 22:37-40). 성경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사람과의 사랑으로 행사 되는 것을 강조합니다.
1) 마음을 같이하는 것입니다.
오순절 이후에 시작된 예루살렘 초대교회는 성령 안에서 마음을 같이하며 교제하는 공동체였습니다. 사도행전 2:46에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교제의 비결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공유하는데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빌 2:5). 교회는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은 하나님 자녀의 집단입니다. 모두 다 예수님의 마음을 간직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막혀있는 벽을 무너뜨리고 사랑으로 교제할 수 있습니다.
2) 서로 섬기며 베푸는 일을 합니다.
로마서 12:9-10에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작동하게 되면 자기가 앞장서서 다른 사람을 섬기며 제게 있는 것으로 베풀기를 즐겨합니다. 초대교회에서는 믿는 사람들끼리 서로 물건을 통용하고 또 자기의 재산을 팔아서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나눠 주기를 힘썼습니다(행2:46). 이것이 그리스도의 정신입니다. 사람마다 받은 은사대로 다른 사람을 섬겨야합니다. 소위 가진 자의 사회적 책임(Nobless Oblige)은 그리스도인이 솔선수범해야 될 덕목입니다. 재물이나 권력이나 재능이나 무엇이든지 제게 있는 것으로 베풀며 섬겨야 됩니다. 섬김이 있는 곳에 소통과 교제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3) 적극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생의 도리를 묻는 율법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율법의 강령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웃 사랑의 모범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에 강도를 만나서 죽게 된 사람이 있었는데 제사장과 레위 사람은 보고도 비켜갔지만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를 불쌍히 여기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에 데려다 주며 돌봐 주었습니다(눅 10:30-37). 야고보서 4:17에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받았고 크신 긍휼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된다는 명령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죄를 수없이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3. 교제의 결과는 축복입니다.
11절에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참된 교제가 있는 곳에는 의롭고 복된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1) 믿음의 부요입니다.
마음의 벽을 두껍게 쌓아 놓고 외부와의 교통이 두절된 사람은 고독한 삶을 살게 됩니다. 가슴을 열고 모든 사람과 대화를 하며 교제하는 사람은 외롭지 않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리석은 부자처럼 곳간에 많은 재물을 쌓아 놓고도 하나님께 부요하지 못한 사람은 불행한 자라고 하였습니다(눅 12:21). 그렇지만 모든 일에 하나님과 소통하며 사는 사람은 믿음에 부요한 사람입니다. 야고보서 2:5에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극심한 환난과 궁핍에 시달리는 서머나 교회 성도들을 ‘실상은 부요한 자’라고 하였습니다(계 2:9).
2) 참된 평화와 행복입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과 사도 바울과의 관계는 서로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는 이상적인 ‘코이노니아’의 모델입니다. 바울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고 하였습니다(8절). 그 앞에는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고 하였습니다. 언제나 맑은 영혼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사는 사람은 마음에 평안이 있습니다(마 5:8). 사람과 사이에도 아무런 허물없이 사랑하고 교제하는 사람은 언제나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거기에 정신적인 안정과 육체적인 건강도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의가 성취됩니다.
예수님께서 기도에 대한 교훈을 하시면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마 6:33).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의가 성취되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여기는 자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요, 우리는 그의 지체들입니다. 지체들이 몸 안에서 서로 연합하고 교통하므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성령이 그 마음속에 작용하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분별하고 한편 마음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 10-11에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