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설교

장년
예람지기 2010.12.05 00:00:00
627
  • 일자
    2010-12-05
  • 설교
    손상률 목사
  • 성경
    마태복음 25:1~46

지혜자 솔로몬은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은 이루어지는 때가 있다고 하였습니다(전 3:1) 인간이 하는 일들도 시작이 있은 것은 반드시 끝맺음을 하게 됩니다. 성경은 주권자 하나님의 역사 경영에는 종말과 심판이 있다고 일러 줍니다. 그 시기에 대하여는 오직 하나님께서 정하셨기 때문에 누구도 알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마 24:36). 예수님께서는 그 날과 그 때를 위하여 준비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예수님의 종말론적 교훈으로서 세 가지 비유가 있습니다. 세상의 끝날이 오거나 개인의 종말이 되면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행한 일에 대하여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 날과 그 때를 위하여 준비한 사람은 하나님께 칭찬받고 최상의 행복을 누리는 자입니다.

 

1. 신랑의 혼인에 참여합니다(1-13절).

본문에 나오는 열 처녀 비유는 지상의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신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신랑을 기다리는 처녀들은 하나같이 신랑과 함께 혼인에 참여하기를 희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신랑을 맞이하였습니다.

 

1) 그리스도의 신부

성경은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로 비유하였습니다(엡 5:33). 고린도후서 11:2에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 하였습니다. 이상적인 부부는 사랑으로 연합된 것입니다. 구약성경 아가서에는 솔로몬과 술람미를 이상적인 부부로 묘사하면서 이들을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모범으로 삼았습니다(아 2:1-3). 솔로몬은 술람미를 여인 중에 가장 어여쁜 자로 여기면서 모든 사랑을 쏟았습니다(아 4:1-5). 술람미는 솔로몬을 사모하며 그 품에 안겨 최상의 행복을 누렸습니다(아 2:6-7). 이처럼 사랑으로 연합된 부부는 세상에서 오는 시험이나 역경도 인내하며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이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또한 아름다운 소망을 이루어내기 때문입니다(고전 13:13).

 

2) 경건한 생활을 하는 자입니다.

부부의 관계에는 정절이 있어야 됩니다. 계시록 14:4에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부부의 사이에는 서로가 신의를 지키며 인격적으로 존중해야 됩니다(고전 7:2-3). 성경은 그리스도인이 주님께 대한 신앙의 정절을 지키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과 구별된 모습으로 거룩하게 살아야 됩니다(레 11:45). 구약시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방신을 따르며 우상을 숭배할 때 이를 음행하는 죄라고 하였습니다(겔 23:30). 신약의 야고보는 “간음하는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고 하였습니다(약 4:4). 경건한 사람은 세상의 온갖 유행과 쾌락을 멀리하며 주님의 신부로서 흠도 없고 점도 없게 깨끗한 삶을 사는 자입니다.

 

3) 믿음의 준비를 하는 자입니다.

본문 말씀에는 혼인 잔치에 들어가기 위하여 신랑을 기다리는 열 명의 처녀들이 소개되었습니다. 그중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입니다. 신랑이 더디 오므로 잠도 못자며 기다렸으나 결국 신랑이 왔을 때 슬기로운 처녀들은 들어가게 되었고 미련한 처녀들은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이들은 다 같이 그 시간을 위하여 준비한 사람들입니다. 신랑이 밤중에 오기 때문에 손에 등을 들고 나왔습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기름을 준비했으나 미련한 처녀들은 등만 들고 나왔을 뿐 기름이 없었습니다. 신랑이 오는 시간 불을 켜지 못한 처녀들은 신랑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겉으로는 미련한 처녀들도 슬기로운 처녀들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지만 실상은 내용이 없는 빈껍데기에 불과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2.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합니다(14-30절).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가면서 종들을 불러 각각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와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종들은 그것으로 장사를 하여 이익을 남겼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다섯 달란트를 남겼고 두 달란트 받은 종은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이들은 크게 칭찬을 받고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였습니다.

 

1) 능력에 따라서 은사를 받았습니다.

15절에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라고 하였습니다. 달란트(talent)는 재능 또는 은사를 의미합니다. 여기 주인이 종들에게 금화를 나누어 줄 때 똑같이 주지 않고 각각 다르게 준 것은 그들이 지닌 은사에 따라서 차별을 한 것입니다. 주인은 종들의 재능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무조건 많이 준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서 관리할 수 있는 능력에 알맞도록 주는 것이 주인의 뜻입니다. 교회 안에는 여러 계층과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 있고 그들이 가진 재능과 은사도 다양합니다. 같은 성령이라도 나타나는 은사는 여러 가지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셨기 때문입니다(고전 12:11).

2) 최선의 노력을 하여야 됩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자기 소유의 재산을 맡긴 것은 그것으로 장사 밑천을 삼아 이익을 남기라고 한 것입니다. 주인의 분부를 받은 종들은 곧 바로 가서 열심히 장사를 하였습니다. 주인의 뜻을 헤아리는 사람은 자기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성실하게 노력을 하였습니다. 은사가 다르고 받은 달란트의 차이가 있는 만큼 그들의 일하는 방법이나 수완도 다를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하여 자기가 적게 받은 것으로 불평을 하거나 또는 억지로 다른 사람처럼 보이려고 행동을 해서도 안 됩니다. 사람마다 주어진 환경이나 상황이 다른 것을 인정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면 됩니다. 성경은 “맡은 자의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하였습니다(고전 4:2).

 

3) 최대의 실적을 남겨야 됩니다.

일정한 기간이 지난 후 주인은 종들을 불러서 결산을 요구하였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다섯 달란트를 남겼고, 두 달란트 받은 종은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종은 그대로 땅속에 묻어 두었다가 남긴 것 없이 본전만 가져왔습니다. 주인은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남긴 종에게는 칭찬을 하였지만 남기지 못하고 그대로 가져 온 종에게는 준엄한 책망을 하며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았습니다. 주님께서 교회와 성도들에게 여러 가지 조건과 은사를 주시고 거기 따른 실적을 요구하십니다. 예수님의 비유가운데 씨를 뿌리고 가꾸는 농사의 경우도 많은 결실에 의미를 두었습니다(마 13:8). 물고기 잡는 어부들에게도 좋은 고기를 많이 잡는 것으로 실적을 나타내었습니다(눅 5:6).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 받은 것으로 거기에 상응하는 열매를 맺어야만 하는 것입니다(요 15:8).

 

3.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습니다(31-46절).

34절에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고 하였습니다.

 

1) 오른편 양과 왼편 염소

양과 염소는 같은 과의 동물로써 다같이 하나님께 제물로 쓰여 졌습니다(레 1:10). 그렇지만 이 동물들은 생김새와 성격에 현저한 차이가 있습니다. 양은 성질이 어질고 유순하여 목자의 말에 잘 따릅니다. 성경에는 양을 예수님에 비유하기도 하였고(사 53:7), 성도들로 묘사하였습니다(시 100:3). 염소는 뿔이 달린 짐승으로 목자에게 반항하며 제 마음대로 행동합니다. 이처럼 다른 성향의 동물들을 한 목장에서 같은 목자가 관리하지만 결정적인 때가 되면 목자는 이를 구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좋은 씨와 가라지가 같은 밭에서 자라게 되지만 추수 때는 이를 구분하여 알곡은 곳간에 가라지는 꺼지지 않는 불에 던진다고 하였습니다(마 13:30). 오른편의 양들은 하나님의 예비하신 나라를 상속받았습니다(34절).

 

2) 은사를 올바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들은 물질과 정성을 쏟아서 이웃을 돌보며 섬겼습니다. 35-36절에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신 것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고전 12:7). 여기 오른편 양으로 분류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받은 은사로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도모하는 일에 사용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그것으로 많은 사람에게 베풀며 섬기는 일을 하여야만 됩니다. 가진 자의 사회적 책임(Noblesse Oblige)은 그리스도인이 솔선수범해야 되는 의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40절).

 

3) 예수님의 삶을 실천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이상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갈 4:19). 예수님께서 친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였습니다(마 11:29). 은혜를 받은 사람은 예수님의 마음과 예수님의 삶에 접근하는 생활을 하려고 애를 씁니다. 예수님의 지상 생활은 섬기는 일이었습니다. 마가복음 10:45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닮아 가는 사람은 남을 위해서 헌신하는 십자가의 삶을 실천합니다. 세상 사람은 모두 다 자기의 유익과 만족을 위하여 살아가지만 그리스도의 삶을 실천하는 사람은 자기가 이루어 놓은 성공의 열매를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누곤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보답하는 삶이 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