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야 선지로 불리우던 이사야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펼쳐지게 될 신약 교회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의 예언서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가운데 그들의 흥망성쇠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경영하시는 구속(救贖)의 특징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 중심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근거로 세계를 석권하게 될 교회 운동의 비전입니다. 죄와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침 없이 시달림을 당하지만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능력에 힘입어 언제나 승리를 하게 됩니다. 본문 말씀 20절에 “우리 절기의 시온 성을 보라 네 눈이 안정된 처소인 예루살렘을 보리니 그것이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예루살렘 성전 또는 하나님의 교회를 의미하는 동시에 승리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묘사한 내용입니다.
1. 왕을 보라고 하였습니다.
17절에 “네 눈은 왕을 그의 아름다운 가운데에서 보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왕은 유대나라 13대 히스기야 왕(BC 726-697)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히스기야 왕이 앗수르의 침공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왕을 도와 주었던 사람입니다(왕하 19:1-7).
1) 수난을 당한 왕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경건한 성도의 표본이며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그는 조상 다윗의 길을 좇아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습니다(왕하 18:3). 그러나 앗수르 왕 산헤립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함락될 위기에 처했을 때 엄청난 수난을 당했습니다. 앗수르는 10년 전 살만에셀 왕이 사마리아를 침공하여 북조 이스라엘을 멸망시켰습니다(왕하 18:9-12). 그 여세를 몰아 산헤립은 유다의 여러 성읍을 함락시키고 히스기야를 압박하였습니다. 처음에는 히스기야가 은 300달란트와 금 300달란트의 조공을 바치며 화해를 도모하였습니다. 그러나 앗수르는 약속을 저버리고 예루살렘을 포위하여 완전한 항복을 요구하였습니다. 히스기야는 굵은 베옷을 입고 꿇어 엎드려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습니다(왕하 19:1-3).
2) 하나님만 의지하는 왕입니다.
히스기야는 사람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였습니다. 앗수르의 군대장관 랍사게가 올라와서 여러 가지 말로 왕과 백성을 협박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였으나 그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왕하 18:36). 그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였기 때문입니다. 열왕기하 19:3에 보면 “히스기야의 말씀이 오늘은 환난과 징벌과 모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은 때가 되었으나 해산할 힘이 없도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또 성전에 올라가서 산헤립이 보낸 편지를 펴 놓고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하고 하나님께 절규하듯 부르짖었습니다(왕하 19:16). 그는 하나님께서 저희를 구원해 주시고 천하만국에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심을 보여 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왕하 19:19).
3) 승리의 왕입니다.
17절에 “네 눈은 왕을 그의 아름다운 가운데에서 보며”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히스기야 왕이 아름다운 왕복을 입고 백성들 앞에 나타나는 영광스러운 모습을 말합니다. 또 “광활한 땅을 네 눈으로 보겠고”라고 한 말씀은 백성들이 굳게 닫혔던 성문을 열고 나와 끝없이 펼쳐진 영토를 바라보는 감격을 묘사한 것입니다. 18절에 “계산하던 자가 어디 있느냐 공세를 계량하던 자가 어디 있느냐 망대를 계수하던 자가 어디 있느냐?”고 하였습니다. 이는 앗수르의 침략군들이 전리품을 계산하고 착취한 은과 금을 저울에 계량하며 점령한 성들을 계수하고 다녔으나 그들이 다 물러간 것을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여기 나타난 승리의 왕은 장차 십자가의 고난을 통과하여 부활과 승리의 왕이 되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2. 예루살렘(시온 성)을 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언급된 시온성과 예루살렘은 신령한 축복의 상징입니다. 시편 125:1-2에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고 하였습니다.
1)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나타냅니다.
20절에 “우리 절기의 시온 성을 보라 네 눈이 안정된 처소인 예루살렘을 보리니 그것은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라.”고 하였습니다. 옛날 다윗은 여부스 족속이 지배하던 시온 산성을 빼앗고 다윗 성이라고 불렀습니다(삼하 5:7). 이스라엘 왕국의 도읍지인 예루살렘은 시온 산 기슭에 세워진 도시입니다. 성경에 시온 성이나 예루살렘 성과 같은 이름은 산이나 도시를 지칭하는 지명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이는 성민 이스라엘의 민족정신(Sionism)을 나타내기도 하지만(시 137:1), 한편으로는 하나님 종교의 거룩성과 영광스러움을 상징하는 의미가 있습니다(시 2:6). 요한 계시록에는 시온 산을 천상의 성도들이 모여서 새 노래를 부르는 곳으로(계 14:1), 새 예루살렘을 완성된 천국으로 묘사하였습니다(계 21:2).
2) 임마누엘의 축복을 의미합니다.
21절에 “여호와는 거기에 위엄 중에 우리와 함께 계시리니 그곳에는 여러 강과 큰 호수가 있으나 노 젓는 배나 큰 배가 통행하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세상 가운데 있는 교회들은 많은 수난을 겪게 됩니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아무런 두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앗수르의 침공으로 수난을 겪었으나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같이 계시는 한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여러 강과 큰 호수가 있으나 노 젓는 배나 큰 배가 통행하지 못하리라”고 하신 말씀은 의미가 있습니다. 해발 762m의 높은 지대에 있는 예루살렘은 강이나 호수가 없는 곳이지만 히스기야 때 외적을 막기 위하여 운하를 만들었습니다(대하 32:30). 그곳으로 외적이 배를 타고 침범하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3) 신약교회의 비전입니다.
20절에 “그것은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라 그 말뚝이 영영히 뽑히지 아니할 것이요 그 줄이 하나도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는 시온성과 예루살렘을 ‘안정된 처소’ 또는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이는 장차 이루어지게 될 메시야 왕국의 특징인 동시에 신약교회의 환상입니다. 이사야 54:2에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고 하였습니다. 3절에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고 하였습니다. 건전한 교회는 말씀의 기초에 말뚝을 견고히 박고 튼튼한 줄을 길게 뻗어 휘장을 넓게 치며 세계를 향한 선교적 비전을 펼쳐야 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보라고 하였습니다.
22절에 “대저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요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이요,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라.”고 하였습니다.
1) 공의로운 재판장입니다.
세상에는 정의를 부르짖고 공정한 사회를 만든다고 하지만 그것이 이루어지기는 어렵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여도 재판정에서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선악 간에 공정하게 판단하시는 분입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이 대군을 이끌고 나와 이웃의 여러 나라들을 휩쓸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힘을 과시한 나머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모독하며 예루살렘을 위협하였습니다(왕하 18:19-35). 그는 사람을 믿으며 육신을 권력으로 삼는 자였습니다(렘 17:5).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교만한 앗수르 왕을 심판하셨습니다. 열왕기하 19:35에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고 하였습니다.
2) 언약에 신실하신 분입니다.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이요......”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율법을 세우시는 것 뿐 아니라 그것을 성실히 이행하시는 분입니다. 신명기 7:9에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오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라고 하였습니다. 옛날 선지자 하박국은 이스라엘이 이방인에게 짓밟히고 고난을 당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에게 자기 백성과 맺은 언약을 속히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합 1:13). 그때 하나님께서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고 하였습니다(합 2:3).
3) 구원하시는 왕입니다.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라”고 하였습니다. 히스기야 당시 앗수르의 산헤립군대가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함락 직전에까지 몰아갔을 때 하나님께서 그 결박을 풀어 주시고 그들을 구원해 내었습니다(사 37:36). 하나님께서 왕을 세우실 때 머리에 기름을 부으시고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였습니다(삼상 16:13). 왕으로 세움을 받은 사람은 외적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방어하고 또 전쟁이 일어났을 때 직접 적진에 뛰어들어 자기 백성을 구해 내기도 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이상적인 왕으로 묘사합니다. 계시록 19:16에는 예수님을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세상 끝날에 칼과 철장으로 다스려서 죄와 마귀의 세력을 무너뜨리고 자기 백성들에게 영원한 평화와 안식을 누리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계 2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