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설교

  • 일자
    2010-10-03
  • 설교
    손상률 목사
  • 성경
    로마서 12:9~21

옛날부터 사람들은 입신양명(立身揚名)하여 많은 사람에게 섬김을 받는 것이 행복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마 20:26-27). 종의 신분으로 다른 사람을 섬기며 살아야 된다고 하면 누구나 불행하다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이야 말로 최고의 가치와 덕목이라고 일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기 위하여 오셨다고 하였습니다(막 10:45). 사도들도 사랑으로 종노릇하며 섬기기를 먼저 하라고 가르쳤습니다(갈 5:13). 사도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자기가 3년 동안 섬김의 모범을 보인 것을 실천하라고 권면하면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행 20:35).

 

1. 기독교의 박애(博愛)정신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의 본체입니다(요일 4:7-8).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의 실제입니다(요일 4:10).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고 하였습니다(마 5:39). 무한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섬김의 삶을 실천하게 하는 것입니다.

 

1) 원수를 갚지 않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 14절에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19절에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고 하였습니다. 21절에는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잠언 25:22에는 “그리하면 핀 숯불을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라고 했습니다. 원수를 직접 갚게 되는 것은 서로 미움의 상승작용만 일으키게 되고 피차간 더 큰 불행을 불러오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마 26:52). 그리스도의 사랑은 치밀어 오르는 복수심을 가라앉히고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는 행동을 하게 합니다. 그것이 곧 선으로 악을 이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2)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 15절에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하였습니다. 18절에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사랑의 대상을 고르곤 합니다. 가족이나 친지들 또는 자기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을 우선에 두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예외로 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은 언어나 종족이나 국경에 차별을 두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연의 은택을 의인이나 악인에 구별하지 않고 골고루 주신 것과 같습니다(마 5:45).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고 하였습니다(마 5:46). 이와 같은 사랑의 원리야 말로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우리도 온전케 되는 비결입니다(마 5:48).

 

3) 적극적인 행동이 따라야 됩니다.

기독교의 사랑은 원수에게 보복하지 않는 것이나 또 사람을 구분하지 않는 보편적인 사랑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 말씀 14절에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은 보다 더 적극적인 사랑을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열왕기하 6:22에 보면 이스라엘을 침공하던 아람 군대가 사마리아에서 사로잡혔을 때 이스라엘 왕이 그들을 칼로 치려하자 엘리사는 오히려 떡과 물을 주어 먹고 마시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기독교적인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하여 실천되어져야 합니다. 순교자 손양원 목사님은 여순반란사건 때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해 주고 자기의 아들로 삼았습니다. 이 숭고한 사랑과 희생의 위력을 두고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불렀습니다.

 

2. 섬김의 모범

섬기는 자를 종(δουλο?)이라고 부릅니다. 같은 종이라도 누구를 섬기며 어떻게 섬기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성경에는 본래 육체의 종이었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함을 받았은즉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고 사랑으로 종노릇 하라고 하였습니다(갈 5:13).

 

1) 섬김의 전형(典型)은 예수님입니다.

성경에서 ‘섬기는 자(δι?κονο?)’는 종(servant)을 의미합니다. 구약의 이사야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실 것을 예언하면서 그분을 종으로 묘사하였습니다. 이사야 42:1에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고 하였습니다. 성령 받은 베드로는 예루살렘 성도들과 함께 기도 하면서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라고 하였습니다(행 4:27).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섬김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성만찬의 자리에서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요한복음 13:14에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고 하였습니다.

 

2) 모세는 하나님의 집 종으로 섬겼습니다.

히브리서 3:5-6에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본래 모세는 애굽 왕실에서 공주의 아들로 섬김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그것을 포기하고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능욕을 즐겨하면서 고난 받는 자기 백성들 속에 뛰어들었습니다(히 11:24-26). 그는 자기의 인생을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목이 곧은 백성들의 불순종 때문에 자신은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압 땅에 죽어 장사되었지만 무덤조차 남겨두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최고의 인물로 인정하셨고 세상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민 12:3).

 

3) 요셉은 형제들의 종으로 섬겼습니다.

요셉은 어릴 때 형들의 곡식단이 자기에게 절을 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또 하늘의 해와 달과 열한 별들이 제게 절을 하는 꿈도 꾸었습니다. 그 꿈 때문에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종으로 섬기던 요셉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때가 되어 그가 본 환상대로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훗날 애굽에 내려간 그의 형제들이 요셉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지난날의 죄를 자복하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때 요셉은 형들에게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리이까.”라고 하며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습니다(창 50:18-21). 예수님처럼 높은 지위와 존귀한 신분을 가지고도 낮은 자리에서 섬김의 삶을 실천한 것입니다.

 

3. 섬김에 따르는 행복

섬김을 받기 원하는 사람과 섬기기를 원하는 사람이 가지는 행복의 기준은 현격하게 다릅니다. 행복의 기준을 섬김을 받는데 두는 사람은 절대로 행복해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남을 섬기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는 사람은 언제나 행복한 사람입니다.

 

1)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자기를 본받아서 양무리를 섬기는데 모범이 되라고 가르쳤습니다(행 20:35). 시편 84:10에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것보다 남의 밑에서 섬기는 사람을 눈여겨보십니다. 행복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보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을 훨씬 더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른편 양과 왼편의 염소의 비유를 강론하시면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먹이고 입히고 돌봐 주며 섬긴 것을 하나님께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행복의 의미를 아는 사람입니다(마 25:33-37).

 

2)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는 일입니다.

나의 작은 수고와 섬김을 통하여 다른 사람이 혜택을 받고 기뻐하는 것을 볼 때 무한한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예수님의 삶을 실천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기쁨을 제공하는 사람입니다. 1950년 6.25 한국 전쟁 때, ‘크리스챤 다이제스트’의 종군 기자로 참여했던 밥 피얼스(Bob Pierce) 목사는 고 한경직 목사와 함께 ‘기독교 선명회’를 조직하고 거리에 넘쳐나는 전쟁고아들을 돌보아 주었습니다. 오늘날 ‘월드 비젼(World Vision)’으로 불리는 이 NGO 단체는 세계적으로 가장 공신력 있는 기구로서 100여 개 국에 4만여 명의 봉사자들을 보내 어려운 사람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지난 60년 동안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전 세계 어려운 사람들에게 유익을 준 이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한 기관입니다.

 

3) 큰 보람과 행복을 누립니다.

사도행전 20:35에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자기 속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간직하고 사는 사람은 주는 것과 베푸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입니다. 마치 부모가 자식에게,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주고 또 주어도 흐뭇한 마음을 간직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의 내용은 다른 사람에게서 받는 것보다 나를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축복을 선언하실 때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창 12:3).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을 만민에게 전달될 축복의 통로로 사용되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교회와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신령한 축복의 통로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