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설교

  • 일자
    2010-09-05
  • 설교
    손상률 목사
  • 성경
    시편 8:1~9

세상에는 좋은 것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입맛대로 좋은 것을 골라서 취하곤 합니다. 그러나 좋은 것에 대한 기준은 일정하지 않습니다. 대체로 여러 사람이 선호하거나 값이 비싼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와 반대인 경우도 있습니다. 겉으로 좋아 보여도 실상은 안 좋은 것이 있고 돈을 많이 주고도 나쁜 것을 사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에게는 좋아도 다른 사람에게는 안 좋은 것이 있고, 이곳에서는 좋아도 저곳에서는 나쁜 것이 있습니다. 여간 좋은 것이라도 시간이 지나고 환경이 달라지면 나쁜 것으로 바뀌어 버리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절대적인 기준에 따라 가장 좋은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시간이나 공간, 언어나 종족에 구별 없이 모든 시대,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좋은 것입니다.

참으로 좋은 것을 아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특권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입니다.

 

1. 하나님의 이름이 좋습니다.

시편 8:1에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 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라는 그 이름은 세상에 어떤 대상과도 비길 수 없이 존귀한 이름입니다(시 148:13). 그 이름은 하나님의 인격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1) 전능자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이라는 이름은 지고(至高) 지선(至善)을 뜻하는 것이며 이는 어떤 피조물에게도 적용될 수 없는 초월자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성경의 제일 첫머리에 하나님의 이름이 나옵니다. 창세기 1:1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이라는 히브리말 ‘엘로힘 (El-Elohim)’은 강하고 능력 있다는 뜻을 나타냅니다. 그의 권능이 말씀 한마디로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18:14에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고 하였습니다. 그의 능력은 천지와 삼라만상을 지으신 것으로 증명됩니다. 예레미야 32:17에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 없으시니이다.”고 하였습니다.

 

2) 영원 자존자의 이름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여호와(Jehovah-Yahweh)’로 불렀습니다. 이는 ‘스스로 계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출애굽기 3:14에 보면 호렙산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실 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어느 것도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없습니다. 나님만이 스스로 계시는 자존자로서 모든 존재의 근원자가 됩니다. 로마서 11:36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영원하신 분입니다. 계시록 1:8에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3) 주권자의 이름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이름에 주(Lord)라는 말을 붙여서 ‘주 하나님’ 또는 ‘주 여호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주’라고 표현할 때 이는 절대적인 권세자 또는 주권자를 의미합니다. 이 말이 신약적인 의미(Kurios)로는 유일한 대상자에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가령 신하가 임금에게, 또는 종이 상전에게, 그리고 현숙한 여인이 남편을 부를 때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그것의 공통적인 의미는 오직 하나 뿐이라는 뜻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을 그에게 비기겠느냐”고 하였습니다(사 40:18). 그는 또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사 40:26)

 

2. 하나님의 성품(屬性)이 아름답습니다.

성경 소요리문답 제4문답에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하여 “하나님은 신이신데 그의 존재하심과 지혜와 권능과 거룩하심과 공의와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이 무한하시며, 무궁하시며, 불변하시다”고 하였습니다.

 

1) 신실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이 인간에게도 주어져 있지만 그것이 하나님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불완전하지만 하나님은 무한하시고 영원하시고 변하지 않는 분이기 때문에 무엇이나 완벽하십니다. 본성이 참되시기 때문에 그의 하시는 일에는 조금도 거짓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영원불변하신 성품은 인간과 맺은 언약에서도 나타납니다. 사무엘상 15:29에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고 하였습니다. 신명기 7:9에 “그런즉 너희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라고 하였습니다.

2) 살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세밀하신 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중에 나는 새 한 마리나 들에 핀 꽃 한 포기까지도 하나님께서 다 헤아리신다고 하였습니다(마 6:26-29). 세상 가운데서 선택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보다도 더 세심하게 살피고 계십니다. 역대하 16:9에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7:9에는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고 하였습니다. 시편 33:15에는 그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뿐만 아니라 그들의 하는 행위까지 굽어 살피신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에서 속상하고 억울한 사연을 가지고 고민하다가도 하나님께서 살피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큰 위로와 힘을 얻게 됩니다(시 139:1-4).

 

3) 지키시는 분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라고 하였습니다(사 49:15-16). 부모가 어린 자식을 지키고 보호하려고 해도 한계가 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완벽하게 지켜주십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광야여행을 회고하면서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고 하였습니다(신 32:10). 풀무불 속의 세 소년을 지키시고(단 3:26), 사자굴 속의 다니엘을 지키시는 하나님께서(단 6:22) 오늘도 자기 백성이 고난당하는 현장을 빈틈없이 지키십니다.

 

3.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자식은 자기의 부모가 좋습니다. 가진 것이 없고 명예나 지위가 없어도 어머니 아버지이기 때문에 무조건 좋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라고 일러 주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부르며 기도를 드립니다.

 

1)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성경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지극한 사랑의 관계로 표현하였습니다(마 3:17). 사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은 인간적인 사랑 가운데서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부모는 병들고 죽어가는 자식이 있을 때 그냥 두고보지 못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죄로 인하여 멸망 받은 그의 자녀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모든 지혜와 능력을 경주하였습니다.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요 3:16).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희생시키시고 우리를 살려 주셨습니다. 이것을 최대의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요일 4:10). 사도 바울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고 하였습니다(롬 8:32). 그 위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모든 승리적 삶의 원동력이 된다고 하였습니다(롬 8:37).

 

2)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연약함을 측은히 여기며 그의 아픔을 대신 맡아 주려고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범죄한 인간을 징벌하시면서도 그들이 겪는 죽음의 고통에 대하여 측은히 여기셨습니다. 이사야 1:5-6에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고 하였습니다. 마치 탕자의 아버지가 아들이 겪을 고통을 측은히 여기면서 기다린 것이나 그가 돌아올 때 달려가서 목을 안고 입을 맞추는 것처럼 동정하며 긍휼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아버지는 자식에게 매질을 하면서도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히 12:5-6).

 

3) 축복하여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들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였습니다(마 7:11). 아버지는 아들에게 좋은 것으로 상속해 주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양자의 영을 부여하시고 하나님을 향하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였습니다(롬 8:15). 로마서 8:17에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늘에 영원한 집을 예비해 주셨습니다(고후 5:1). 하늘의 영원한 기업을 약속하였습니다(엡 1:18). 해와 달과 별과 같은 영광을 약속하였습니다(고전 15:40-41). 하늘에서 뿐만 아니라 지상에서도 오고 오는 후손들에게 번영과 축복을 약속하였습니다(시 14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