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은 인격의 중심이 됩니다.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 모두 마음의 상태에 따라서 나타나게 됩니다. 기독교의 복음이 사람의 마음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마 5:3). 마음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사람은 그의 삶이 아름답게 이루어집니다. 반대로 어둡고 추한 마음의 소유자는 아무래도 건전한 삶을 영위할 수 없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마음의 표본은 예수님입니다. 성경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빌 2:5). 예수님의 마음은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입니다(마 11:29). 마음에 은혜를 받게 되면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 9절에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함이 아름답다고 하였습니다.
1. 마음의 상태
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에는 사람의 마음을 길 가, 돌밭, 가시밭, 좋은 밭 등 네 가지로 분류하였습니다. 사람들의 얼굴이나 성격이 다른 것만큼 마음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1) 본래의 마음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는 하나님의 형상 곧 하나님의 마음을 부여하셨습니다(창 1:26-27). 그러나 죄가 들어오면서부터 그 마음은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죄를 모르는 갓난아이라 하더라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점차 죄에 오염되고 자기 속에서 발동하는 정욕에 지배를 당하고 맙니다. 예레미야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마음이라.”고 하였습니다(렘 17:9). 마가복음 7:21에 보면 사람의 마음속에는 악한 생각과 음란과 탐심과 속임과 질투와 교만과 같은 온갖 더러운 것이 가득 차 있다고 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속에 있는 이런 것들을 감추어 놓고 겉으로 아름답게 보이도록 꾸미고 있습니다. 마치 회칠한 무덤같이 겉으로 화려하지만 속에는 썩은 시체의 냄새를 풍기고 있습니다(마 23:27).
2) 거듭난 마음
본래의 사람, 곧 자연인 상태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다시 태어나는 경우를 가리켜 중생(重生)이라고 합니다(요 3:6-7).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거듭난 사람입니다. 고린도후서 5:17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음을 받은 사람은 외형적인 변화가 아니라 내적인 변화를 받은 사람입니다. 곧 예수님의 마음으로 바뀌어진 것을 뜻합니다. 세상적인 쾌락이나 육체의 정욕을 즐겼지만 이후부터는 오직 예수님으로 만족하며 행복해 하는 것입니다(빌 3:8). 갈라디아서 2:20에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3) 불완전한 마음
사람의 마음은 가변적이어서 여간 의지가 굳고 결심이 확실해도 상황에 따라서 흔들리곤 합니다. 솔로몬은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하였습니다(잠 4:23).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요, 직접 따라 다니며 보고, 듣고, 배우고 또 주님 앞에서 신앙 고백과 결의를 다짐했던 사람이지만 수없이 그 마음에 동요가 일어났습니다. 마음의 소망과 열정은 있어도 육신의 연약함 때문이었습니다(마 26:41). 거기에다 집요하게 흔드는 마귀의 시험이 있었습니다(눅 22:32). 그는 훗날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하였습니다(벧전 5:8).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마음을 건강하게 가꾸어야 되는 이유입니다.
2. 마음의 특성
성경에는 보이는 사람과 보이지 않는 사람을 두고 겉사람과 속사람이라는 표현을 하였습니다(고후 4:16). 속사람인 마음의 욕구는 겉사람인 육신의 욕구와 차원이 다릅니다. 곧 육신의 욕구는 음식으로 충족될 수 있어도 마음의 욕구는 그것으로 채워질 수가 없습니다.
1) 영원을 사모합니다.
전도서 3:11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에 불과한 인생이지만(약 4:14) 그래도 그 마음속에는 영원을 사모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본래 인간은 영원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입니다(창 1:26-27). 하늘의 시민권을 소지한 사람들은 땅위에 있는 장막이 무너지면 영원한 하늘의 집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살아갑니다(고후 5:1). 옛날을 살고 간 족장들과 모든 믿음의 선진들은 이 소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히브리서 11:15-16에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 2:2에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갓난아기는 엄마의 젖을 사모합니다. 건강한 엄마로부터 순전한 젖을 받아먹으며 무럭무럭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합니다. 본문 말씀 9절에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음식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영혼의 양식인 은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윗은 말씀의 맛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순금보다 더 사모하며 꿀과 송이 꿀보다 더 달다고 하였습니다(시 19:10).
3) 신령한 복을 사모합니다.
육신의 욕구는 세상적인 복으로 만족됩니다. 그것은 물질이나 명예나 권력이나 쾌락 같은 것들입니다. 그렇지만 영혼의 욕구는 그런 것으로 충족되지 않습니다. 영혼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것은 신령한 것이라야 됩니다. 이 복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있는 어떤 것에도 비중을 두지 않습니다(요일 2:16-17). 예수님께서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신 것은 거기에 해당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자는 천국의 가치를 아는 자입니다(마 5:3). 야곱은 신령한 복의 가치를 알고 그것을 붙잡으려고 애를 썼지만 에서는 그것을 한 그릇 음식보다 못하게 생각했다가 받은 복도 잃고 말았습니다(히 12:16-17). 신령한 복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세상에 있는 모든 좋은 것을 다 잃고도 하나님의 것으로 행복해 하는 자입니다(합 3:16-17).
3. 마음을 튼튼히 하려면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육체의 건강보다 마음의 건강이 우선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본문 말씀에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다고 하였습니다. 마음의 상태와 그 특성을 아는 사람은 마음을 튼튼하고 아름답게 가꾸는 삶을 살게 됩니다.
1) 은혜의 실체를 알아야 됩니다.
‘은혜(χαρισ)’라는 말의 뜻은 호의, 총애, 선물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 말이 성경적으로 쓰일 때는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값없이, 조건 없이 거저 베풀어 주는 은총을 뜻합니다. 에베소서 2:8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은혜의 출처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엡 1:2).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그중에도 가장 귀하고 값진 선물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요 3:16). 은혜의 실체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고 하였습니다(요 17:3).
2)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야 됩니다.
모든 생명체는 먹이가 있는 곳으로 모여 듭니다. 마음을 아름답게 가꾸는 사람도 영혼의 양식인 은혜의 장소를 향하여 모여오게 되어있습니다. 히브리서 4:16에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은혜의 보좌’는 예수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는 것처럼 은혜의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은 예수님께로 나아오게 됩니다. 벳세다 광야에 모인 사람들이 오병이어의 이적으로 육신의 배를 채운 다음 모두 다 물러갔지만 영혼의 양식을 추구하는 사람은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라고 하면서 주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갔습니다(요 6:68).
3) 은혜를 선용해야 됩니다.
적어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은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은혜의 맛을 알고 심령이 윤택하게 되는 체험을 하고도 받은 은혜를 허비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히브리서 6:4-5에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6:1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은혜에는 가속력이 붙습니다. 요한복음 1:16에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고 하였습니다. 은혜를 받은 대로 경건 생활에 힘쓰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열심을 다하여 봉사하는 사람은 그 은혜가 더욱 충만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은혜의 신비를 아는 사람은 더 풍성하게 받아서 넉넉하게 되는 것입니다(마 1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