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떡을 먹어 본 사람이 인생의 의미를 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눈앞이 캄캄하고 앞뒤가 꽉꽉 막힌 절망적인 상황에서 소망의 틈새를 보고 인내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구약시대 유대 왕국의 종말을 내다보며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던 예레미야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희망적인 삶을 실천하였습니다. 시드기야 왕 10년 되던 해, 왕국의 수도 예루살렘이 바벨론 군대에 포위되었고 예레미야는 왕궁의 시위대 뜰에 갇혀있었습니다. 그는 감옥에 있으면서 숙부 살룸의 아들 하나멜의 밭을 샀습니다. 얼마 못되어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면 백성이 포로로 잡혀가거나 뿔뿔이 흩어질 것이 뻔한데도 돈을 주고 밭을 샀습니다. 그는 참담한 현실 속에서도 밝은 내일의 희망을 산 것입니다.
1. 계시의존(啓示依存)의 삶입니다.
예레미야는 유대나라 16대 요시야왕 13년부터 20대 시드기야왕 11년(BC628-586)까지 42년 동안 선지자로 활동하였습니다. 그동안 왕과 백성의 종교적 성향을 체크하면서 하나님께 받은 계시의 내용을 전달하였습니다. 그는 오직 계시에 의존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1) 부르심(召命)에 순종하였습니다.
‘계시’라는 말(αποκαλυφιs)의 원어적 의미는 ‘베일을 벗기다’(除幕)는 뜻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 보이시는 방법을 일컫는 말입니다. 계시 사역은 인간의 목적이나 요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의 목적을 위하여 나타내시는 주권 행위입니다. 인간은 수동적으로 거기에 얽매여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한번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거기에 붙들려 살게 됩니다. 모세의 경우 호렙산 불꽃 가운데 나타난 환상을 통하여 부르심을 받았고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거기 얽매여서 일생을 살았습니다(출 3:9-10). 예레미야도 부르심의 계시에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고 하였습니다(렘 1:4-5).
2) 전적으로 신뢰하며 수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시고 선지자로 세우실 때 그에게 확실한 계시의 싸인을 주십니다. 예레미야도 하나님으로부터 확실한 싸인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살구나무 가지와 끓는 가마의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렘 1:11-13). 하나님께서는 그가 받은 계시를 통하여 여러 나라 여러 왕국들 앞에 파괴하기도하고 건설 하기도하며 뽑기도 하고 심기도 하는 역할을 하게 하였습니다(렘 1:10). 예레미야는 자기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하였습니다(렘 36:2). 그는 하나님의 분부대로 바룩을 시켜서 모든 말씀을 두루마리 책에 수록하였습니다. 그것을 여호야김 왕이 칼로 베어서 불에 태웠으나 또 다시 다른 두루마리에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였습니다(렘 36:20-32).
3) 받은 사명에 진력하는 것입니다.
계시에 의존하는 사람은 받은 사명에 충성합니다. 예레미야는 그가 받은 계시를 가지고 왕과 백성들에게 증거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을 때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고 하신 분부를 따라야만 했습니다. 그는 지금 바벨론의 군대가 예루살렘 성을 에워싸고 있는 가운데 얼마 못가서 성이 함락되고 성전이 불탈 것을 내다보았습니다. 그는 시드기야 왕에게 자기가 받은 계시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렘 32:1-5). 그 말씀은 유대 나라가 하나님께 징벌을 받아서 멸망하게 될 것이고 왕과 백성은 바벨론에 끌려가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시드기야 왕은 분노하여 예레미야를 왕궁 시위대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2. 자기 부정의 삶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의 의지와 욕망에 따라서 행동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의 의지나 욕망을 하나님의 뜻에 굴복시키는 자입니다. 감옥에 있는 예레미야가 하나멜의 밭을 산 것은 전혀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는 행동입니다.
1)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그를 선지자로 부르셨을 때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고 하며 반발하였습니다(렘 1:6).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렘 1:7). 이후부터 그의 일생은 하나님께 얽매인 자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야만 했습니다. 옥중에 있는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보라 네 숙부 살룸의 아들 하나멜이 네게 와서 말하기를 너는 아나돗에 있는 내 밭을 사라 이 기업을 무를 권리가 네게 있느니라 하리라.”고 하였습니다(7절). 예레미야는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동에 옮겼습니다.
2) 사람을 상대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룸의 아들 하나멜이 예레미야를 찾아와서 “베냐민 땅 아나돗에 있는 나의 밭을 사라.”고 제의를 했습니다. 그는 또 “기업의 상속권이 네게 있고 무를 권리가 네게 있으니 너를 위하여 사라.”고 하였습니다(8절). 하나멜은 자기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마치 예레미야를 생각해 주는 것처럼 말을 하였습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형제가 가난하여 기업 중 얼마를 팔게 되면 가까운 친족에게 우선적으로 취득할 권리를 부여하고 있습니다(레 25:25). 그렇지만 하나멜은 지금 자기에게 필요가 없는 밭을 예레미야에게 떠넘기려는 목적으로 접근하였습니다. 예레미야의 입장에서는 그의 소행이 참으로 아니꼽고 괘씸하게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래도 자기의 감정을 억제하고 아무렇지 않게 수용하였습니다.
3) 자신과의 관계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마 16:24).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 될 기본적 소양을 의미합니다. 자기의 주관이나 자존심 같은 것은 접어두고 오직 주님의 요구에 따라서 행동하는 사람은 먼저 치열하게 자기와의 싸움을 싸우는 자입니다(롬 8:5-8). 하나님의 뜻을 전하다가 감옥생활을 하고 있는 예레미야도 자기를 다스리기가 힘이 들었을 것입니다. 적당하게 타협을 하거나 요령껏 처신하면 편한 길을 갈 수 있음에도 굳이 그 길을 마다하고 고생의 길을 자원하였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 받은 사명과 주 예수께 보답하는 삶을 실천하므로 거기서 얻게 되는 보람과 행복을 즐기게 되는 것입니다.
3. 미래지향적 삶입니다.
나라가 망할 줄 알고 미리 밭을 팔아서 돈을 챙긴 하나멜은 시세에 밝은 현실주의자입니다. 한편 모든 사람이 땅을 팔고 나갈 때 돈을 주고 밭을 사는 예레미야는 내일을 준비하는 미래지향적인 사람입니다.
1) 멀리 내다보는 사람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멀리 보지 못하고 눈앞에 있는 것에 매달리는 사람을 맹인이라고 하였습니다(벧후 1:9). 눈앞에서 전개되는 체질 세계의 현상만 보고 신령한 세계를 보지 못하는 사람을 영적인 맹인 이라고 합니다(마 23:26). 하나멜처럼 당장에 별 볼일 없을 것 같이 생각하고 밭을 팔아치우는 사람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예레미야처럼 다른 사람의 눈에 무용지물(無用之物)로 버림 받는 밭을 돈을 주고 사는 사람은 영적인 세계를 보는 사람입니다. 그는 은 십칠 세겔을 달아주고 매매증서를 쓰되 증인을 세우고 변개하지 못하도록 봉인하여 보관하였습니다(9-12절). 당장은 바벨론의 침공이 현실화 되고 예루살렘의 함락이 초읽기에 들어갔지만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그곳으로 돌아오게 될 날을 내다본 것입니다.
2) 하나님의 경륜을 믿는 사람입니다.
선지자는 나라의 흥망성쇠가 다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일찍이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을 통하여 각 나라들을 건설하기도 하고 파멸하기도 하며 심기도 하고 뽑기도 한다고 하였습니다(렘 1:10). 유대나라의 역대 왕들과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고 범죄하였으므로 그들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겨 멸망하게 하였습니다(렘32:28-35). 그러나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일정한 기간 고난을 거쳐서 회개하고 돌아오게 될 날까지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예레미야 32:37에 “내가 노여움과 분함과 큰 분노로 그들을 쫓아 보내었던 모든 지방에서 그들을 모아들여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여 안전히 살게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3)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전후좌우 사방이 꽉 막힌 벽 속에 갇혀 있어도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역사의 주인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함락이 초읽기에 들어갔고 백성들은 하나같이 살기 위해서 도망 갈 궁리에 몰두하는데 감옥에 갇힌 예레미야는 더더욱 답답한 지경이었겠지만 그래도 내일을 위해서 밭을 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인생의 주인인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은 세상이 끝난 것으로 단정하고 삶의 기반인 밭을 팔아 치웁니다. 이런 사람을 사막의 떨기나무 같은 자요, 저주를 받은 자라고 하였습니다(렘 17:5-6). 그러나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은 물가에 심어진 나무처럼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다고 하였습니다(렘 17:7-8). 하나님이 뒷받침을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