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설교

장년
예람지기 2010.03.07 00:00:00
1119
  • 일자
    2010-03-07
  • 설교
    손상률 목사
  • 성경
    민수기 6:22~26
하나님은 영(靈)이시기 때문에 인간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요 2:24).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람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보게 되면 죽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삿 13:22).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가진 사람을 하나님과 대면하는 사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천하만민 가운데서 구별된 제사장 나라라고 하였습니다(출 19:6). 이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바쳐진 자의 삶을 사는 사람을 ‘나실인’이라고도 합니다(민 6:1-21). 하나님께 구별된 사람들은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하는 축복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누구도 볼 수 없는 하나님의 얼굴이 그들에게로 향하는 특권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1. 은혜를 베푸시는 얼굴입니다.
25절에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주님 얼굴빛의 광채를 축복으로 여겼습니다. 다윗은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하고 기도하였습니다(시 4:6).
 
1) 조명하는 빛입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빛의 근원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1서 1:5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자연계나 인간 세계에 나타나는 모든 빛의 근원자입니다(창 1:3). 빛은 의와 진리와 생명을 상징합니다(요 1:4). 한편 어둠은 죄와 마귀와 죽음을 상징합니다(엡 6:12). 성경은 예수님이 없는 세상을 마귀가 지배하는 어둠의 권세라고 하였습니다(눅 22:53). 범죄한 인간이 사는 세상에는 어디에나 어둠의 세력이 지배하지만 그래도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의의 빛, 진리의 빛으로 조명을 받게 됩니다. 이사야 9:2에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고 하였습니다.
 
2) 치료하는 빛입니다.
말라기 4:2에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고 하였습니다. 의(義)의 태양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천지와 만물을 지으실 때 가장 먼저 ‘빛이 있으라’ 하시고 빛을 지으신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입니다. 창조 당시에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상태였는데 거기에 하나님께서 빛을 보내셨습니다. 그 빛은 모든 존재의 근원이 되는 생명의 빛이 되었습니다(요 1:4). 의학계에서 엑스 레이(X-Rey)나 레이져(laser) 광선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얼굴빛이 죽음 아래 있는 영혼을 치료하여 구원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시 80:19).
 
3) 인도하는 빛입니다. 
모세와 함께 애굽에서 올라온 이스라엘 백성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광야길을 여행하면서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출애굽기 13:21-22에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빛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시편 119:105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밤중 같은 세상을 살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말씀의 등불을 비춰 주시고 성령의 감동에 의하여 승리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니다(요 14:6).
 
2. 평강을 주시는 얼굴입니다.
26절에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이 향하는 곳에 은혜가 있고 그 은혜의 결과로 평강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엡 1:2).
 
1) 평강의 근원지는 예수님입니다.
마귀가 지배하는 곳에는 평강이 없습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기 이전에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대하며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죄가 들어온 다음부터 평강을 잃었습니다. 창세기 3:8에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속에 죄가 들어오면 하나님의 낯을 피하게 되고 그 결과 두려움과 불안이 지배하게 됩니다. 여기에 예수께서 평강의 왕으로 찾아오셨습니다(사 9:6).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요 14:27).
2) 얼굴을 마주 대할 때 평강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육체를 가진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요 4:24). 그러나 신령한 눈이 열린 사람은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마 5:8). 다윗은 주의 얼굴빛이 비춰지는 곳에 참된 기쁨과 평강이 있다고 노래하였습니다. 시편 4:6-7에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고 하였습니다. 요나처럼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려고 하는 사람은 불행하게 됩니다(욘 1:3). 시편 73:27에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고 하였습니다. 또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고 하였습니다(28절).
 
3) 하나님과 교통하므로 평강이 있습니다.
얼굴을 마주 대한다는 것은 서로 눈을 맞추며 마음이 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하며 마음을 같이 하는 사람입니다. 옛날 모세는 이스라엘을 이끌고 광야길을 여행하는 동안 하나님과 대면하면서 그의 뜻을 받아 백성에게 전달하였습니다. 출애굽기 33:11에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라고 하였습니다. 신명기 34:10에도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라고 하였습니다. 얼굴을 마주 대한다는 것은 육체적으로 마주하는 것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교통하는 것을 뜻합니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관계라 하더라도 얼굴만 대하고 마음이 통하지 않으면 평안이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빌 2:5).
 
3. 보호하시는 얼굴입니다.
24절에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라고 하였습니다.
 
1) 지극한 애정의 표현입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민족을 세상 가운데서 구별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 것은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각별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신 7:8).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 대한 애정을 표현 
하실 때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으로 비유하였습니다(말 3:17). 그러나 부모의 사랑은 한계가 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이사야 49:15-16에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 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세상에서 때때로 시험을 당하거나 마음속에 회의가 밀려들다가도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의 사랑의 체온을 의식할 때 새 힘을 얻게 됩니다.
 
2) 하나님의 적극적인 손길을 의미합니다.
시편 121:5-6에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고 하였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얼굴이 마주하는 곳에 어떤 어두운 세력도 해칠 수가 없습니다. 밤과 낮의 구별 없이 항상 자기의 얼굴 앞에 두시고 지키며 보호하신다는 뜻입니다. 신명기 32:10에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41:10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이 너를 붙들리라”고 하였습니다.
 
3) 임마누엘의 축복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예측 못하는 시련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 담대함과 용기를 가지게 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눈앞이 캄캄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이르렀을 때 저를 향하신 하나님의 얼굴을 의식하게 됩니다. 야곱이 얍복강에서 가족들을 먼저 보내놓고 자기만 혼자 남았을 때 하나님과 마주서게 되었습니다. 그는 환도뼈가 부러지는 처절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붙들고 늘어져 결국 이스라엘이라는 승리자의 칭호를 받았습니다. 그 때 야곱은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고 하며 그곳 이름을 ‘브니엘(하나님의 얼굴)’이라고 불렀습니다(창 32:30). 그는 평생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므로 승리자의 삶을 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