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설교

장년
예람지기 2010.02.28 00:00:00
892
  • 일자
    2010-02-28
  • 설교
    손상률 목사
  • 성경
    열왕기상 18:1~6
하나님의 나라는 드러나는 큰 인물보다 숨겨져 있는 작은 한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게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엘리야는 구약시대의 많은 선지자들 가운데 단연 으뜸 되는 인물입니다. 그는 폭군 아합 왕과 간악한 이세벨에 맞서 이스라엘에 만연한 바알신의 잔재를 척결하고 종교개혁을 단행한 승리의 용장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땅에는 이세벨의 칼날 아래 하나님의 선지자가 모조리 목잘림을 당했습니다. 이때 왕궁에서 아합 왕의 신하로 하나님을 섬기는 오바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못지않게 오바댜의 신앙과 헌신을 귀하게 보셨습니다. 그는 소리 없이 봉사하는 성도의 모범이 되는 인물입니다.
 
1. 왕궁 맡은 자입니다.
3절에 “아합이 왕궁 맡은 자 오바댜를 불렀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왕궁 맡은 자’를 개역 성경에는 궁내대신(宮內大臣)이라고 하였습니다. 왕의 측근에서 권력을 누리는 실력자입니다.
 
1) 어려운 시대를 살았습니다.
2절에 “엘리야가 아합에게 보이려고 가니 그때에 사마리아에 기근이 심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사마리아에 기근이 심하게 된 것은 3년 동안 하늘에서 비와 이슬이 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극심한 한발(旱魃)로 인하여 농사가 안된 것은 물론이고 시내가 말라서 마실 물을 구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양식과 물이 없어지면 사람들은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극도로 인심이 사나워집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이 겪게 된 기근은 그들이 저지른 범죄에 따라 하나님이 내리신 징벌이었습니다(왕상 17:1). 선지자 아모스는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요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하였습니다(암 8:11).
 
2) 어려운 상황에 처했습니다.
온 나라가 극심한 가뭄과 기근으로 인하여 백성이 굶주리는 상황인데다 아합 왕과 이세벨이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려고 날뛰는 때였습니다. 아합 왕은 이스라엘 역대 왕들 가운데 가장 악한 왕으로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상징적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맞이하였고 시돈의 신 바알의 신전을 이스라엘 곳곳에 세웠습니다(왕상 16:30-33). 이 시기에 이스라엘에는 이세벨의 상에서 밥을 먹는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가 850명이나 되었습니다(왕상 18:19). 어느 때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신론적 권력이 지배하게 되면 하나님의 백성은 수난을 당하게 됩니다. 특히 오바댜처럼 국가 기관에 몸을 담고 그 권력을 도와야 되는 공직자일 경우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3) 자기의 소임에 충실하였습니다.
성도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때때로 신앙과 현실이 상충될 때 행동하기가 힘이 듭니다. 오바댜의 경우 개인적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지만 그의 직책은 왕을 받드는 신하입니다. 그는 공직자로서 나라가 정하는 법에 따라 자기의 소임을 다해야 되고,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서 개인의 신앙 양심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모르는 바로왕의 신하였지만 왕을 받들어 총리의 직책을 성공적으로 잘 수행하였습니다(창 41:55-57). 또한 그 자신이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하며 자기의 신앙을 지켰습니다(창 42:18). 다니엘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과 페르시아의 다리오 왕을 섬겼지
만 총리로서 공직자의 소임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신앙적 도리를 다했습니다(단 4:19-27).
 
2.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입니다.
3절에 “이 오바댜는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12절에는 오바댜 스스로 “당신의 종은 어려서부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1) 하나님을 최고의 왕으로 섬긴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만왕의 왕’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계 19:16). 구약 시대 성도들은 하나님께 대하여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호칭하였습니다(사 6:5). 이는 세상의 어떤 임금보다 높으신 유일한 권세자를 뜻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은 세상 나라의 임금이나 황제를 유일한 권세자로 알아서 지존(至尊)이라고 부릅니다. 일본 사람들은 살아 있는 왕을 천황(天皇)이라고 호칭합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재판하는 빌라도에게 가이사 외에는 왕이 없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풀어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라는 말로 압력을 넣었습니다(요 19:12, 15). 그렇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만이 유일한 권세자로 믿기 때문에 세상나라 왕의 명령보다 하나님의 법을 따르게 됩니다(단 3:18, 6:10).
2)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섬긴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과 그 권위 앞에 두려워하고 부들부들 떠는 자세를 뜻합니다. 시편 2:11에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그의 영광을 우러러 보는 사람은 하나님의 존귀하심과 절대적인 주권 앞에 두려움을 가지게 됩니다. 오바댜는 평소 폭군 아합 왕을 섬기는 위치에 있었지만 그를 두려워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만이 두려워할 대상이기 때문에 다른 것에는 두려움을 가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고 하였습니다(마 10:28).
 
3) 주의 선지자들을 공궤하였습니다.
“당신의 종은 어려서부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고 말한 오바댜는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죽일 때에 내가 여호와의 선지자 중에 백 명을 오십 명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로 먹인 일이 내 주에게 들리지 아니하였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12-13절).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 행위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종들을 충성스럽게 섬기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 시기에 엘리야를 섬긴 사르밧 과부나(왕상 17:9-16) 훗날 엘리사를  정성스럽게 공궤했던 수넴 여인 같은 사람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왕하 4:8-16).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내보내시면서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마 10:40).
 
3.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자입니다.
엘리야가 활동하던 그 시기에 아합 왕과 그의 아내 이세벨은 이스라엘 전역에 있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모조리 죽였습니다(왕상 19:10). 이런 대환난의 시대에 오바댜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숨겨놓고 보호해 주었습니다.
 
1) 하나님의 목적에 부응하였습니다.
오바댜는 아합 왕의 궁내대신으로 당대 최고의 지위와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높은 지위나 권세를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선용하려 했습니다.
만일 그가 자기 한 사람의 안일을 꾀하며 밖에서 당하는 선지자들의 고난을 외면했다면 그 자리에 오르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일이 됩니다. 옛날 에스더는 아하수에로 왕의 왕후였지만 고난당하는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헌신하였습니다. 에스더의 오라비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편지하면서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고 하였습니다(에 4:14).
 
2) 의로운 고난의 가치를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고 하였습니다(마 5:10). 사도 베드로는 죄가 없으면서도 주님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게 되었을 때, 이는 참으로 아름답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벧전 2:19-20). 오바댜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간악한 이세벨의 박해로 죽어가는 현장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아합 왕의 신하인 그가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는 선지자들을 보호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목숨을 걸고 의로운 고난에 동참한 것입니다. 옛날 모세는 애굽 왕궁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영광을 마다하고 자기 백성이 당하는 고난의 현장에 뛰어들었습니다. 히브리서 11:26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하였습니다.
 
3)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공유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주장하시는 분입니다. 사람들은 아합 왕이나 이세벨 같이 권력의 힘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결국은 하나님께서 인간 나라를 경영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폭군 아합의 시대가 끝나는 날을 대비하여 인재를 키우도록 준비시켰습니다(왕상 19:15-16). 엘리야는 이세벨에 의해서 선지자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고 자기 혼자 남았다고 푸념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자 7천명을 남겨 두었다고 하였습니다(왕상 19:18). 오바댜도 이와 같은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한 사람입니다. 그 무서운 이세벨의 칼날 아래서도 하나님의 선지자 백 명에게 떡과 물을 먹이며 돌봐 주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새 시대를 바라보는 비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