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설교

장년
예람지기 2009.10.25 00:00:00
961
  • 일자
    2009-10-25
  • 설교
    손상률 목사
  • 성경
    열왕기상 22:10~28

이스라엘의 아합왕이 사마리아 광장에 선지자 400명을 불러모았습니다. 그는 여호사밧과 함께 길르앗 라못 전쟁터로 나가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였습니다. 거기 모인 선지자들은 하나같이 이번 전쟁에서 승리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오직 한 사람 미가야만 반대의견을 내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왕을 전쟁터에서 죽게 하려고 선지자들이 거짓말을 하게 했다고 폭로하였습니다. 이에 왕은 미가야를 감옥에 가두고 자기가 승리하여 돌아올 때까지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을 먹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은 결국 참과 거짓을 구분 짓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 것"만을 지향하는 사람이 받게 되는 분깃이기도 합니다.



1. 고생의 떡을 피하는 사람


사마리아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고생의 떡과 물과는 상관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하나님과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이며 일부러 고생의 떡을 피하는 사람들입니다.


1) 듣기 좋은 말을 원하는 사람

아합왕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는 여호사밧이 선지자를 불러서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자고 했을 때 평소 자기에게 듣기 좋은 말로 아부하는 사람들만 불러 모았습니다. 여호사밧이 그들 외에 다른 선지자가 없느냐고 했을 때 아합은 "아직도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한 사람이 있으니 그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물을 수 있으나 그는 내게 대하여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그를 미워하나이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아합왕의 자세는 오늘날 타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성경은 말세에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싫어하며 귀가 가려져 자기 사욕을 따라 스승을 둔다고 하였습니다(딤후 4:3). 거듭난 영혼은 하나님 말씀의 예리한 칼날 앞에서 영혼이 수술을 받고 새롭게 되기를 원하게 됩니다(히 4:12).


2) 듣기 좋은 말을 전하는 사람

아합왕에게 듣기 좋은 말만 전하여 왕의 환심을 사려는 400명의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자들을 가리켜 “양의 옷을 입었으나 속에는 노략질 하는 이리라”고 하였습니다(마 7:15). 사마리아 광장에서 아합왕의 귀를 즐겁게 하려고 애쓰는 선지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뜻을 빙자하여 거짓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미가야의 폭로처럼 하늘에서 거짓말 하는 영들이 그 선지자들의 입에 들어가 달콤한 말로 아합왕을 꾀었기 때문입니다(22절). 그중에도 시드기야라는 사람은 철로 뿔을 만들어 그것을 가지고 왕이 아람 사람을 무찌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11절). 고린도후서 11:14-15에 보면 사탄도 자기를 광명한 천사처럼 가장하고, 사탄의 일을 하는 자들도 의의 일꾼처럼 행동한다고 하였습니다.


3) 대세에 따라서 행동하는 사람

미가야를 부르러 간 사신입니다. 13절에 보면 "미가야를 부르러 간 사신이 일러 이르되 선지자들의 말이 하나같이 왕에게 길하게 하니 청하건대 당신의 말도 그들 중 한 사람의 말처럼 길하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신은 권력의 측근에 있으면서 사람들의 마음과 시세를 읽을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는 미가야보다 앞서 온 400명의 거짓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왕의 마음은 이미 결정된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미가야가 왕에게 거슬리는 말을 하지 말도록 종용하였습니다. 사리의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대세에 따라서 행동하고 제게 유익한 대로 말하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하시느니라"하고 소수의 손을 들어 줍니다(눅 12:32).



2.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


시편 1:1에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 것"만을 주장하는 미가야와 같은 경우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1)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사람입니다.

선지자를 선견자(先見者)라고 하였습니다(삼상 9:9). 선견자란 '먼저 보는 자'라는 뜻인데 이는 신령한 눈을 가지고 하나님의 세계를 보는 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로부터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받게 되면 마음의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의 세계를 보고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는 신비로운 뜻을 알게 된다고 하였습니다(엡 1:17-19). 그렇지만 여기 아합왕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애쓰는 400명의 선지자들은 하나같이 하나님께로 향한 계시의 영은 막혀있고, 오직 사탄의 소리에 따라서 움직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미가야는 마음의 눈으로 하나님 나라의 신비로운 현장을 목격하였습니다(19절). 마태복음 5:8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하였습니다.


2) 자기의 소임에 충실하는 사람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께 받은 계시와 그 말씀에 목숨을 거는 자입니다. 에스겔 33:1-9에 보면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파수꾼으로 세우시고 백성에게 죄와 심판을 경고하게 하였습니다. 선지자의 경고를 듣고도 돌이키지 아니했을 때 선지자는 책임이 없지만, 선지자가 경고의 나팔을 불지 아니했을 경우 그들의 피값을 선지자에게서 찾는다고 하였습니다. 선지자가 하나님께 분부 받은 말씀을 그대로 전하다가 박해를 받고 죽음을 당하는 경우는 허다합니다(대하 24:20-22). 미가야는 자기도 다른 선지자들처럼 왕의 귀에 듣기 좋은 말로 예언하라고 하는 사신의 말을 듣고도 이를 거부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고 하는 미가야는 선지자의 책임과 본분을 지킨 사람입니다(13-14절).


3) 결과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미가야는 그가 계시를 통하여 보고 들은 내용을 숨김없이 아합왕에게 전했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아합왕은 미가야를 감옥에 가두고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을 먹이게 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미가야는 한마디도 억울하다거나 구차하게 살기위하여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담담하게 고난의 떡과 잔을 받았습니다. 결국 자기의 소임을 다한 후에는 어떤 불이익이 와도 개의치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옛날 바벨론에 인질로 잡혀 갔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도 느부갓네살왕의 우상 앞에 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풀무불에 들어갔습니다. 그들이 불에 들어가도 하나님께서 살려 주실 것이라고 했으나 만약 살려 주지 아니하셔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단 3:18).



3. 주권자 하나님의 사역


진인사(盡人事) 대천명(待天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곧 사람이 자기의 일에 최선을 다한 후 하나님의 결정을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미가야가 감옥에서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을 먹고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고 행동을 개시하였습니다.


1) 아합왕이 전사하였습니다.

그토록 기고만장 하던 폭군 아합은 그 전쟁터에서 종말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여호사밧과 연합된 막강한 군사력이 있었고, 또 400명의 거짓 선지자들로부터 하나님께서 그 전쟁의 승리를 약속하셨다는 언질도 받았지만 그런 것은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아합왕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여호사밧왕과 옷을 바꿔입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으로 변장하여 적의 표적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치밀함을 발휘한 것입니다(30절). 그렇지만 이미 하나님께서 그 전쟁을 통하여 아합을 죽이기로 작정한 이상 그 어떤 수단으로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아람 병사 한 사람이 무심코 쏜 화살에 맞아 부상을 당했고 그런 상태로 적을 막다가 해질 무렵에 죽고 말았습니다(34-35절).


2) 선지자의 거짓 예언이 밝혀졌습니다.

평소 아합왕의 귀를 즐겁게 하여 환심을 샀던 선지자들이 그날도 똑같은 말로 왕을 기쁘게 해 주었습니다. 왕은 그들의 거짓 예언에 들뜬 마음으로 전쟁에 나갔다가 죽어 시체로 돌아왔습니다. 곧 선지자들의 거짓 예언을 백일하에 다 드러낸 것입니다. 미가야가 거짓말하는 영이 선지자들의 입에 들어가 왕에게 거짓 예언을 한다고 폭로했을 때 시드기야는 미가야의 뺨을 때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때 미가야는 뺨을 맞으면서 "네가 골방에 들어가서 숨는 그날에 보리라"고 하였습니다(24-25절). 미가야의 말은 그대로 적중하였습니다. 교법사 가말리엘이 사람에게서 난 것은 저절로 무너지게 되고 하나님께로 말미암는 것은 어느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다고 한 말은 만고의 진리입니다(행 5:38-39).


3) 말씀의 승리를 보여 주었습니다.

아합왕이 미가야를 감옥에 가두고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을 먹이라고 했을 때 미가야는 "왕이 참으로 평안히 돌아오시게 될진대 여호와께서 나를 통하여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이다"고 하였습니다(28절). 미가야는 자기에게 계시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비록 대세에 밀려 외롭게 감옥에 들어가고 거기서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을 먹게 되지만 말씀의 진리가 승리할 것을 믿었기 때문에 많은 백성에게 이를 증거하였습니다(29절). 어느 때나 진리에 대한 개념이 확실하지 못한 사람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시세에 영합하는 행동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제일주의의 신앙으로 사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진리편에 서는 자입니다. 그런 사람이 말씀과 함께 승리의 간증자가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