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는 기독교의 표상이며 자랑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이유 외에도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다 십자가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마 16:24). 본문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은 예수를 자랑하는 것이고 기독교를 증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자랑이요, 기독교 복음의 핵심인 십자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십자가의 의미
십자가의 이미지는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의 느낌을 가지게 합니다.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며 십자가의 양면성을 나타내었습니다(고전 1:18).
1) 저주와 형벌을 상징합니다.
본래의 십자가는 죄수에게 형벌을 주는 사형도구였습니다. 로마 시대에는 여러 가지 사형 도구가 있었으나 가장 극악한 죄수를 십자가형에 처했습니다. 통나무로 만든 십자가 형틀에 사형수를 올려놓고 양손과 양발에 못을 박은 채 매달아서 피와 진액이 흘러내려 고통 중에 죽어가게 하는 잔인한 형틀입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나무로 된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을 경우 시체를 밤새도록 두지 말라고 하고 하였습니다.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받은 자이기 때문에 저주받은 자의 피로 땅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신 21:23).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도 그 양편에 두 사람의 강도가 처형당했습니다. 성경에는 이들을 “행악자”라고 하였습니다(눅 23:39).
2) 무거운 짐이나 멍에를 상징합니다.
옛날 이삭은 아들 에서에게 유언을 하면서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고 했습니다(창 27:40). 이 말은 죽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짐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 할 수 있거든 이 잔을 면하게 해 달라고 하셨으나 결국 아버지의 뜻대로 그 십자가를 지셨습니다(마 26:39).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지고가야 할 짐을 가지고 있습니다. 평생 동안 벗고 싶어도 벗을 수없는 멍에가 있습니다. 신체적인 장애가 있거나 가족 가운데 고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 또는 애물단지 같은 자식을 두고 마음에 고통을 겪는 경우 흔히 십자가라고 말합니다.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지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숙명적인 과제를 의미합니다.
3) 사랑과 평화를 상징합니다.
본래는 혐오와 공포의 대상이었던 십자가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사랑과 평화의 상징으로 바뀌었습니다. 총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도 십자가 깃발이 있는 곳이면 서로가 생명을 아끼고 돌봐주는 인류애가 꽃피었습니다. 십자가의 표식은 예수님을 나타내는 기독교의 상징(Symbol)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가 교회를 표시하는 공통적인 기호인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예수님의 정신을 따르는 기구나 단체들도 거의 십자가의 도안을 로고에 넣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붉은색 십자가는 인종이나 정치, 종교에 구분 없이 인도주의 정신으로 사랑과 봉사활동을 하는 기관임을 나타냅니다. 청십자나 녹십자의 의미는 병원이나 약국 같은 생명을 돌보는 기관의 표시입니다. 십자가야말로 인류에게 평화와 소망을 주는 복음의 진수입니다.
2. 복음의 십자가
십자가는 기독교 복음의 대명사입니다(고전 2:2). 십자가는 예수님의 구속 사역의 상징이며 또한 구원받은 성도들의 표식입니다. 십자가는 기독교 신학의 핵심적인 도리입니다.
1) 죄 아래 있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성경은 세상 모든 사람을 다 죄인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시편 14:2-3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5:12에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을 십자가의 형틀에 올려놓는 것은 그가 사형에 해당하는 죄인으로 판정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어느 누구도 십자가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은 모두가 다 죄 아래 있어서 형벌을 면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심지어 예수님마저도 거기에 해당됩니다. 자신은 죄가 없는 분이지만(히 4:15)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그에게 지우셨기 때문입니다(서 53:6).
2) 대속(代贖)의 원리를 일러줍니다.
아담이 범죄한 후 하나님께서 죽음 아래 있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법을 제정하였습니다. 그것이 곧 원시복음(原始福音)이요, 속죄의 제도입니다(창 3:15). 레위기에 나오는 모든 제사 제도는 소와 양 같은 짐승의 피를 흘리고 그것들을 제단에서 불태워 드렸는데 이는 사람이 받을 형벌을 대신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대속의 원리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완성된 것입니다. 히브리서 9:12에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53:5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고 하였습니다.
3) 그리스도인의 증거를 나타내줍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기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십자가가 없는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마 10:38). 찬송가 339장을 작사한 토마스 쉐퍼드(T. Shepherd)는 구레네 시몬이 십자가를 지고 간 것을 연상하면서 성도들도 저마다 제몫에 태인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된다고 노래하였습니다.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신분을 논할 때 십자가와 분리시켜 놓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고 하였습니다.
3. 십자가의 도(道)
고린도전서 1:18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십자가 속에 오묘한 진리가 있음을 암시 하는 것입니다.
1) 십자가에는 신비로운 요소가 있습니다.
바울 당시 고린도나 아덴 지역은 희랍에서도 대표적인 철학의 도시이며 지성의 고장입니다. 그곳 사람들은 모든 것을 인간의 합리적인 지식에 근거하여 논리를 전개하고 결과를 도출해 내려고 하였습니다. 그들의 관점에서 볼 때 바울이 전하는 십자가의 도는 미련한 것이며 이해할 수 없는 궤변으로 치부되었습니다(행 17:18). 그것은 사실입니다. 신비로운 하나님 나라의 도리를 인간의 지식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라고 하였습니다(마 13:11). 로마서 11:33에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의미를 아는 것은 신비로운 은혜입니다.
2) 희열과 행복의 근거입니다.
십자가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거기서 사랑과 평화와 희망을 발견합니다. 범죄한 인간이 사죄의 기쁨을 얻습니다(눅 23:43). 극심한 갈등과 대립도 십자가 밑에서는 사랑과 화목으로 바뀝니다(엡 2:14-17). 십자가의 신비를 체험하는 사람은 사랑의 의미를 알기 때문에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스코틀랜드의 찬송가 작가 클레페인(E. C. Clephane)이라는 여성은 신체의 장애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밀착된 삶을 통하여 그의 생애를 행복하고 향기롭게 살았습니다. 그는 “십자가 그늘에서 나 길이 살겠네 나 사모하는 광채는 주 얼굴뿐이라 이 세상 나를 버려도 나 관계없도다 내 한량없는 영광은 십자가뿐이라”고 노래하였습니다(415장). 십자가의 사랑을 느낄 때 비로소 행복의 가치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3) 승리의 원동력이 됩니다.
십자가의 신비는 부활과 승리로 연결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죽으실 것을 말씀하실 때마다 반드시 삼 일만에 살아나실 것을 예고하셨습니다(마 16:21).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논증하면서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하였습니다(고전 15:3-4).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는 부활과 승리를 가져오게 하는 과정이라고 보았습니다(딤후 2:11). 그리스도인이 예수님과 함께하는 십자가의 삶을 살게 될 때 반드시 부활의 승리를 체험하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5:57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라고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