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땅위에 임하게 될 메시야 왕국의 비전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그들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주변의 강대국들에 의하여 식민지 생활의 고통만 겪었습니다. 자연히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회의가 생겼고 백성은 실의에 빠졌습니다. 그런 시기에 세례 요한이 요단강 근처 유대광야에 나타났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 앞에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요한을 메시야인 줄 알았습니다. 백성들은 요한에게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하고 물었습니다. 시대가 어려울수록 바른 길로 가야됩니다. 요한은 방황하는 백성들에게 그들이 해야 될 일과 하지 말아야 될 일을 일러 주었습니다.
1. 감사하며 살아야 됩니다.
본문 14절에 “받는 급료로 족한 줄 알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상 때부터 율법을 따른다고 했지만 그들의 삶은 건전하지 못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이나 관리들의 부패로 인하여 백성들의 불만과 사회적 불안이 고조되었습니다.
1) 자기의 분수와 한계를 지켜야 됩니다.
사람의 마음을 욕심이 지배하게 되면 분수를 뛰어넘게 되고 행동의 자제력을 잃게 됩니다.
요한이 그에게 세례를 받고자 나오는 무리에게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고 외쳤습니다. 그 말을 들은 무리들은 요한에게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하고 물었습니다(10절). 세리들도 나와서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하고 물었습니다(12절). 군인들까지 나와서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14절). 그들은 입으로만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내세우면서 실제적인 삶은 거기서 멀어져 있었습니다. 세리들이나 군인들도 백성들을 괴롭히지 말고 맡겨진 직책에 따라서 성실하게 책임을 수행하여야 됩니다.
2)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어야 됩니다.
사람이 자기의 지식이나 주관을 너무 내세우게 되면 사고의 초점을 잃고 행동의 방향을 그르치게 됩니다. 곧 하나님의 존재와 주권을 무시하게 되고 본분에서 이탈하게 됩니다. 성경은 이런 경우를 두고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은 자”라고 합니다(롬 1:22). 언제나 신앙적 사고를 가진 사람은 모든 일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습니다. 인간의 노력과 그 결과도 하나님의
도우심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인식합니다(시 127:1-2).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삼라만상을 다 관리하시고 공중에 새나 들에 핀 꽃들까지도 먹이시고 입히신다고 하였습니다(마 6:26-30). 궁극적으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생존세계에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다 예비하시고 뒷받침해 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마 6:33).
3) 받은 것에 만족해야 됩니다.
마음을 비우고 욕심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은 자족(自足)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딤전 6:7-8). 모든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거저 받고도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며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자입니다. 사람의 마음에 욕심이 자리잡고 있으면 그 어떤 것에도 만족이 없고 감사가 없습니다(약 1:15). 옛날 애굽에서 올라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일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만나를 먹으면서도 감사보다는 불평과 원망을 일삼다가 결국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섞여 사는 무리들이 탐욕을 품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민 11:4).
2. 정도(正道)를 지켜야 됩니다.
목표가 분명하지 못하거나 방향 감각이 불확실해지면 백성은 좌절하게 됩니다(삿 21:25). 정치나 사회가 혼란해지고 경제가 어려울수록 곁길로 가지 말고 바른 길을 가야 됩니다.
1)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여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을 선택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인류와 역사 앞에 의와 공도의 표본으로 삼고자 하였습니다(창 18:19). 그 백성들은 세상만민 중에 구별된 민족으로서 하나님의 율법에 근거한 삶을 살게 하였습니다. ‘제사장 나라’가 되어 언제든지 하나님께 예배하는 제단중심의 생활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정치와 사회의 제도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정한 법도에 따라서 그것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 율례와 법도가 그 백성에게는 복과 저주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신 30:15-18). 세례 요한 당시에 백성들은 선택받은 민족의 본분을 이탈하여 모두가 자기 마음에 좋을 대로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하고 책망 하였습니다(8절).
2) 사람을 괴롭히지 말아야 됩니다.
세리들이 나와서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라고 했을 때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세리들은 부당하게 세금을 징수하여 착복하는 일을 거침없이 행하였습니다. 또 같은 질문을 하는 군인들에게는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고 하였습니다. 군인들은 국토를 방위하고 백성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공인입니다. 그러나 당시의 군인들은 자기의 본분을 망각한 채 백성들에게 강포를 행하며 인권을 짓밟고 재물을 탈취하는 등 부당한 일들을 자행하였습니다. 이처럼 타락한 인간이 사는 세상에는 공공의 유익을 위하여 부과된 지위와 힘으로 사람들을 괴롭히고 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행위가 만연되어 있었습니다.
3) 하나님의 심판을 의식해야 됩니다.
9절에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심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2:6-8에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과 행위를 나무와 열매로 설명하시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고 하였습니다(마 7:16-19). 본문 8절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요구하신 것은 그 당시 백성들의 형식적인 신앙과 삶의 열매가 없는 유명무실한 신앙을 책망한 말씀입니다.
3. 적극적인 사랑을 실천해야 됩니다.
강도를 만나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고 외면해 버린 제사장이나 레위인은 자기의 본분을 망각한 사람입니다. 그에게 다가가서 상처를 치료하고 주막집에 맡기며 뒤를 돌봐 준 사마리아인은 진정한 이웃이며 적극적인 사랑을 베푼 사람입니다(눅 10:30-37).
1) 베푸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내보내실 때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하였습니다(마 10:8). 여기 세례 요한도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11절).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기에게 있는 것으로 다른 사람에게 나눠 주며 서로 물건을 통용하였습니다(행 2:44-45). 요즘도 가진 자의 사회적 책임(Noblesse Oblige)을 강조하지만 이것은 본래 적극적인 사랑을 베풀게 하는 그리스도의 정신입니다(막 10:45). 야고보서 2:15-16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라고 하였습니다.
2) 자기가 노력하여야 됩니다.
에베소서 4:28에 “도둑질 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 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게을러서 일을 하지 않거나, 저는 수고하지 않고 남의 것을 빼앗아 먹을 생각을 한다면 큰 죄가 됩니다. 부당하게 세금을 부과하고 그것을 착복하는 세리나, 약한 백성을 힘으로 억누르고 재물을 강탈하는 군병들은 죄질이 나쁜 사람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일하지 않고 먹으려는 불노소득(不勞所得)에 대하여 엄하게 경고하였습니다(살후 3:10). 하나님께서는 놀고먹으려는 사람에게 복을 주지 않습니다. 잠언 10:4에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3) 하나님의 보상을 믿어야 됩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서 자기보다 어려운 이웃을 배려하고 베푸는 삶을 실천하는 것은 하늘의 상급을 축적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20에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하였습니다. 하늘의 상급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남에게 베푸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생의 도리를 묻는 청년에게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청년은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마 19:21-22). 이사야선지는 우리가 주린 자에게 양식을 나누어 주며 가난한 자를 집에 들이고 헐벗은 자를 입히면 하나님의 빛이 그 앞을 비추어 치유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그를 호위해 준다고 하였습니다(사 58: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