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설교

장년
예람지기 2009.01.25 00:00:00
798
  • 일자
    2009-01-25
  • 설교
    손상률 목사
  • 성경
    로마서 14:7~9
인간은 본래부터 자율적(自律的)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스스로 자기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의 인생을 자기가 의도하는 대로 사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은 자기의 가치판단에 따라 삶의 목적과 방향을 설정하고 자기 나름의 방식에 따라 생활하면서 그것을 행복인 줄 생각합니다. 무능한 인간이 자기를 과신하여 잘못된 방법으로 세상을 살게 되면 결국 그의 생애는 허망하게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고 하였습니다(사 2:22). 
성경은 인간의 실상을 정확하게 일러주면서 목적 있는 삶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 주인이 따로 있습니다.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과 만물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43:1에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말씀 8절에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고 하였습니다.

1) 시간의 주인입니다.

운동장에서 경기를 하는 선수들은 시작과 끝을 알려 주는 심판의 신호에 따라서 정해진 시간 안에 경기를 해야만 됩니다. 어느 편에서도 자기들의 편리한 대로 시간을 조정할 수는 없습니다. 인류의 역사와 개인의 생애에 있어서 그 시작과 끝을 정하고 이를 주장하시는 이는 하나님입니다(행 17:26-28). 세상만사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때와 기한에 의하여 좌우됩니다(전 3:1-8). 사람들은 시간의 흐름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모르고 자기가 임의대로 줄이거나 늘릴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곤 합니다. 모세는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고 하였습니다(시 90:4). 이와 같은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인생의 한 순간도 소홀히 여기지 않습니다(엡 5:16).

2) 물질의 주인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주인입니다(골 1:16).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시고 인간에게 관리하며 다스리도록 책임을 맡기셨습니다(창 1:28). 이와 같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가 주인인 것처럼 착각한 나머지 이를 악용하곤 합니다. 학개 2:8에는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욥은 일찍부터 이와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순식간에 재물과 자녀를 다 잃어버렸을 때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라고 하였습니다(욥 1:21). 이와 같은 사실을 아는 사람은 올바른 물질관을 갖게 됩니다. 다윗은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고 하였습니다(시 39:6).

3) 생명의 주인입니다.

사람의 생명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창 2:7). 욥은 하나님께서 인간 생명의 날 수와 달 수를 정해 놓으시고 어느 누구도 그 정한 규례를 넘어가지 못하게 하였다고 했습니다(욥 14:5). 인간 실존의 근본을 바로 아는 사람은 세상에서 잠시 누리는 권력이나 재물이나 명예 따위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욥기 27:8에 “불경건한 자가 이익을 얻었으나 하나님이 그의 영혼을 거두실 때에는 무슨 희망이 있으랴”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재물을 쌓아 놓고 거기에 도취되어 있는 부자를 향해서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하셨습니다(눅 12:20).


2. 주인의 목적이 있습니다.

본문 말씀에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을 명시한 말씀입니다.

1) 목적을 위해서 예정되고 선택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목적에 따르는 삶을 사는 자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인간뿐만 아니라 그가 지으신 만물도 다 자기의 선하신 목적을 위하여 존재하게 하였습니다(롬 11:36). 세상사람 가운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의 선하신 목적을 위하여 쓰임받게 되는 것도 자기의 의사와 상관없이 주권자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태에서 나를 부르셨고 내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으며”라고 하였습니다(사 49:1). 그는 이와 같은 사실을 두고 “내가 여호와 보시기에 영화롭게 되었으며 나의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셨도다”하고 찬송하였습니다(사 49:5). 바울도 하나님께서 그를 모태에서 선택하셨고 은혜로 불러 주셨다고 하였습니다(갈 1:15).

2) 목적을 위해서 부르심과 훈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향해서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고 하였습니다(렘 1:5). 그 당시 예레미야는 나이 어린 소년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시험과 연단을 통하여 훗날 그 땅 백성들 앞에서 견고한 성읍, 쇠기둥과 놋 성벽이 되게 하겠다고 하였습니다(렘 1:18). 예수님께서도 갈릴리 바다에서 물고기 잡는 어부들에게 찾아가셔서 그들을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려고 불렀습니다(마 4:19).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부름을 받은 것도 중요하지만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기까지는 많은 훈련과 연단의 과정을 거쳐야만 됩니다.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자리잡도록 거듭되는 훈련을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갈 4:19).

3) 목적에 따르는 사명을 수행하는 자입니다.

본문 성경을 기록한 사도 바울은 자기의 존재 가치가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이루는 일에 있다는 것을 피력하였습니다. 그의 살고, 죽고, 하는 모든 것이 여기에 달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는 자기 인생을 자기를 위해서 사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빌 3:1-8). 그러나 예수를 알고 또 그 예수에게 붙잡힌 인생이 되고부터는 자기 몸이 자기의 것이 아니라고 믿었습니다. 로마서 1:1-4에 그는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받았고 또 그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그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결박당하는 것이나 죽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행 23:13). 훗날 로마 옥중에 있을 때 몸은 쇠사슬에 얽매여 있어도 사실은 하나님의 사신이라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엡 6:20).


3. 주인의 축복이 있습니다.

주인의 뜻을 헤아려 거기 충성한 사람에게는 상당한 보상이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4:7-8에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라고 하였습니다.

1) 최상의 축복은 주인에게 인정받는 것입니다.

성경은 충성의 기준을 생명이 다하기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에 두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제일 큰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율법사에게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마 22:37). 주인에게 충성하는 사람은 외부적인 상황이나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성실하게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쳐 헌신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충성하는 사람을 알아주시고 기뻐 받으십니다. 마태복음 24:45-46에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2) 다른 사람과 역사 앞에 증거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을 역사에 증거로 삼겠다고 하였습니다(창 18:19).
성도의 신앙과 행위는 쌓은 업적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의 신앙 행위를 집을 세우는 것에 비유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3:10-15에는 그 세운 공력이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한편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을 불로 감정을 할 때 전자는 찬란한 빛으로 드러나게 되고 후자는 불타고 흔적도 없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주 예수께 소망을 두고 거기에다 인생을 걸고 최선을 다했던 사람은 그 쌓은 업적이 가장 큰 자랑이요, 행복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해서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서 너희가 아니냐”고 하였습니다(살전 2:19).

3)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 같았으나 결국은 많은 사람에게 생명과 축복의 통로가 되어 졌습니다. 그분은 스스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하였습니다(요 12:24). 자기의 인생을 자기 한 사람을 위해서 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명에 최선을 다한 사람은 그로 말미암아 후손들과 많은 사람에게 축복의 과실을 안겨 주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빙자하면서도 이기적인 목적으로 살아간 사람은 자손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불행을 안겨 주게 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기를 헌신한 사람의 자취는 많은 사람에게 행복의 통로를 열어 놓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