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설교

장년
예람지기 2006.04.30 00:00:00
1067
  • 일자
    2006-04-30
  • 설교
    손상률 목사
  • 성경
    빌립보서 4:21~23
 
세기의 전도자 바울이 생애 마지막 전도지인 로마에서의 행적은 상상을 초월하는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마치 순풍에 돛을 올린 배가 망망대해를 거침없이 항해하듯이 하나님의 특별하신 가호와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서 종횡무진 복음의 위력을 발휘하게 된 것입니다.
바울의 4차 여행은 말이 전도여행이지 사실은 죄수의 신분으로 군인들에게 호송되어 갔고, 로마에 도착하자마자 옥중에서 영어(囹圄)의 몸이 되어 구금된 상태로 지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열악한 환경에서 주옥같은 서신들(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디모데후서)을 기록하였고, 또 많은 사람을 전도하여 예수 믿게 하였습니다.
그는 지금 빌립보 교회가 위문 사절로 보낸 에바브라 디도 편에 본서를 보내면서 빌립보에 사는 성도들에게 문안인사를 하였습니다. 본문 21-22절에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별히 가이사집 사람 중 몇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 중에는 바울과 함께 믿음의 생활을 하며 로마교회 설립의 기초가 되는 성도들과 그 중에도 가이사집 사람들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 중에서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특징을 살펴보고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I. 옥중에서 얻은 신자들입니다.

전도자에게는 복음 전도의 열정과 함께 전도하여 얻게 되는 복음의 열매를 두고 무한한 보람과 긍지를 가집니다. 죄와 죽음 아래 얽매였던 사람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생명을 얻고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경우 그런 자들을 가리켜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디모데나 디도를 그렇게 불렀고(딤전 1:18, 딛 1:4), 특히 로마 옥중에서 전도한 오네시모에게는 “갇힌 중에 낳은 아들 오네시모”라고 하였습니다(몬 1:10). 여기 말하는 가이사집 사람들도 로마에서 구금되어 있던 상황에서 얻은 전도의 열매들입니다.

(1) 복음 전도의 열정

사도 바울은 자기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잡힌 사람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빌 3:12).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그에게 붙잡힌 후로는 오직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로 평생을 살았습니다.
그동안 소아시아 일대를 휩쓸고 마케도니아와 아가야, 고린도 등 희랍의 문화권을 장악하면서 드디어 세계의 심장부인 로마에 진출한 것입니다. 그가 기록한 로마서 1:13에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고 하였습니다.
그의 전도에 대한 열정은 단순한 열심에서라기보다 그 자신이 신뢰하는 복음의 위대성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는 로마에 도착한 후 감옥에 갇혀 쇠사슬에 매인 채 근위병들의 감시를 받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하나님이 보내신 「사신」이라고 할 정도로 대단한 자부심을 가졌습니다(엡 6:20).
(2) 하나님의 심오한 섭리

바울이 로마에 가게 된 것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요 은혜입니다. 바울 자신은 일찍부터 세계의 수도인 로마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가 3차 여행을 마치고 에베소를 떠나면서 “내가 예루살렘에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하고 그 뜻을 피력하였습니다(행 19:21).
그러나 그의 의도하던 로마 전도는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유대인 폭도들에 의해서 테러를 당하고 천부장의 군사들에게 결박당한 것으로 무산되었습니다(행 21:30-36). 그 이후 가이사랴에서 2년 동안 구금되어 있다가 새로 부임한 총독 베스도의 재판을 받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바울은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행 25:10).
이후 총독의 명에 따라 바울은 「아구사도대」라는 부대의 백부장 율리오에 의해서 로마까지 호송되어 갔습니다. 그들이 타고 가던 알렉산드리아 배가 그레데 해역에서 광풍을 만나 죽음의 위기를 당했지만 그 때도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능력을 행하게 하셔서 276명의 선원과 승객을 구조하게 되었습니다. 유대인 중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말한 특공대가 40여 명이나 있었는데, 이런 위험 속에서 하나님은 군대를 동원하여 그를 호위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3) 복음의 신비로운 능력

로마서 1:17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복음의 신비로운 역사는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능력을 행사합니다. 마치 작은 겨자씨 한 알이 큰 나무로 자라고 가루 서 말 속에 섞어 놓은 적은양의 누룩이 전부를 부풀게 하듯이(마 13:31-33), 거기에 접하기만 하면 그 심령을 파고들어 변화를 일으키고 맙니다.
바울의 경우 철저하게 군사들에 감시당하고 있어서 스스로 어디든지 돌아다닐 수 없는 몸이었습니다. 그런 감옥생활의 제약 속에서 어떻게 각계각층의 그 많은 사람을 전도하며 변화시킬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 28:30-31에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고 하였습니다.


 Ⅱ. 환난을 극복한 사람들입니다.

성경에서 「가이사」라는 칭호를 쓸 때 이는 세상권력의 상징으로써 하나님 나라와 영적 세계에 대한 반대개념으로 인식되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를 반대하는 바리새인들로부터 납세에 관한 질문을 받았을 때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2:21).
(1) 기독교 박해의 상징인 가이사

가이사(Caesar)라는 이름은 로마 황제의 칭호입니다. BC208년 집정관이 된 섹스투스 줄리어스(Sextus Julius Caesar)에게 처음 붙여진 이름인데 그 명성을 크게 떨친 사람은 BC100-40동안 강력한 지도력을 행사했던 줄리어스 시저(C. Julius Caesar)로 알려져 있습니다.
복음서 기자 중 역사가인 누가는 예수님의 탄생과 활동연대를 밝히면서 당시 가이사의 이름도 기록하였습니다. 가령 예수님 탄생과 관련하여 천하로 호적하게 한 사람은 가이사 아구스도(Augustus, BC 31~AD14)이고, 세례요한이 전도를 시작할 때는 그의 후임인 가이사 디베료(Tiberius)로 밝혀 놓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서 전도하고 이 성경을 기록할 당시의 가이사는 악명 높은 네로(Nero, AD54~68)황제입니다. 사도시대 이후 열 명의 가이사가 박해자로 이름을 남겼는데 그 중에도 네로가 가장 악랄하고 잔혹하게 교회를 박멸하려 했습니다. 네로는 일찍이 스토아(Stoa)철학의 태두인 세네카(Seneca Lucius)를 스승으로 두고 상당기간 선정을 베풀며 좋은 정치를 할 것 같다가 얼마 안가서 잔인한 본성을 들어내며 폭정을 일삼았습니다. 그는 어머니를 자기 손으로 죽였고, 스승인 세네카를 위시하여 시위대장 불루스, 왕후 옥타비아 등 무고한 사람을 수없이 죽였습니다.
AD 62년 로마 도시가 절반이나 소실된 대화재 때는 기독교인이 방화했다고 누명을 씌워 대대적인 박해를 감행했으며 그의 재위 기간 베드로와 바울도 순교를 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AD 68년 자기 손으로 왕궁에 불을 지르고 자살하였습니다.

(2)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킨 사람들

어느 시대나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세워지는 곳에는 피 흘리는 박해가 있었습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이 활동할 당시에도 로마가 지배하는 세계 곳곳에서 엄청난 핍박이 자행되었는데 이것은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라고 한(요 1:11) 성경 말씀과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고 하신 말씀(요 3:19)이 응하게 된 것입니다.
로마의 가이사들이 교회를 탄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가운데 첫째는 국가관입니다. 로마 정부는 국가지상(國家至上)주의인데 반하여 기독교는 세상 나라의 멸망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주장하였습니다. 둘째는 비밀 결사(結社)문제입니다. 로마 정부의 허락 없이는 어떤 단체 활동도 못하게 했는데 기독교인들은 정기 모임을 가졌습니다. 셋째는 로마인들의 미신적 사상입니다. 그들은 세상에 재난이나 질병이 생기는 것은 기독교인 때문이라는 말을 퍼뜨렸고, 그래서 더 미움을 사게 하였습니다. 그 다음은 사회적 풍습 때문입니다. 그 당시 부유층이나 귀족은 사치하고 음란한데 반하여 기독교인들은 이런 것을 배격하고 경건생활을 일삼았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신앙을 지킨 사람들은 세상으로부터 격리 되어 토굴과 암혈과 광야와 산중으로 유리하며 숨어 살았습니다(히 11:35-38).

(3) 박해 속에서 승리한 믿음

사도 베드로는 그 당시 환난시대를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벧전 1:7).
실제로 핍박 속에서도 견디고 승리한 그들의 믿음은 위대한 승리의 미담으로 교회사에 길이 빛나고 있습니다. 지금도 로마에 가면 초기 기독교도들이 수백 년간 숨어 지냈던 지하공동묘지(Catacomb)와 또는 맹수에게 찢겨 죽게 한 원형극장(Colosseum) 같은 지긋지긋한 박해의 현장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기독교 신앙의 승리를 나타내는 아름다운 유적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무서운 박해의 그늘에서 기독교 복음의 싹을 틔우고 구원의 열매가 맺혀지게 되는 것은 불가사의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옛날 엘리야 때 폭군 아합 왕의 궁내 대신 오바댜는 하나님의 선지자 일백 명을 오십 명씩 굴속에 숨겨두고 아침저녁 떡과 물을 주어 살려내었습니다(왕상 18:4).
 여기 가이사집 사람들도 극심한 핍박이 자행되는 그 현장에서 믿음으로 극복하고 승리한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은 무신론적 공산주의 폭정에 숨을 죽인 채 하나님의 권고하실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Ⅲ. 세계복음화의 주역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선교적 명령을 따라 오대양 육대주를 석권해 온 복음운동은 시대마다 환경이나 토양, 그리고 문화적인 이점을 선교의 전략에 활용하였습니다. 바울도 그가 말년을 보낸 로마에서 평소 가슴에 품고 있던 복음의 웅지를 마음껏 펼칠 수 있었습니다. 비록 그 자신은 죄수의 신분으로 쇠사슬에 매인 몸이었지만 그가 있는 곳이 세계의 심장부 로마라는 사실에 고무되어 있었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은 바울의 복음운동에 날개를 달아주었습니다.
당시 로마는 세계를 제패하고 있어서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으로 또는 문화, 예술 모든 분야에 있어서 모든 길이 그곳 로마로 관통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에 다이나마이트(δυναμ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