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나 평화 또는 행복이라는 말들은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입니다. 사랑이 없는 곳에는 평화가 있을 수 없고 평화가 없는 곳에는 행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사랑의 본체가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요1 4:8). 하나님의 사랑이 조명되는 곳에는 죄와 죽음의 어두운 그늘이 걷혀 지면서 참된 평화가 자리 잡게 되는 것입니다. 이 평화가 오늘날 인류의 가장 큰 소망이며 이상향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와 같은 인류공통의 꿈을 지상에 세워둔 자기의 교회를 통하여 실현하고자 시도하셨습니다.
잡히시기 전날 밤 다락방에 둘러앉은 열두 제자에게 똑같은 떡을 나누어 주시고 또 그와 같이 잔을 받아 마시게 하시면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고 하였습니다(요 13:34-35).
교회는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입니다. 예수께서 자기의 살과 피로 상징되는 떡과 잔을 가지고 성만찬을 베푸실 때 거기 참여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지상 교회의 모델을 삼았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는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 하였습니다(고전 11:25).
이와 같은 예수님의 분부에 따라서 신약 교회는 그 설립 초기부터 성찬예식을 행하여 왔습니다. 본문 말씀 42절에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도적 교회의 전통을 따라 정당한 성례를 거행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들이 주님께서 나누어 주신 떡과 잔에 참여하면서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로서 그 의미를 되새기곤 하는 것입니다.
I.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연합된 공동체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의 작품 「최후의 만찬」그림을 보면 예수님께서 가운데 앉으시고 열두 명의 제자들이 그 좌우편으로 배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고 거기에 연결되는 공동체를 뜻합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사람의 몸으로 비유하고 예수님은 그 머리라고 하였습니다(엡 1:22-23). 에베소서 4:16에는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세상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을 받고 교회의 회원이 된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고 합니다(엡 1:1). 이들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라고 부릅니다. 모든 지체는 몸에 붙어 있으므로 서로 상합하고 연락되어 집니다. 만약 이들이 몸에서 분리되거나 따로 행동하려고 한다면 그리스도와의 생명적인 관계가 끊어지고 맙니다.
예수님께서도 포도나무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고 하였습니다(요 15:4). 예수님께서 성만찬 때 한 덩이의 떡을 가지고 떼어서 거기 앉은 사람에게 나누어 받게 하신 것은 그들이 다 하나처럼 예수와 연결되어 연합을 이룬 공동체임을 강조하는 뜻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성찬에 참여하면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몸을 이룬 공동체임을 분명히 인식하여야만 할 것입니다.
Ⅱ. 마음으로 연합된 공동체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마음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본문 46절에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기쁘고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것이 본래의 교회, 곧 이상적인 그리스도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그 때도 여러 지역에서 모여온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제각기 다른 언어와 생활 풍속을 가지고 있었지만 오직 그 속에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공유하고 있어서 같은 뜻을 품으며 같은 목표로 행동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는 인간적인 제도나 규율에 얽매여서 하나처럼 행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외부적인 어떤 힘에 의하여 획일적으로 묶어 놓는 조직체가 아닙니다. 그 마음에서부터 우러나는 자발적인 동기가 같은 행동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친한 사이고 육신의 형제끼리라도 죄가 그 속에 들어오면 이간질이 되고 마음이 나누어지게 되며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회개한 마음이거나 예수 안에서 사죄 받은 마음일 때 순전한 마음으로 연합하게 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사람들은 성령 받은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37절)하고 자기의 죄를 자복하였습니다. 또 그들은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38절)라고 하는 말씀을 수용한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죄 받은 마음속에는 성령이 역사하게 됩니다. 성령의 이끌림을 받는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마음으로 연합하게 되는 것입니다.
Ⅲ. 사랑으로 연합한 공동체입니다.
제자들과 함께 성만찬 예식을 행하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서로 사랑할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3:34에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그의 제자들을 통하여 지상에 세워지게 되는 그리스도 교회의 성분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곧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는 사랑이 매체가 되어 서로 연합하고 성장하는 기관입니다. 에베소서 4:15에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고 하였습니다. 교회가 사랑의 공동체라고 할 때 이는 말로만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나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고 하였습니다(요1서 3:18).
오순절 이후 성령 받은 초대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성도들의 삶을 통하여 실천되고 있었습니다. 본문 말씀 44-46절에 보면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라고 하였습니다. 4:32에는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초대 교회가 서로 유무상통하면서 가난한 이웃을 돌보며 형제를 섬기는 일에 전념한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작용하였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다 가난하고 어려운 처지에 있었고, 또 교회 안에 모인 사람들은 혈연이나 지연에 상관없이 여러 지역에서 모여 온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처럼 마음을 같이하며 뜨거운 형제애를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 교회의 참모습을 보여 주는 모델이 되는 것입니다.
Ⅳ. 말씀으로 연합한 공동체입니다.
애당초 예수님께서는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하시고 지상에 자기 교회의 설립을 선포 하셨습니다(마 16:18).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반석 또는 집의 기초로 설명합니다. 마태복음 7:24에는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초한 것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에베소서 2:20에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도나 선지자는 신약과 구약의 성경을 의미합니다. 교회의 회원인 성도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 진리를 근거로 하여 연합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하나님 아버지께 드린 대제사장적인 기도문 가운데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저희는 이것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요 17:8). 또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고 하였습니다(요 17:17).
여기 성찬에 참여하는 성도들은 모두 말씀의 실체가 되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연합된 사람들입니다. 요한복음 1:1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성찬에 참여하여 한 떡을 같이 나누는 것도 사실상 말씀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가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라고 하였습니다(요 6:51).
오늘 거룩한 예식에 참여하는 우리들이 떡과 잔을 받아먹으면서 주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깊이 새겨야 됩니다. 옛날 모세는 이스라엘이 광야 여행기간에 먹었던 만나를 설명하면서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신 8:3).
Ⅴ. 사명으로 연합된 공동체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회원된 사람 모두가 뚜렷한 목적 아래서 연합을 이루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기전 세상에 남겨두신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4에 보면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은 성령을 뜻합니다. 그리고 8절에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분부대로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 결과 오순절에 강림한 성령을 충만히 받았고, 그 순간 엄청난 능력을 힘입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거기 모인 모든 사람은 다 성령의 권능으로 만나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혹독한 박해와 죽음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 4:20)고 하며 당당하게 증거자의 소임을 다했습니다. 그런가하면 교회는 전심으로 한 마음이 되어 기도하는 일에 진력하였습니다(행 4:24-31).
신약교회가 그리스도께 받은 사명을 수행하고자 할 때 이 일에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가 다 동참하였습니다. 사도들은 일선에 나서서 복음 전하는 일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사도행전 5:41-42에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은 교회에 모여서 기도하기를 힘쓰며, 또 한편으로는 가진 물질을 바쳐서 복음 전파하는 일을 뒷받침 하였습니다(행 4:32-37).
Ⅵ. 내세를 소망하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부름 받은 사람의 집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와 죽음 아래 얽매여 있는 세상사람 중에서 자기 백성을 불러내셨습니다(엡 2:1-2).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께로부터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엄청난 은혜요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엡 4:4). 또 에베소서 1:18에는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발을 붙이고 살면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대망하는 자들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배를 하나님으로 삼고 부끄러운 일을 자행하며 땅에 것만 집착할 때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하고 확실하게 하늘 나라를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빌 3:19-20).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곧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하는 것은 천당을 대망하는 성도들의 신앙 고백입니다.
초대 교회 당시 로마 사람들은 세상 권력과 영화가 영구할 것으로 믿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세상 나라의 멸망을 예언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확신하고 살았습니다.
그 결과 혹독한 시련을 견디고 죽음의 위협을 이기는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11:40에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