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손상률 원로 목사)
멀린 2011.10.09 1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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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식이와 삼식이


점심시간 가까이 되어서 은행에 들린 일이 있었다. 창구의 여자 직원이 “점심 드셨어요?”하고 인사를 하기에 나는 “지금 점심 먹으러 집에 간다”고 했다. 그 직원은 “아니, 점심을 집에 가서 드세요?”하더니 혼잣말처럼 “사모님 참 힘드시겠다.”고 한다. 그 아가씨는 내심 나를 봉건시대의 사람 정도로 여기는 것 같았다.

언젠가 어느 목사님으로부터 요즘 주부들은 집에서 밥 챙겨 먹는 남편을 가장 싫어한다는 말을 들었다. 주부들은 아침만 먹는 일식(一食)이는 ‘괜찮은 남편’, 점심까지 먹는 이식(二食)이는 ‘나쁜 남편’, 저녁까지 다 챙겨 먹는 삼식(三食)이는 ‘죽어도 좋을 남편’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날 저녁 식탁에서 아내에게 나는 지금까지 삼식이로 살았으니 ‘죽어도 좋을 남편’이라고 고백했더니 아내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했다. 나처럼 하루 세 끼를 집에서만 먹어주는 사람이 가정적이고 아내를 알아주는 일등남편이라고 해주었다. 그 말을 들었기에 나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아내가 저녁식사는 못하겠다고 파업을 선언하고 나왔다. 수십 년 동안 삼식이로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온 우리집 문화가 순식간에 바뀌어 진 것이다.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아내가 누구에게서 큰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어느 날 큰 딸이 친정엄마를 자기가 잘 가는 목욕탕에 모시고가서 떼를 밀어드리게 했다고 한다. 봉사하는 아주머니가 아내의 풍만한 몸매를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첫 말에 ‘어쩌자고 이렇게 많이 찌게 했느냐’하기에 아내는 ‘맘 편하게 먹고 지내다보니 이렇게 되었다’고 대답을 했다. 그 아주머니 말이 ‘그러면 자기 혼자 찔 것이지 왜 이런 것을 따님에게까지 물려주었느냐’고 했더란다. 지금까지는 여러 사람이 ‘살 좀 빼라’고 해도 ‘그냥 이대로 살다가 죽을래.’하고 배짱 좋게 지내왔는데 자식에게까지 물려주었다는 말에는 단단히 열을 받은 것 같다. 어찌되었든지 나는 타의에 의해서 이식이로 살아가게 되었다. 어느 자리에서 이 말을 했더니 다른 남자들도 긴장을 했던지 ‘제발 교회에서 공개는 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그렇지만 대부분 엄처시하의 남자들은 벌써부터 일식이 아니면 이식이로 습관을 들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