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손상률 원로 목사)
멀린 2011.09.04 14:42:21
2098

먹는 것도 사명이다.

 
해외로 여행을 하다 보면 우리와 식생활 문화가 다른 나라에서 음식 때문에 고생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식사 때만 되면 현지식을 못 먹겠다고 투정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다른 사람을 불편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사명감을 가지고 잘 먹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

 

몇 년 전 작고하신 하구봉 목사님은 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에도 선교를 위해서 해외로 자주 다니신 분이다. 그분은 30여 년 전 태국에 있는 어느 나환자촌에 교회를 세우고 거기서 활동하는 선교사를 지원하고 있었다. 한번은 그곳 교회의 행사에 참석하기 위하여 방콕에 도착했는데 공항에 마중나온 선교사가 차를 타고 가면서 목사님께 간곡한 부탁을 했다. 그곳 선교지 사람들은 선교사의 본국에서 목사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하나님의 천사가 오는 것만큼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자기가사역하는 그곳 나환자들은 신체적인 핸디캡 때문에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심리적인 콤플렉스가 있으니 각별히 신경 써 달라고 했다. 그들은 최선을 다해 음식을 대접하게 되는데 식성에 맞지 않는다고 먹기를 꺼려하거나 억지로 먹는 태도를 보이면 그 후유증을 고스란히 선교사가 안아야 된다는 것이다. 현지에 도착했을 때 마을 사람들이 다 모여 마치 대통령을 맞이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드디어 진수성찬으로 환영 만찬을 벌였는데 순간 목사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많은 음식을 조금씩이라도 맛보아야 될 것인데 도저히 다 먹을 자신도 없었고, 그들이 어떤 향신료를 썼는지 코를 찌르는 냄새가 비위를 틀어 놓았다. 촌장 되는 사람이 권하는 음식은 최고의 귀빈에게 접대한다는 돼지새끼 요리였다. 갓 나온 새끼를 삶아서 그대로 쟁반에 담아 올린 것이다. 감사히 먹겠다고 대답해 놓고는 옆 접시에 담긴 삶은 달걀을 집어 들었다. 껍질을 까는 순간 기가 질렸다. 껍질 안에 든 것은 흰자 노른자의 달걀이 아니라 깃이 뻣뻣한 병아리였다. 목사님이 안절부절 하는 것과 달리 선교사는 맛있게 잘 먹었다. 목사님은 오래도록 그때의 당혹스러웠던 기억을 되새기면서 목사는 음식 먹는 것도 사명감 없이는 안 되겠더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