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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신 1999.09.18 23: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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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암교회-자유게시판 (go SGHUAMCH)』 1162번
 제  목:지금 당장 밥이 되어     [박노해]                           
 올린이:well    (한동신  )    99/09/18 23:19    읽음: 20 관련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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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에 나무껍질과 풀, 뿌리로 죽을 끓이고 있는 앙상한 주부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굶

주림에 못이겨 중국남자에게 단돈 1만 위엔(한국돈 백십만원 정도)에 밀매되는 꽃같은

처녀들을, 온식구가 나란히 방에누운채 그대로 아사해 가는 한 가족을, 너무 굶어 발

육이 정지되고 머리색깔이 변해버린 어린 것들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내내 막막한 좌절감과 무력감, 분심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날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도 나는 끼니때만 되면 어김없이 배가 고팠고 더 맛있는 걸 찾았고 과식했고 남은 것

버렸고 간식까지 챙겨 먹었습니다.

 

 오늘 하루만도 지척에 있는 동포들이 수도 없이 굶어 쓰러져 갔지만 나늠 여전히, 식

욕은 무심토록 왕성했고 위장은 저절로 운동했고 내 슬픔도 사랑도 의지도 그것들을

붙잡지 못했고 오히려 식욕이 그것들을 잡이먹는 거였습니다.

 

 아아 그러했습니다. 굶주린 위장을 채우지 않는, 존재의 기본을 건너 뛴 그 어떤 고

상한 것도 다 허구였습니다. 삶의 질도 아름다움도 다 껍데기였습니다. 굶주려 몸부림

치는 저 수천만의 위장속으로 지금 당장 밥이 되어 가지 않는 사랑, 밥이 되어 주지

않는 도덕, 밥으로 바꿔 내지 못한 정의와 진보는 다 위선일 수밖에 없습니다.굶주려

쓰러지는 인간 앞에서 밥이 되지 않는 무든 것은 다 무너져야 하고 다 부정되어야 하

고 다 무릎 꿇어야 합니다.

 

 지금 이 시간 풀썩풀썩 굶어 쓰러져 가는 죽어가는 동포들에게 지금 당장 한 그릇 강

냉이죽, 한사발 밀가루 죽도 되어주지 못하는 나의 사랑 나의 신념 나의 인간이라면

나는 죽어서도 용서받지 못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많은 수가 굶어 죽고 영양실조로 병

신이 되어버린 위에 우리가 하나된들, 아아 한 민족간의 그 사무친 원한을 어찌할 것

입니까. 학살보다 더 무서운 그 원한들이 나의 미래와 아이들의 미래를 두고두고 능멸

한다해도 그것은 하늘도 어쩌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당장 한그릇 밥이 되어 달려가지 못하는 그 모든 가치있는 것, 그 모든 옳다는 것

그 모든 성스럽다는 것은 다 헛것이고 위선이고 죄악에 다름 아닙니다.

 지금 당장 밥이 되어 달려가지 않는다면!
 
    

  오늘 제가 속해 있는 북녘사랑이란 모임의 한 친구가 제게 건내준 글입니다.
 
  한참을 멍하니 보다가... 한숨을 크게 한번 쉬고...망설이다 글을 올려놓습니다.
 
      
                                        하나님의 소유 동신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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