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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도전적이고 조직적이고 전투적으로 임하는 종교는 단연 무슬림 교도들이다. 그 규모와 전략은 탁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 전 지역에 무슬림 사원은 이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일상적인 것이 되고 있다. 가장 요충지에 사방에서 쉽게 보이는 곳에 무슬림 사원은 그 첨탑을 우뚝 세우고 있다. 이슬람을 낯선 이방인들의 종교라 여겼던 러시아인들은 이제 그 성전에 들어가기 위하여 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무슬림 인구의 증가와 선교는 열을 더해간다.

 

어떤 선교사가 이사를 하는데 운전을 하는 사람이 무슬림이었다. 이삿짐을 나르다가 시간을 보더니 이제 막 이사한 방에서 기도를 좀 해도 되겠느냐고 한다. 무슨 소리냐고 하였더니 결국은 자기 차에 가서 기도하고 와서 계속 일을 한다. 그 신앙에 감탄을 한다.

 

모스크바 대학에서 학생들이 강당에서 운동을 하려고 하는데 무슬림 학생들이 와서는 기도를 한다고 하기에 모두 비켜 주었다고 한다. 기독 학생들이 그 모습을 보고서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우리도 이 대학에서 기도운동을 벌여야겠다고 다짐하였단다.

 

약 한 달이 지났나 보다. 2009년 말, 모스크바 주에서 러시아 정교회 신부가 무슬림에 반대하는 설교를 하였다. 그리고 반 무슬림 운동을 펴다가 결국에는 무슬림 교도에게 살해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로 인하여 정교회와 무슬림 간의 갈등이 예상되지만 그들의 약진을 막을 수 없다. 법적으로 보호를 받고 있는, 엄청난 무슬림 인구가 이미 모스크바에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선교 전략 중 하나는 중요한 지점에 땅을 확보하고 사원을 짓는 것이다. 시간이 되면 자연적으로 사람들이 몰려든다. 모스크바에서 어디든지 이제는 무슬림 사원의 첨탑이 여기저기에 솟아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건물은 목적이 아니다. 그러나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누가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건물을 구입하고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질 뿐이다.

 

영국에서 어떤 무슬림 지도자는 영국의 무슬림 선교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선언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제 영국은 무슬림화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선교는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스스로 굴러가고 점점 무슬림화되어갈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럽 전체에 무슬림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할 수만 있으면 중요한 지점에 땅을 매입하고 기회만 되면 성전을 건축하여 나가는 그들의 전략은 대단히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들의 전략은 그 어떤 기독교 선교단체보다 한 단계 앞서 나가고 있다. 이제는 세계 기독교 선교의 핵심으로 부상한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선교의 차단과 동시에 무슬림 선교의 거점으로 한국을 주목한 것이다. 한국 무슬림 선교의 전초기지는 그동안 노력과 투자로 인하여 이미 튼튼하게 형성되었고 이제는 서서히 움직이고 활동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전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선한 사업에 힘쓰는 것이다. 어디를 가든지 자선사업, 구제와 봉사, 헌금으로 그들의 신앙과 사상과 건재함을 알리는 것이다. 외국인으로서 가장 접하기 쉽고 관심을 끌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신앙에 무관심한 자들은 이방인들의 자선사업에 감동을 받고 그들에게 호감을 가지며, 결국에는 포교에 빠져들어가게 되어 영혼을 도적 맞는 결과를 가지고 온다. 물량공세인 것이다.

 

둘째, 통혼 정책이다. 한국사람과 통혼 작전이다. 이방인과 결혼을 통하여 종교 혼합을 이루고 결국에는 사상으로 무장된 그들의 신앙으로 한국인들을 포섭하는 정책인 것이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번번히 실패한 이유도 통혼으로 인한 것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타 민족과의 통혼을 철저하게 금지하였던 것이다. 현재 한국에 어느 정도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많은 일들이 진행된 것으로 안다. 자녀에 대한 애착이 많은 한국 여성들을 대상으로 포섭 작전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 아이를 데리고 간다든지 협박을 하여서 강제적으로 포섭한다는 것을 듣고 있다.

 

셋째, 대학을 공략하는 전략이다. 젊은이들을 상대로, 지성의 요람인 대학을 공략하여 사상 해제를 시키고 그들에게 신앙을 주입하려고 하는 것이다. 기독 대학의 요람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한동대학교에 무슬림 학생들이 유학생으로 많이 입학하였다는 소식은 들었을 것이다. 제 발로 걸어 들어온 무슬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동대 학생들은 전도에 열을 올린다. 그러나 무슬림 학생들은 전투요원으로서 한동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전도활동을 벌인다.

심각한 영적 전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무장된 기독 학생들을 전도하기 어려우니, 일단 학교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전도활동을 펼쳐 무슬림 학생들에게 넘어가게 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각 대학에 무슬림 학생들이 유학 명목으로 들어가서 많은 이들을 유혹하고 포교활동을 벌인다고 하니,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가를 알아야 한다. 우리가 잘 아는 대학생 선교회인 것이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다.

 

넷째, 한인 유학생 초청 전략이다. 두바이나 쿠웨이트 등 산유국 중 잘 살고 여유가 있는 곳으로 한국인 언어 연수생 혹은 유학생들을 대거 초청하는 것이다. 전액 장학금 지급으로, 서약서 한 장이면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무슬림 관련으로 사역하는 기관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니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고 본다. 거의 국비 장학생으로 초청하여 공부시켜 주는 대신 무슬림 신앙을 주입하여 다시금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전략이다. 무서운 전략이다. 이것은 핵심적인 사역으로 사람에 대한 공략인 것이다.

 

다섯째, 무슬림 사원 건립이다. 최종적으로 무슬림 사원을 건립하여 그 규모와 위세를 당당히 알리고 안착하는 작전이다. 이것은 최종적인 목표이다. 현지인들의 문화와 반대를 조심스럽게 타진하고 쉬임 없이 연구하고 도전하고 여건을 조성한 연 후에 사원 건립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석유 팔아서 막대한 자금력으로 이러한 전략에 충실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도 무슬림 첨탑이 등장한 지 오래지만, 이제는 세계 곳곳에 자리 매김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여기저기에…….

 

한국의 근래 일간지에 나온 기사 중에, “서울의 이태원은 금식 중”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무슨 말인가 하였더니, 이태원에 있는 무슬림들이 라마단 기간을 맞아 금식하며 기도하고 있기 때문에, 영업이 안될 정도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태원은 금식 중이라는 내용이다. 무슬림들이 금식기도하고 성전에서 엉덩이를 쳐들고 기도하는 모습은 이해가 간다. 그런데 이제는 한국인들 중에서도 머리에 두건을 쓰고서 엉덩이를 쳐들고 기도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올 때에 잡족이 섞여 나와 그들의 신을 섬겼듯이 혼합되어, 참으로 놀라운 일이며 다원주의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부산의 해운대 방향의 한 지하철 역은 무슬림 이름을 사용하고, 그 역사 내부와 화장실에는 무슬림 형상의 그림이나 조각이 새겨져 있다. 참으로 배려(?)가 큰 한국이라는 생각, 타 문화에 접속이 빠른 민족, 아무런 생각 없이 점령당하고 있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는 철부지 백성들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찌할 것인가? 한국교회는 깊은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이다. 안락하고 은혜로운 자리에서 일어나야 할 때이다. 편리주의, 감상주의, 은혜 만능주의, “복, 복 주시옵소서” 하는 기복 신앙에서 벗어나, 사도행전 29장을 써가야 하지 않겠는가?

많은 후진국 피선교지에는 모일 장소가 없어서 헤매고 있다. 한국 교회 파이프 오르간, 화려한 찬양단, 모두가 꼭 필요한 것들이다. 그런데 무엇인가 한국교회의 신앙은 너무나 고급스럽고 사치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필자가 너무 촌스러워져서인지? 아니면 후진국에서 오랫동안 사역하다 보니 그런지? 한국교회가 온상 속의 꽃들의 합창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깨어라 놀라라 근신하라 한국교회여…….

Sergei Lee(모스크바 선교사)

greensea (작성자)

우리가 할 일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에 감사하고

그의 가르침에 목숨을 걸고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이것이 기준이다.

이 기준이 자기 신앙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이 기준이 다른 것을 판단할 근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10.02.18 15:16:30

문서팀장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참 신선한 소재가 돋보이는 글이네요 ㅎㅎ

정말루 야광스타킹이 되고 싶습니다..

요즘 동계올림픽을 보면서 금은동 저 높이 솟은 저 자리에 서기위해

저들은 얼마나 많은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렸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조혜련 아줌마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들은 생각은..

저 사람들은 자신의 부와 명예를 위해 저렇게 열심히 사는데,

세상의 빛인 우리들은 더 열심히 살아야 하지 않을까..

반성하게 되더라구요..

나에게는 조명훈이라는 이름외에도 크리스챤이라는 이름이 하나 더 있습니다..

우리 예람인들 모두 그렇죠 ㅎㅎ

나도 저기 우뚝 솟은 저 자리에 야광스타킹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의 길을 밝혀주는 사람이 되고 싶은 밤이네요^^

2010.02.19 01:05:24
greensea (작성자)

댓글은 감사...

 

그런데 위의 내용과 댓글이 맞지 않네^^

 

잠시 생각해봤다.

이슬람교가 판치는 세상에서

야광스타킹과 같은 빛이 되어야 할 그리스도인^^

2010.02.19 06:30:43

기사 후에 목사님께서 지침을 내려주셨는데도 불구하고 제 속에는,

'어떡하죠..?'라는 근심질문이 사라지지 않네요.

 

잠시 묵상하며 믿음을 일으키고 왔습니다.

 

성균관대에서 수학경시대회를 열더군요.

요즘 4,5,6학년 경시대회 준비를 돕고 있는데, 문제가 쉽잖습니다. ^^;

 

막 얽히고 섥힌 거미줄같은 그림을 내밀면서 삼각형이 모두 몇개냐고 묻는 등..

 

이런 손에 안잡히고. '이걸 어떻게 해?!'하며 당황하게, '에휴..'하고 쫄게 만드는 문제가 나타나면

제가 아이들에게 떠올리라고 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기준'입니다.

차근차근 기준을 잡아서 하나씩 하나씩 세다보면

규칙이 보이고 결국 실수없이 다 세버리거나

관찰하면서 쉽게 푸는 방법을 찾게 된다고 꼬십니다.

 

근데 정말 그렇습니다.

기준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슬람의 알라는 전지전능하지 않은 허방신이니 무슬림들은 이것저것 방도를 찾아 세어가며 전략을 실행해야만 하겠죠.

허방신에 초점을 맞춘 허방전략인데, 그 문제는 결국 틀리고 말겁니다.

기준이 틀렸으니 빠뜨리고 안 센 것도 있을 것이고..

우리 주님을 세어야죠. 여호와,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

 

안타까운 것은, 알라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기준없이 믿을만한 신으로 세고 있습니다.

저도 이런 소식에 마치 전능한 알라인듯 '어떡하지..'하고 있네요.

 

기준을 가지고 허방 말고 진짜 신을 세어야죠.

정신차리고, 주 밖에는 다른 신은 없네.

할렐루야.

 

목사님, 감사합니다.

2010.02.19 03:16: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