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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원 2003.01.17 12:2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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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곡// 이/믿/음/더/욱/굳/세/라/


얼마 전, TV에서 다큐를 시청하다가 거룩한 분노를 잠시 품었었다.
그 다큐의 내용은... 회교권의 외국인 노동자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근로자로 일하던 중에 네 손가락을 프레스에서 잃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공장의 사장님이 아마도 크리스천이었는가 보다.
손가락이 절단된 근로자에게 치료비도 안주고 내어쫓아 헤매던
중 어느 교회의 도움으로 병원에 도착하여 카메라 기자에게
눈물로 호소하는 그의 표정과 말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한국에는 사장만 있고, 하나님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 없어... 하나님 없어"
외국인 근로자가 왜 하나님 없다고 울부짖었는지 아직도 모르겠
으나 그 의미를 느낄수는 있었다.
극단적인 곡해일지는 모르겠으나 그 외국인 노동자의 신음을
통해서 이런 음성을 들을수 있었다.
'이 땅(이 시대)에 하나님 믿는 사람은 많으나,
하나님 처럼 사는 사람은 휘귀하다.'
미국의 유명한 찰스피니 목사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한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 믿는 것도 중요하나
이미 예수를 믿은 사람들이 본래의 위치로 돌아 오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는 예수 믿는 삶을, 신앙생활이라 부른다.
우리는 참으로 질풍처럼 열심히 예수를 믿어왔다.
그러나, 너무 빨리 뛰어 내리려 서두른 나머지 낙하산 대신
도시락 가방을 둘러 메고 뛰어 내린 어느 병사와 같이 십자가
대신 엉뚱한 것을 둘러 메고, 말씀대신 세상을 붙잡고 여기까지
달려 왔는지도 모른다.
자동차에는 아주 중요한 두 가지 기능이 있는데
어느 것 하나도 소흘히 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는, 속도를 증가시키는 엑셀레이터이다.
다른 하나는 브레이크다.
빠르게 달리기 위하여 엑셀레이터만 밟아도 안되지만,
지속적으로 브레이크만 밟고 있어도 문제이다.
두 가지 기능을 잘 조화시켜야 편안하게 목적지에 이를수가 있
다. 브레이크 파열되어 질주하는 자동차를 향하여 '잘 달린
다' '빠르다' 하지 않는다. 그 차의 결말을 알기 때문이다.
자동차에는 달리는 기능과 멈추게 하는 기능이 공존하여 조화를
이루듯이 건강한 성도의 삶이란,
신앙과 생활이 균형을 이룰 때 절정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신앙만 있고 생활이 없다면, 행함 없는 믿음일 것이고
생활만 있고 신앙이 없다면, 믿음없는 행함에 불과할 것이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보고프다.
신앙생활의 조화를 이루어 낸 분들이 사무치게 그립다.
어쩌면 말 자체를 바꾸어야 할지도 모른다.
'신앙생활'이 아니라 '생활신앙'으로 말이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주일을 지켜 예배당에 다녀오는 것 그 이상의 의미이다.
예수 믿는 다는 것은
예수정신으로
예수생각으로
예수문화로
예수의 삶으로
껍데기와 알맹이가 다 바뀌는 것이다.
라이프 스타일의 전환을 말한다.
이 땅의 새벽이슬같은 젊은이들이
삶의 현장에서, 세상 한복판에서, 일터에서,
세상 방식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방식으로 살며
하나님처럼 말하며
하나님처럼 생각하며
하나님 처럼 참으며
하나님처럼 행동하며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이식받아 더 많이 손해보고
더 많이 통곡하고
더 많이 희생하고
더 많이 양보하고
더 많이 억울하고
더 많이 빼앗기고
더 많이 포기하는
그리스도의 참 제자로 세워졌으면 좋겠다.
인도의 썬다씽은 이런 말을 하였다.
예수를 위하여 죽는 것은 어쩌면 쉬울수 있다.
그러나, 매일 매일 세상속에서 예수님처럼 사는 것은 어렵다.'
지금도, 당신과 나를 바라보는 어느 누군가 외국인 근로자의 외침처럼 "당신을 보니 하나님이 안 보인다고... 당신에게는 하나님, 없다고!"....
그러면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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