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
* 제 목 : 고물차와 광란의 질주를..
* 출 처 : 우스개 게시판(HUMOR)
* 올린이 : 정인철(화요뜨락)님
↔↔↔↔↔↔↔↔↔↔↔↔↔↔↔↔↔↔↔↔↔↔↔↔↔↔↔↔↔↔↔↔↔

난 일주일 중 주일(일요일)이 가장 바쁘다. 백수로 살아왔던 90년대(91
~94,97~99. 94~96은 군인이었음)에도 일요일엔 교회에서 하루 종일 일
하고 평일에 푹 쉬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일요일은 일주일 중 가장 바쁘고 앞으로도 평생 가장 바쁜 날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수원에 있는 교회에서 성가대 지휘를 하는 나의 일요일 아침은 새벽 6
시에 시작된다.

교회 오케스트라를 하는 후배들을 데리러 서울로 가야하기 때문인데 수
원까지 오는것도 감지덕지한 나로선 일요일 아침마다 그들을 집 앞까지
태우러 가야 했다.

열 명이 넘는 인원이라 교회에서 승합차를 지원해 줬는데, 오늘의 이야
기는 바로 그 차에 얽힌 에피소드이다.

혹시 여러분들은 '봉고'라는 차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80년대를 주름잡았던 기아의 최고 명차인 봉고 승합차를 보고 아직도
'봉고차' 라고 말할 정도로 승합차의 전설이 되어 버린 그 봉고를 말이
다.

80년대 자동차계의 최고의 신화였던 그 봉고는 어느 덧 역사의 뒤안길
로 사라졌고, 현재는 그 차가 시내에 다니는 것을 볼 수 없다.. 라고
생각하시는 분 혹시 계시면 인류 최후의 봉고를 이 자리에서 볼 수 있
을 것이다. 오늘 얘기의 초점이 내가 몰고 다니는 인류 최후의 봉고이
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의 '봉고'는 주행거리를 표시하는 계기판도 30만 킬로를 넘은
후 고장이 난 채로 몇 년이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오래 되었고(보통 1
년에 2만킬로 탄다) 의자 커버도 다 튿어진 상태지만 아직도 120키로를
쌩쌩 달린다.

가끔 아이들이 투정을 하긴 하지만...

"오빠, 튀어나온 스프링 때문에 엉덩이가 아파"

나도 그런 아이들이 불쌍해서 한 마디씩 한다.

"집에서 솜틀좀 뜯어와라..."

매주 주일 아침, 난 그 차를 끌고 아래의 코스를 한 바뀌 돌아야 한다.

이대 앞 8시, 연대 앞 8시 5분, 신대방 삼거리 8시 30분, 사당을 지나
선릉역에서 8시 50분, 강남구청을 들려 대치동까지 9시, 그리고 수원으
로 가는 고속도로.

지금 내가 말한 코스가 어떤지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잠시 설명하자면,
이 코스는 평균 시속 100키로로 달렸을 때 한 시간이 걸리는 곳이다.
신호등 많고, 차 많이 밀리는(이 코스엔 지하철 공사 코스가 걸려 있어
휴일에도 막힌다) 서울의 현실을 감안하면 족히 한 시간 반 이상은 걸
리는 곳이다. 그런데, 나는 이 코스를 한 시간에 주파를 해야 된다. 좀
더 일찍 서두르면 좋지만 애들이 도저히 못 일어나겠다고 버텨 할 수
없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들은 더 일찍 나오느니 차라리 연주를 포기하겠다고 한다... --;;;

그럼 매일 되풀이 되는 나날들의 상황들 중에 한 대목만 묘사해 보도록
하겠다.

아침 7시 50분. 이대 정문 앞 도착.

'흠... 얘가 지금 나오면 오늘은 좀 여유있게 가겠군...'

그러나, 어김없이 8시를 넘겨 5분이나 지각한 아이.

"(활짝 웃으며)오빠 미안해여~~ ^^"

"아... 머... --;;"

머리속으로 5분만에 가기도 빠듯한 연대를 2분만에 갈 생각을 한다. 결
국 불법 유턴 해 가며 기어이 2분만에 도착.

'흠... 예상보다 2분 늦었으니 신촌 사거리에서 불법 우회전 한 번만
하면 다음 코스는 시간내로 가겠군...'

나름대로 만족한 여유를 즐기면서 먼저 탄 녀석과 농담 한 마디를 던진
다. 그러나, 연대 나와 있어야 할 녀석이 아직 안 나와 있다.

"어.. 오빠 ^^ 미~ 안~ 해~ 여~~ ^^"

10분 늦게 나타난 녀석..

"어... 머... --;;;;;;"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일단 머리속으로 코스를 수정한다.

'신촌 앞에서 불법 우회전 후, 마포대교에서 불법 좌회전 한 번, 노량
진 쪽에서 불법 유턴...'

그때부턴 운전에만 집중한다. 평균시속 130키로로 한강 다리를 건너고
여의도를 통과한다. 간신히 시간에 맞출 수 있을 듯..

그러나, 이 계획도 막바지 다다른 지하철 7호선 공사 때문에 수정이 되
야 된다.

장승배기에서 평소에는 5분 내로 통과해야 될 신호대기가 30분 정도 걸
릴 만큼 줄을 서 있다. 난 차 안에서 마구 잔대가리를 굴린다.

'원래 2차선인데 공사 관계로 1차선이니까.. 아마 맞은 차선의 차도 우
리 신호의 좌회전 차들 때문에 못 올거야. 그렇다면...'

즉시 맞은 편 차선으로 뛰어든다. 그리고는 광란의 질주를 한다. 휴일
아침이라 경찰도 보이지 않는다. 사실.. 보여도 상관없다. 그냥 도주할
생각이니깐...

"빠빠빠빠아아앙!!!"

아풀싸!! 계산에 넣지 않은 좌측 도로에서 차 한 대가 나왔다. 그 차는
정면으로 달려오는 내 차를 보고 기겁을 하며 크락션을 울린다. 그러나,
난 멈출 수 없다. 여기서 멈추면 시간 내로 갈 수 없다.

유니의 대사처럼 아쉬운 넘이 피한다고, 결국 상대방 차가 인도로 올라
간다. 난 사과하는 의미의 '비상등'을 한 번 깜빡거려 준다... --;;

이쯤되면 차에 탄 아이들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붙잡을 수 있을만한
것들을 다 붙잡는다. 마침 지하철 공사중이라서 길이 울퉁불퉁.. 난 가
끔 아이들에게 근사한 놀이를 선물한다.

"얘들아!! 턱 나왔으니까 다들 준비해!!"

그리고는 붕~~~ 공중을 난다. 아이들 공중에 떠오른 악기 케이스 잡기
바쁘다.

그러나, 나에게 암말 못 한다. 자기들이 늦게 나온 죄로 내가 달릴 수
밖에 없었음을 알고 있으니깐.

난 본의 아니게 다른 운전자들을 여러 번 놀라게 만든다. 일단, 반대차
선을 질주하는 내 차를 보고 한 번 놀라고, 무법질주하는 그 차 겉에
큼지막히 '명성교회'라고 찍힌 것을 보고 두 번 놀라고, 그 차가 '베스
타'도 아닌, '이스타나'도 아닌 '봉고'차라는 사실에 또 놀라고, 교회
차를 모는 사람이 갖고 있을 선량한 외모와는 달리 깍두기 스타일의 내
외모에 놀라고, 봉고 안에 빽빽히 탄 연주복 정장을 입은 여자들을 보
고 놀란다.

가끔은 그 녀석들 차에서 내릴 때 내게 그런다.

"오빠, 일수 찍구 올게..." --;;;;;;;

전에 애들하고 같이 회식하려구 강남 씨티극장에 그 봉고를 끌고 간 적
이 있었다. 낡은 봉고에서 정장 입은 여자들 열 명이 내리는 것을 보고
놀란 사람들은 깍두기 머리에 검은 색 정장을 입고 내리는 내 모습 한
번 쳐다보고, 봉고차 한 번 쳐다보고 기가막혀 하더라.

참고로, 내 외모는 '조직'의 그 모습 그대로다. 헬스를 오래한 몸도 몸
이지만 머리 스타일도 깍두기 아니면 올빽이고 주일엔 언제나 검은색
양복에 차이나 셔츠를 입는다. 오죽 하면 명절 때 처음 본 먼 친척 여
자애가 날 보곤 시비 걸러 온 조폭인줄 알고 쫄았을까.. 교회에서도
내가 '삼수생의 사랑이야기' 같은 애정소설을 쓰는 사람인줄 아무도 모
른다. 아니, 꿈에도 상상 못 한다... --;;

위의 한 말은 확실한 사실이니 확인하고 싶은 사람은 일요일날 8시 10
분경 연대 앞으로 나와라. 그럼 노란색 봉고를 세워 놓고 시계를 보며
초조하게 왔다갔다 하는 조폭 한 녀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지금 고백하지만 이번주부터 난 '베스타'로 바꿔서 타고 다닌다.
거기에는 눈물이 날 만큼 슬픈 사연이 있었으니...

한 달 전,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봉고를 몰고 140키로(게기판 거의 끝.)
로 서울로 향한 고속도로를 달렸다. 그 때, 갑자기 내 주위의 모든 차
들이 나에게 하이빔을 쏘고 크락션을 울리고 난리를 쳤었다. 난 못 본
척 하고 죽어라 더 달렸는데 (예전에 누가 그랬잖은가. 티코는 쪽팔려
서 더 빨리 달린다구.. 나 역시 쪽팔려서 더 빨리 달렸었다) 어떤 차가
기어이 날 쫓아와서는 창문으로 뒤를 보라고 마구 가리켰다.

그제서야 뒤를 본 나.. 기겁을 했다. 차에서 마구 연기가 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연기가 났는지 모르겠는데 연기는 거의 화염같이
차를 뒤덮고 있었고 난 잠시나마 고민을 하게 되었다.

보통,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여기서 당연히 차를 세웠어야 했다. 그
러나,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차를 세울 수 없었다. 고속도로 한 가운데
서 차 세워 놓으면 우리 교회는 지휘자 없이 예배를 드려야 했기 때문
이다.

결국 난 연기가 타오르는 그 차를 몰고 그냥 달렸다. 일단, 차를 서울
사는 친구네 집까지 끌고 가서 친구 차를 빌려 타고 몇 명의 아이만이
라도 데리고 내려오자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호들갑 떠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나는 친구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참고로, 친구는 군대에서 차량 정비과 출신이다.

"친구야. 내 차에서 연기가 난다..."

"얼마만큼 나는데?"

"밖에서 보면 차 모습이 연기에 쌓여서 안 보일 정도야"

"헉... 부동액이 터졌나 보네. 부동액 수치가 얼마나 올라갔니?"

"빨간색까지 올라왔어. 그러나, 친구야. 난 너네집까지 달려야 되. 여
기서 멈출 수 없어"

"안 되는데... 차에 불 나..."

친구는 조심조심 몰고 오라고 했다. 그러나, 난 급하게 달려야만 했다.
연기에 질식하지 않으려면.. 친구네 집에 도착하니 친구는 달려오는 내
차를 보고 미친 듯이 호수를 뿌려댔다.

친구에게 물었다.

"어디가 고장난 거야?"

"너무 오래되서 그래. 이제까지 타고 다녔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러나, 그 다음 주 나는 그 차를 수리해서 다시 서울로 끌고 가야 했
다. 내 친구는 어이 없다는 듯 한 마디 했을 뿐이었다.

"계기판 고장 난 게 언젠데... 30만이 넘었어..."

그러나, 그 차와 나의 인연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저번 주, 이
번에는 아이들을 다 태우고 고속도로를 달려 내려오는데 또 다시 연기
가 난 것이었다.

"오빠!!! 연기 나여!!!"

난 조용히 말했다.

"그 정도면 괜차나. 안 죽어"

아이들.. 일단 날 신뢰했다. 아니, 차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 그냥 그
러려니 했다. 그러나, 갑자기 차에서 타는 냄새와 연기가 차를 가득 메
우자 아이들이 비명을 질러 대기 시작했다.

"악!!! 오빠!!! 차에게 불나요!!"

그녀들의 소리에 놀라서 일단 차를 세웠다. 그녀들, 고속도로 한 가운
데서 모두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목숨보다 귀한, 최소 삼천만원 이
상되는 악기들도 미처 차에서 못 꺼내고 몸만 튀어나온 아이들.. 역시
그녀들은 처녀였다. 아줌마들 같았으면 죽는한이 있더라도 악기 먼저
꺼냈을 것이다.

하여튼, 차에서 튀어나온 아이들, 소리를 지르면서 차에서 10미터 이상
을 도망갔다.

난 운전석에 앉아서 멀어져 가는 그녀들의 모습을 보며 소리쳐야 했다.

"얘들아!! 안 죽으니까 빨랑 다시 와!! 교회까지 갈 수 있을거야!!! 교
회 늦는다니깐!!"

결국.. 검사 결과 그 차는 터진 데 또 터졌다는 진단을 받았다. 너무
낡아서 이젠 고쳐도 고쳐도 또 터진단다.

그러나 그 차... 또 수리해서 지금도 우리 교회 앞마당에 있다... --;;

목사님은 나의 생명이 걱정되신 건지, 아니면 예배 때 지휘자가 없으면
안 되서 그러셨는지 모르지만 8년밖에 안 된 '베스타'로 바꿔 주셨다.

지금까지 얘기한 것, 안 믿어지는 사람도 있을 지 모른다.

안 믿어지는 사람이 있다면, 일요일 아침 일찍 위에서 언급한 코스에
나와 있어라. 내 얼굴 궁금하다는 독자들.. 마찬가지로 나와 있어라.
'명성교회'라고 써 있는 승합차 운전석에 깍두기나 올백의 남자가 앉아
있다면, 차 밖에서 초조하게 서성거린다면 와서 말 걸어라. 내가 밥 한
번 쏘겠다.

삭제하시겠습니까?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