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나눔과 욕망 | ||||||
이준수 목사(예수품은교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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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은 한국교회에 대하여 그토록 냉담한가? 세계 최대교회가 한국에 있고, 새벽마다 목회자들이 부르짖어 기도하며, 제자화의 열정으로 이렇게 훈련하는데, 왜 사람들은 기독교를 그토록 비평하며 심지어는 ‘개독교?’라고 냉담하게 반응하는가? 한마디로 ‘나눔’이 없기 때문이다. 나눔은 인간의 기본 원칙이다. 나눔은 인간답게 더불어서 살기 위한 공동체의 필요충분조건이다. 그러므로 나눔이 없는 국가, 나눔이 없는 교회는 공동체를 세우기는 고사하고 공동체를 분열케 한다. 나눔이 없으면 공동체는 상처받게 되고 분열하게 되며 심하게는 파괴하기까지 한다. 그러므로 나눔이 없는 사람들의 성공, 나눔이 없는 사람들의 정치, 나눔이 없는 사람들의 지식, 나눔이 없는 사람들의 가진 것은 공동체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들이 법률가라할지라도, 교수라 할지라도 심지어 그들이 목회자라 할지라도 그것은 위선이며 그것은 잃어버린 양심이고, 그것은 거짓된 성공임에 틀림없으리라. 성경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마22:37)고 하셨지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9)고 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성경을 진리로 안다면 이웃을 사랑하고 ‘나눔’을 실천해야 마땅하리라. 예수님은 가난한 한 형제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나눔을 실천케 했을 때 오천 명의 풍요로움을 가르치셨다. 나눔은 기독교의 핵심사항이다. 기독교가 나누지 않는다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기독교가 나누지 않고 정부, 재야, 사회 층에 나누라고 하는 것은 자체 모순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은 나눔을 위함이다. 십자가로 생명까지 나누심으로 부활의 생명력을 우리 안에 부어주신 것이다. 우리는 나눔을 실천해야 한다. 만일 내가 지식을 가졌다면, 권력을 가졌다면, 물질을 가졌다면, 건강을 가졌다면 그것들을 나누어야 한다. 사실 어찌 보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누군가의 공급을 통해 우리가 얻은 것들이리라. 그러므로 나눔은 당위성을 갖는다. 나눔은 의무요 마땅히 감당해야 할 책임이기도 하다. 혹 내가 가진 것이 적다해도 우리는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가진 것이 ‘오병이어’뿐이고, 상황이 미자립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나눔’을 실천해야하는 것은 나눔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오병이어’로 또다시 우리에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제 나눔은 우리에게 오히려 축복의 통로요, 생명이자 특권이기까지 하기에 나눔을 생활화해야 한다. 왜 나누지 못하는가? 그것은 ‘욕심’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신 후 모든 것을 풍요롭게 주셨지만 아담은 선악과까지 취해서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엄청난 욕심 때문에 타락하고 말았다. 욕심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나눔을 실천해야 한다. 나누려면 비워야 한다, 목회자는 성도숫자를 비우고 물질에 대한 욕심을 비워야 한다. ‘교육은 욕구 억제’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지식인이라면 우리가 무엇인가를 발견했다면 우리는 욕구를 억제하고 욕망을 버려야 한다. 욕심보다 커진 ‘욕망’ 그것을 버릴 때 우리는 ‘나눔’을 실천할 수 있으리라.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출처 http://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7555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