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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바친 한국교회 부흥에 감격”
2012년 05월 31일 (목) 16:54:47박용미 기자  mee@kidok.com

한국전쟁 고아 사역 힘썼던 미국 선교사 30명 60년 만에 방한
당시 돌보던 학생과도 재회 … “손길 필요한 곳 찾는 것이 선교”

  
 ▲ 1951~1972년까지 대구지역 직업학교와 고아원 등에서 의료봉사, 학교수업, 물자구제 사업 등을 진행했던 선교사들의 모습. 
 

한국전쟁 이후 폐허가 된 이 땅에서 전쟁고아들을 위한 사역에 힘썼던 미국 선교사들이 60여 년 만에 다시 한국 땅을 밟았다.

  
 ▲ 한국전쟁 당시, 한국 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구제활동을 펼쳤던 미선교사들이 이 땅을 다시 찾아 감격의 시간을 보냈다. 
 
이번에 방한한 선교사 30명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한국에 파송돼 1972년까지 대구지역을 중심으로 고아와 과부 등 불우한 한국인들을 도왔다. 특히 1953년 2월 설립한 직업학교는 고아들을 위해 일반 과목을 가르치는 것은 물론 다양한 기술을 가르쳐 자립 기반을 마련해 줬다. 대부분의 고아들이 무지와 굶주림, 가난과 외로움으로 고통 받을 때 고아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옷, 거처할 숙소를 제공했으며 직업학교 봉사 외에도 의료 활동, 보육원 교사 훈련, 물자구제 사업 등 한국 재건 사업에도 힘을 쏟았다.

청춘을 바친 이 땅에 다시 돌아온 감회는 남달랐다. 총 74명이 한국에서 활동을 펼쳤지만 현재 생존해 있는 사람은 30명. 열정과 사명으로 불탔던 20대의 선교사들은 이제 백발이 성성하고 제대로 걸을 수 없을 정도의 노인이 됐다. 이들은 집안 곳곳에 한국에서의 추억이 담긴 사진과 기념품들을 두고 그리움을 달랠 정도로 한국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다시는 한국에 돌아올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은 자신들을 잊지 않고 초청해 준 한국에 감사를 표했고, 발전한 경제상황과 선교사 파송 국가 2위를 차지할 정도인 기독교의 부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 직업학교에서 자신이 가르쳤던 학생을 60년 만에 다시 만나 포옹하고 있는 선교사의 얼굴에 기쁨과 반가움이 가득하다. 
 
로버트 거버(76세, 당시 구호물자 분배 담당) 선교사는 “전쟁은 수많은 사람들을 생이별하게 했고, 그 때 한국인들의 상황은 얼마나 끔찍하고 가난했는지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거버 선교사는 “하지만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한국인들은 마음이 넓었고, 우리가 한국인들을 사랑한 것 이상으로 우리들을 사랑하고 아껴줬다”며 “우리가 한국인들을 잘 이해하지 못해 미국식을 강요했던 것을 지금도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고백했다. 모든 것을 다 베풀고도 더 주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는 주님의 마음이었다.

결혼한 지 6개월 만에 한국에 오게 된 베티(82세, 당시 간호사 봉사활동) 선교사는 고아원에서 일하면서 그들을 뜨겁게 사랑했고, 미국에 돌아가서는 전쟁고아 2명을 입양할 정도로 한국에 대한 애정이 컸다. 작년에 사망한 로이 선교사의 아내 로이스 밀러 씨는 늘 한국을 보고 싶어 했던 남편 대신 한국 땅을 밟으며 “남편은 한국에서의 경험이 인생에서 가장 훌륭하고 의미 있는 일이었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다”고 추억했다.

선교사들은 아직까지도 운영되고 있는 직업학교를 방문하고 직업학교를 거쳐 갔던 학생들을 만나면서 감격하기도 했다. 한국전쟁 당시 직업학교를 졸업한 은헌기 씨는 “우리를 사랑해줬던 선교사님들을 만나는 것을 오랫동안 꿈꿔왔는데 이렇게 재회한다고 생각하니 제대로 잠을 잘 수도, 옷을 챙겨 입고 나올 수도 없을 정도로 들뜨고 설렜다”면서 “고아라는 말은 힘들고 버거웠지만 주님과 선교사님들의 사랑은 따뜻했다”고 전했다.

은 씨는 “그 곳은 인격형성의 장이었고 사회로 진출할 수 있는 통로였으며 무엇보다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동산이었다”고 말하고 “이런 자리에서 성숙하고 아름답게 성장한 우리들이 선교사님들을 만나 감사를 전하고 자랑스럽게 인사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한다”고 끝내 눈물을 흘렸다.

선교사들은 직업학교가 있는 대구 지역과 서울의 관광명소를 방문하고, 선교사들을 초청한 CTS 기독교방송 등을 견학하면서 한국에서의 추억을 마무리했다. 이들은 돌아가는 마지막 날까지 자신들을 기억해준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감사하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웠던 한국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고 떠납니다. 우리의 사역은 예수님의 희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조금이나마 받은 것이 있다면, 주님의 손길이 필요한 그 곳에 찾아가십시오. 그것이 예수님께 보답하는 길입니다.” 모든 헌신을 오직 주님께 영광으로 돌렸던, 한국을 사랑한 모든 선교사들의 한결같은 마음이었다.



출처

http://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755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