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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던 성형외과 의사, 선교하는 ‘정맥류 권위자’ 되기까지

크리스천투데이 오유진 기자 yjoh@chtoday.co.kr  오유진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입력 : 2012.06.06 06:51
스와질랜드에 기독 대학·병원 설립하는 연세에스병원 심영기 원장

잘나가는 성형외과 의사였던 심영기 원장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미용성형에 대해 고민이 생겼다. 하나님께서 각자 개성에 맞게 만들어주신 얼굴을 인위적으로 고치는 일일 뿐 아니라, 시술이 보람과 즐거움이 아닌 돈을 버는 수단이 되어버린 것에 회의를 느끼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틈만 나면 청계산기도원을 찾아, 질환을 건강하게 회복시키는 시술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철야기도를 드렸다.

▲연세에스병원 심영기 원장.

1994년 어느날, 진료실에 한 아주머니가 찾아왔다. “선생님, 제 다리에 튀어나온 혈관을 없애 주세요. 독일에서는 주사로도 쉽게 할 수 있다고 하던데요”. 바지를 걷어올려 보이는 그 아주머니의 다리는 툭 불거진 혈관이 보기에 흉했다. 하지정맥류였다. 심영기 원장은 그 날 이후 아주머니가 했던 말이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혹시, ‘이것이 하나님의 기도 응답인가’ 하는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심 원장은 독일 지인에게 연락을 해 주사로 정맥류를 치료하는 곳을 물어봤고, 하지 정맥류의 최고 권위자인 쾰른 에두아르두스 클랑켄하우스의 릴 교수를 찾아갔다. 그는 하나님께서 열어주시고 인도해주시는 길이라는 확신 가운데, 기뻐하며 완벽하게 기술을 습득해나갔다.

정맥류는 판막의 고장으로 피가 아래로 쏠려, 다리 정맥이 튀어나오는 질병이다. 통증이 없다 하더라도 오래 두게 되면 다리가 썩기도 하고, 피의 순환이 원활하지 않아 여러 합병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심 원장이 릴 교수에게 정맥류 시술법을 배우던 모습.

그러나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국에서는 정맥류를 별로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특별한 증상이나 통증이 없기 때문에, 궤양이 생기거나 아주 보기 흉하게 혈관이 튀어나와야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을 했다. 수술을 해도 재발률이 높고, 흉터도 크게 남았다. 그래서 의사들에게 이런 하지정맥류 분야는 ‘미운오리새끼’였다.

심 원장의 정맥류 치료에 대한 관심은 비수술 치료법에서 시작됐다. 그때 알게 된 것이 독일과 프랑스에서 주로 하던 혈관경화요법이었다. 그가 본 독일 릴 교수 팀의 시술 장면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주사로 튀어나온 혈관을 마술처럼 없애주는 장면은, 국내 시술과 비교할 때 그야말로 경이로웠다.

처음엔 냉정했던 릴 교수에게 끈질기게 매달린 그의 정성은 릴 교수의 마음을 열게 했고, 혈관 경화요법, 정맥류 진단법, 혈관검사법, 일반 수술법 등 노하우를 배워나갔다. 신대륙을 만난 기분을 느낀 심 원장은 매우 열정적으로 배움에 임했고, 릴 교수는 자신의 비법을 있는대로 다 보여줬다.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하지정맥 치료를 시작한 95년, 그의 병원 전화는 예약 문의로 불통되기에 이르렀고, 전국 각지에서 온 환자들로 몇 년째 점심 먹은 기억이 없다. 국내 최초로 하지정맥류 독일식 전문 치료를 도입한 심영기 원장은, 그 권위를 인정받아 대한정맥학회를 창립하고 동시에 부회장으로 역임했다. 그러면서 그는 국내 의료진에게 치료사례들을 전하고, 한국식에 맞게 업그레이드된 시술법을 공개했다.

덕분에 현재 하지정맥류 분야 시술 전문 의사들이 부쩍 늘었고, 환자들도 빠른 시간 내에 치료받을 수 있게 됐다. 그는 현재 한국의 하지정맥류 시술 수준은 독일보다 더 뛰어나다는 자부심을 갖게 됐고, 그를 가르쳤던 릴 교수도 “내가 자네한테 배워야겠다”며 실력을 인정했다.

그의 병원은 정맥류 치료 분야에서 입지를 굳힌 후 규모를 확대해 소아과, 영상의학과, 통증클리닉, 종합검진센터를 추가하고 림프부종클리닉과 다리부종클리닉을 개설했다.

이어 바로 옆 건물 일부를 임대, 피부클리닉과 에스테틱을 개설한 ‘연세SK병원’으로 확장했다. 그리고 ‘연세에스병원’으로 개명하면서 100여명의 직원들과 함께 분야별 신뢰도를 높여가고 있으며, 최근엔 외국 환자들의 방문도 끊이지 않고 있다. 35,000건이 넘는 동양 최다 정맥류 시술 경험을 보유하고 있으며 최단 회복기간, 최소 흉터, 최신 치료법을 개발한 것이 그 전문성을 확증하고 있다.

심 원장은 “정맥류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귀한 선물이다. 작은 끈 하나도 놓치지 않으시고 연결해 고리를 엮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나는 무한한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나름대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전 세계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노력하고 있는 것도 그 일환”이라며 의료선교도 시작했다.

그는 불과 얼마 전까지도 교회와 기독교를 극도로 싫어했던 사람이었다. 신앙심이 깊은 그의 아내는 믿지 않는 그를 위해 기도하다가, 김성일 작가가 쓴 「땅끝으로 가다, 땅끝에서 오다」라는 소설을 그에게 권했다. 그는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와 멋진 문체에 매혹돼 「제국과 천국」 「홍수 이후」 「성경과의 만남」 등 김 작가의 소설과 간증집을 읽어내려갔다.

그의 부부는 마침내 김성일 작가가 인도하는 <헤브론 부부성경공부모임>에 나가게 됐다. 아내 친구의 남편이 모 방송국 PD라고 해서 더욱 열심히 나갔다. 성형외과 의사가 PD와 알고 지내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얄팍한 계산 때문이었다. 모임에 몇 번 나간 그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성경공부가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상의 향락을 버려야 하는 삶 앞에 그는 주저했다.

그리고 얼마 후,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가 있었다. 심 원장과 술자리를 같이하던 친한 친구가, 그보다 더 열성적인 기독신자가 되어 그를 자신의 교회로 초대한 것이다. 따뜻한 환영과 함께 담임목사의 영접기도를 받게 된 그는 생각지도 못한 체험을 한다. 요한복음 3장 3절을 주제로 한 기도 소리는 그의 심령에 파고들어, 기쁨과 행복이 몰려와 눈물을 흘렸다.

마치 꽁꽁 묶인 쇠사슬에서 풀려난 해방감을 느낀 그는, 그토록 싫어했던 교회에 가고 싶어 주일을 기다리게 됐다. 성경책을 가방에 넣어 다니는 습관도 생겼고, 목사님의 설교를 듣거나 성경 혹은 신앙서적을 읽다가 깨달은 점은 곧바로 메모를 해, 신앙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갔다.

그는 자신의 사명이 해외의료선교에 있다고 믿는다. 특히 몽골선교에 특별한 비전을 가진 권용택 장로가 그의 원무행정일에 함께하고, 몽골문화원과 협력해 몽골선교가 구체화됐다.

▲스와질랜드 의료봉사 당시 내원한 한 소년과 기념촬영한 심영기 원장.

‘아프리카 대륙비전’ 선교단체를 소개받아 스와질랜드에 있는 스와지기독대학을 세우는 일에 동참하기로 하고, 동대학 의과대학 부속병원 설립추진위원장을 맡았다. 동 대학은 종합대학 설립인가를 받아 공사가 진행 중이다. 이밖에 나섬공동체, 사단법인 나누리, 달리다굼선교회 등과의 협력을 통해 사명을 구체화하고 있다.

심 원장은 “내 인생에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한 분이 있다. 바로 나의 하나님이다. 그분은 탐욕적이면서 교만하고 이기적인 나를 이 모양 저 모양으로 깎고 다듬으며 지금까지 인도하셨다. 그리고 오랜 기간 인내하시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주셨다. 아무 자격도 없는 나를 축복해주신 그분의 은혜에 무한한 감사와 영광을 드리고 싶다”고 신앙을 고백했다.

또한 의사로서 남은 생애에 대해 “결국 의사 사명은 질병과 싸우는 것이다. 난치병 가운데 제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것은 림프부종이다. 의사의 생애를 바쳐서 림프부종 개발 관리에 매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출처

http://www.christiantoday.co.kr/life.view.htm?id=2560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