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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2년 5월 27일
본문: 사도행전 1:1~8
설교: 김동호 목사
제목: 성령이 임하시면

▲김동호 목사(높은뜻연합선교회) ⓒ 크리스천투데이 DB
성경은 모든 사망과 실패의 원인으로 죄를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로마서 6장 23절이 죄의 삯은 사망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죄의 원인과 뿌리를 욕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으니라”(약1:15)

그런데 사도행전 2장 17절 말씀을 보면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 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환상’이라는 말과 ‘꿈’이라는 말이 참 좋습니다. 특히 늙어도 꿈을 꾼다는 말씀이 너무 좋습니다. 그런데 환상이라는 말과 꿈이라는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것도 일종의 욕심 아닐까요?

꿈과 욕심은 겉 모양이 닮았습니다. 그런데 속이 다릅니다. 저는 꿈과 욕심의 차이를 ‘하나님의 영’에서 찾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속에 있으면 꿈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속에 없으면 욕심입니다.

그래서 꿈과 환상은 욕심 같아 보이지만 생명과 축복이 되는 것이고, 욕심도 얼핏 보면 꿈과 환상 같아 보이지만 사망과 저주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난 사람의 욕심은 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의 꿈과 환상은 욕심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대개 꿈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게 욕심인 경우가 많아서 그 욕심 때문에 인생을 망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욕심을 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저지르는 실수 중에 하나는 욕심과 함께 꿈을 버린다는 것입니다. 욕심과 함께 꿈을 버리면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사람은 될 수 있으나 세상을 바꾸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려고 하는 패기와 의지마저 상실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제가 욕심의 사람이 되는 것도 겁이 나지만, 아무런 꿈과 환상이 없는 무기력한 사람이 되는 것 역시 겁이 납니다. 욕심을 버리고 꿈과 환상을 지니는 것이 그런데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마치 칼날 위에 올라서는 것 만큼이나 힘들고 어렵습니다. 칼날 위에 올라서서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중심을 잡는 것처럼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칼날위에 올라서는 것과 같은 중심을 잡는 비법이 바로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 즉 하나님의 영은 무엇일까요?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성령 하나님을 영접하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과 하나님의 철학과 가치관과 인생관을 공유하게 됩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성령 하나님이 내 마음에 계시게 되면 제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과 같아지고, 제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같아지고, 제가 가지고 있는 철학과 가치관과 인생관이 하나님과 같아지고 제가 가지고 있는 뜻이 하나님의 뜻과 같아지고, 제가 하는 말이 하나님의 말씀과 같아지게 됩니다. 세상에 그처럼 기막히고 귀한 것은 없습니다.

저는 세상과 육을 무시하거나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가끔 아니 자주 오해를 받습니다.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나 갖게 되는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과 가치관과 철학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 그보다 더 귀하고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그 말씀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열심히 성령을 기도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러다가 오순절 날 하나님의 약속대로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을 받자 사람이 변하였습니다. 성령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과 권세가 있습니다. 사람이 변하면 세상이 변합니다. 그와 같은 역사가 초대교회에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저들이 성령을 받게 되자 사람이 변했습니다.

욕심으로 가득 찼던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누구도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네 것 내 것 할 것 없이 서로 필요를 따라 나누며 함께 살았습니다. 사람이 변하니 사람이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사람들이 좋아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에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처럼 즐거운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모이기를 힘썼고 모이면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떡을 떼었습니다.

초대교회 때 예수 믿는 사람들끼리 함께 모여 산다는 것은 세상에서의 모든 삶을 포기해야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세상을 떠나 지하 동굴 묘지 카타콤에서 살았습니다. 정말의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카타콤에 모여 함께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수가 적지 않았습니다. 적지 않은 것이 아니라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많은 핍박이 있었습니다. 많은 순교자들이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화형에 처해지기도 하고 사자의 밥이 되기도 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타콤의 예수의 사람들은 점점 그 수가 늘어만 났습니다.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저들이 성령으로 거듭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 사람이 바뀌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이 바뀌니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카타콤이라고 하는 세상은 고통스럽고 불편하고 불행한 곳이라고 이해하겠지만 저들은 그곳이 천국 같았습니다. 아니 실제로 천국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당연히 그리고 기쁨으로 카타콤의 생활을 선택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나 제자는 12명 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 때문에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까지 성령을 받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들을 발견해 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가 되지 않고도 얼마든지 예수님을 좋아할 수 있으며, 성령을 받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예수님의 제자처럼 모든 것을 보려두고 예수님을 따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승천하시는 그 순간까지 성령을 받지 못했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를 못했으니 예수를 따르는 열심과 열정은 있었으나 예수님 즉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과 뜻은 품지를 못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들은 삼 년이나 예수님을 따랐지만 예수님과 다른 마음과 생각과 뜻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회복되면 자기들은 개국공신이 되어 한 자리씩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늘 누가 더 높으냐를 가지고 실갱이를 하였고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은 하나는 예수님의 오른 편에 또 다른 하나는 왼 편에 앉게 해 달라고 미리부터 청탁을 하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승천하시려고 하자 놀라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함이 언제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황망하게 하늘로 가시면 이스라엘은 언제 해방이 되고 자기들은 언제 꿈꾸던 (욕심내던) 일을 이룰 수 있게 되느냐를 물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아주 맥을 짚는 듯한 기막힌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십니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7-8)

앞에서 말씀드린 바대로 오순절 날 성령을 받은 후에 제자들은 진정한 의미의 제자들이 되었습니다. 저들의 욕심과 야망은 진정한 꿈과 환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에만 관심이 있던 사람들이 진정한 의미의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 즉 이스라엘 나라를 하나님의 나라로 만드는 일에 대한 꿈과 환상을 가지고 그 꿈과 환상을 이루기 위하여 저들은 정말 죽기까지 충성하는 근사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 우리 높은 뜻 씨앗이 되어 교회에 나아와 예배하시면 말씀을 들으시는 사랑하는 우리 교우 여러분들과 이 곳 저 곳에서 이 말씀을 들으시는 모든 분들이 다 성령으로 거듭나 그 마음과 뜻과 생각이 다 하나님과 같아지는 사람들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2007년 미국에서 일 년 동안 안식년을 하였었습니다. 뉴저지에 큰 저택(제 눈에는)을 가지고 계시는 어느 가정이 저에게 두 개의 화장실일 딸린 침실과 응접실이 딸린 큰 서재를 내주셔서 얼마나 감사하게 안식년을 보냈는지 모릅니다. 그 가정의 부인은 아주 뛰어난 전문의셨고 남편은 당시 신학을 하고 있던 전도사님이셨습니다. 그 전도사님은 지금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그 목사님은 아주 기도를 많이 하시는 목사님이셨습니다. 신앙의 성격으로 이야기하면 순복음적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 기준으로 보면 저는 아주 엉터리 목사였습니다. 방언도 할 줄 모르고, 안수 기도도 잘 하려고 하지 않고, 신령한 구석이라고는 눈을 씻고 보아도 없어 보이는 그런 스타일의 목사였습니다.

그렇게 전혀 다른 성격의 목회자가 한 집에서 일 년을 함께 살았습니다. 아주 해피하게 살았습니다. 나중에는 아주 가족같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뉴저지에 가면 그 집이 마치 제집 인듯 느껴집니다.

그런데 그 댁에서 안식년을 하면서 제가 아주 엄청난 상을 받았습니다. 그 목사님이 저와 일 년을 함께 지내면서 내려 준 평이 제가 평생 받은 상 중에 가장 큰 상이라고 느껴질만한 것이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저에게 ‘목사님은 참 영적인 분이시다’라고 평을 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 말이 그렇게 좋았습니다. 저는 방언 기도도 할 줄 모르고, 예언 기도도 할 줄 모르고 신유의 은사도 없는데 어찌보면 그와 같은 일에 깊이 빠져 있는 목사님이 저를 판단하거나 비판하지 않고 오히려 저를 영적인 목사라고 평해 주었다는 것이 저는 참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참 조심스럽지만 간증하고 싶습니다. 저는 성령으로 거듭난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신령한 목사와 너무나 거리가 멀어서 저 조차도 내가 과연 성령을 받은 사람인가에 대한 회의가 많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저도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환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 한 주간은 저는 제주도에 있었습니다. 한미준이라고 하는 목회자 모임의 수련회가 제주도에서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수련회라고 하기 보다는 친목회라고 하는 것이 더 정직합니다. 특별한 예배와 강의와 토론 같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냥 함께 모여 이야기하고 밥 먹고 신나게 올레 길을 걸어 다녔습니다.

잘못하면 욕을 먹을 수도 있지만 제 양심적으로는 아주 유익한 모임이고 그와 같은 친목과 휴식이 더 건강하고 의욕적인 목회와 사역을 위하여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빠지지 않고 있습니다.

수련회는 수요일 날 끝났지만 저는 며칠 더 있다가 토요일 어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한미준 멤버 목사님 사모님 중에 암으로 세 번이나 수술을 받으시고 회복 중에 계신 분이 계셔서 그 사모님과 목사님을 격려하는 마음으로 좋은 콘도를 하나 빌려서 함께 잘 쉬다가 올라왔습니다.

자연 시간이 많아 이런 저런 대화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그 대화가 깊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뜨거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목사님 부부가 제가 하고 있는 말라위 그물리라 사역에 관심을 가지시기에 흥분하여 그 사역을 설명했더니 함께 흥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결론은 이야기하면 그 목사님의 교회도 꽤 큰 교회인데 아예 함께 말라위 사역에 참여하기로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거의 매주 함께 모여 책을 읽고 공부하고 기도하는 12명 정도의 목회자들이 있는데 그 목사님과 교회들도 선동(?)하여 함께 그물리라 사역에 올인해 보자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성공하면 그 모델을 가지고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의 어려운 나라 몇 곳을 더 선택하여 그런 사역을 확장하고 뿐만 아니라 그런 협력 모델을 국내 사역에도 접목하여 지방의 작은 도시 하나씩을 선택하여 거기에 있는 작은 교회와 목회자들을 집중적으로 지원하여 정말 그 지역의 교회들이 지역을 살리는 일을 해보자는 이야기를 정말 침 튀기며 이야기하다 어제 돌아왔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소를 보면 푸드 코트들이 있습니다. 손님들이 식사를 하는 곳은 하나인데 여러 식당이 함께 그곳을 공유하며 장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음식점들도 경제적이고 손님들도 아주 편리해 집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선교와 사역도 저런 식으로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늘 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열매나눔 재단의 여러 사역들도 우리 혼자 하지 말고 우리가 판을 깔아 놓았지만 그것을 우리 것이라고 욕심 부리지 말고 한국 교회에 내 놓고 작고 큰 교회들이 말라위 그물리라 사역에 푸드코트에 입점한 식당들 처럼 사역 하나씩을 맡아 어떤 교회는 학교를, 어떤 교회는 교회를, 어떤 교회는 보건소를, 어떤 교회는 농업을, 어떤 교회는 지역사회 개발을, 어떤 교회는 사회적 기업을 맡아 함께 사역을 한다면, 각기 자기 교회의 깃발을 꼽고 자기 교회의 이름을 높이는 일을 포기하고 오로지 하나님 나라의 깃발을 꼽고 함께 미션 코트를 만들어 사역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그것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었는데 지난 주 제주도 여행을 통해 그 기도가 구체화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겁니다. 그 꿈이 이루어지면 우리 한국 교회에 새로운 모델이 제시 될 것이고 새 바람이 불게 될 것이고 무너졌던 건강한 한국 교회의 부흥이 다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지난 주간 저는 참 행복했었습니다.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은 황홀함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이 말씀한 늙어도 꿈꾼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저도 이젠 당당한 늙은이입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도 꿈을 꾸고 환상을 보고 흥분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지 모르겠습니다. 삶이 황홀합니다.

저는 저에게 이와 같은 삶을 허락해 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시라고 생각합니다. 성령이 저를 거듭나게 하고 그 성령으로 거듭남이 저를 이렇게 늙어도 꿈꾸는 삶을 살게 하는 것이고 믿습니다.

오직 너희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을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저는 삶으로 몸으로 이해합니다. 성령은 정말 능력입니다. 파워입니다. 늙은이를 꿈꾸게 하시는 능력과 권세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남을 욕심 내실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께 기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주실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11: 13) 아멘.

성령을 구하고 그리하여 약속하신 성령을 받고, 성령을 받음으로 하나님의 생각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일을 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으로 꿈을 삼아 늙어도 꿈꾸며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560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