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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년 만에 다시찾은 총신 세계적 신학요람 되길 기도”
2012년 05월 22일 (화) 11:58:33노충헌 기자  mission@kidok.com

사당캠퍼스 조성공사 앞장섰던 서드브링크 씨
총신 개교 111주년 맞아 학교 방문 소회 밝혀

  
 ▲ 서드브링크 씨(가운데)가 총신대 개교 111주년 기념예배에서 학교 건립 당시의 감회를 떠올리고 있다. 그의 좌우에 있는 이는 맥클린토크 씨(왼쪽)와 김상정 목사. 
 
1959년 교단이 신학노선의 차이로 분열된 직후 신학생 외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운동장도 강당도 없는 덥고 비좁은 용산의 3층 교사에서 수업을 이어가던 교단 선배들의 숙원은 더 많은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건물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총신대 개교 111주년 기념을 맞이해 뜻 깊은 사연을 가진 벽안의 외국인들이 학교를 찾아왔다. 공군대위로 한국에서 복무하던 중 1965년부터 67년까지 현 사당동 캠퍼스 공사에 큰 도움을 주었던 윌리엄 서드브링크 씨 부부와 육군 수송부대 소속이었던 사무엘 맥클린토크씨(당시 상사)의 장남 마이클 맥클린토크 부부가 그들이었다. 서드브링크 대위는 사당 캠퍼스 신축을 위해 불도저 등 각종 중장비 및 운반차량들을 지원했고 노련한 운용병들을 현장으로 배치했다. 또 다수의 전신주를 제공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사당동은 그저 산 뿐이었습니다. 작은 나무와 흙 천지였습니다. 이곳에 신학교를 짓는다는 설명을 들었을 때 저는 너무 어마어마한 작업이라는 생각에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47년 만에 돌아와 보니 참으로 거대한 도시가 됐군요. 놀랍습니다.”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서드브링크 대위는 “신학교를 짓는다는 말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명을 느꼈었다”고 덧붙였다. 미군들은 공사 시작 4일 동안은 현장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지금의 본관 정지 작업에 전념했다고 한다. 또 이후 2년여 동안 계속해서 산을 개간하고 자갈을 끌어오고 각종 시설을 설치해 오늘의 학교 모습의 뼈대를 세웠다.

이들 미군들이 공사를 하도록 하는데는 당시 총회신학교 학생이었던 김상정 목사(미국 크리스천 영어 연구원 원장)의 공이 컸다. 김 목사는 당시 미군부대와 인연이 있었던 것을 활용해 지원을 이끌어냈다. 김 목사는 “미군 부대가 오기는 했으나 혹시 불량배들과 시비가 나지는 않을지 걱정했다”면서 “이들이 아니었으면 오늘의 사당캠퍼스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총신대 사당캠퍼스는 1963년 부산의 백남조 장로가 2000만원을 헌금해 1만8000평을 매입하므로 이전계획이 본격화됐다. 1965년 감격적인 기공예배가 드려졌고 당시 축사를 했던 76공병대대 헤메(Heme) 중위는 “여러분들은 믿고 기도만 하십시오. 우리들은 불도저로 이 산을 옮기겠습니다”는 짧고 강렬한 메시지를 전했다. 

서드브링크 씨는 “총신이 계속 발전하여 장로교 신앙과 신학을 한국 뿐 아니라 온 세계에 널리 펼치게 되기를 기도하겠다”고 밝혔다. 서드브링크씨 일행은 5월 16일부터 23일까지 방한해 총회와 기독신문사, 사랑의교회, 판문점 등을 방문했다.



출처

http://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75512